입력 : 2012.06.05 22:07
기존 野 대선주자들과 달리 安교수, 탈북자 시위현장 찾고
'북한에도 보편적 잣대를' 주장… 北 실상 외면하고 막말 쏟은임수경類
눈치보지 말고 종북파에 '상식의 칼' 빼들라
홍준호 논설위원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206/05/2012060501290_0.jpg)
안 교수는 지난 3월 중국을 향해 탈북자를 북송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촛불시위 현장을 찾았다. 꼭 한 번 방문해달라는 탈북여성의 간곡한 이메일을 받고 현장에 가서 "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는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소중한 가치"란 말을 남겼다.
최근 부산대 강연에선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이런 품평을 했다. "인권·평화 같은 보편적 잣대가 북한에 대해서만 다르게 적용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북한이 보편적 인권과 평화 분야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걸 모두 안다. 유독 이 문제가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국민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기존 야당 대선주자들은 탈북자 집회 같은 것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북한과 중국의 비위를 거스를까 봐서다. 탈북자들에 대해 임씨처럼 노골적인 언사를 쓰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살갑게 대한 적도 없다. 북한 문제는 그저 북한의 눈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에 비해 안 교수는 직접 탈북자 시위 현장을 찾고 북한에 보편적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명확히 밝힌 것만으로도 확연히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거기엔 보수와 진보 같은 구분법에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매사를 상식이냐 아니냐의 잣대로 바라보자"고 말해온 그 나름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한국에 온 탈북자 중 상당수는 23년 전 평양을 찾은 임수경을 직접, 혹은 TV로 보았다. 임씨와 같은 또래인 박상학씨는 평양에서 임씨 환영 군중에 섞여 있다가 임씨 손을 잡아보고 느꼈던 온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에 와서 만난 임씨에게 "우리 탈북자들 손도 그렇게 따뜻하게 잡아달라"고 했다가 임씨가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배신감을 느낀 경험을 털어놓았다. 임씨가 탈북자를 변절자 취급한 게 이번만이 아니란 얘기다.
임씨는 밀입북 대학생 1호다.
국민은 임씨 이후로도 1991년 박성희씨를 비롯해 1999년까지 10명의 대학생이 더 평양에 간 사실은 잘 모른다. 더 모르는 건 이들 중 절반 이상이 그 후 주사파와 손을 끊은 사실이다. 박씨를 비롯한 7명은 평양 방문 후 임씨처럼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베를린으로 갔다. 그곳에서 북측 인사들과 범청학련을 만들어 일하라는 전대협과 그 후신인 한총련의 명령에 따라서다.
그러나 이들은 이내 북측 인사들이 말이 통하지 않는 부류임을 절감했다.
그래서 서울에 대고 계속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으나 "문화차이 때문일 것이니 참고 견디라"는 답만 돌아왔다. 박씨 등은 이후에도 "이건 문화차이가 아니다. 북한은 완전 독재사회다. 민주주의를 전혀 모르니 제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소연하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1997년 베를린의 범청학련 사무국 문을 닫아 버렸다. 박씨 등 5명은 이듬해 귀국해 자기들이 겪은 일을 모두 밝히고 새 삶을 찾았다(하태경,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
임씨는 23년 전 한 번의 퍼포먼스를 스펙 삼아 금배지를 달았다.
국민은 임씨의 그 요란했던 퍼포먼스를 지금도 기억하지만 그의 후배들이 북한 인사들과 온몸으로 부딪친 끝에 오로지 수령의 지침에만 따르는 북한 체제의 황당한 실상을 깨우쳐 세상에 알리기까지 겪어야 했던 인간적인 고뇌와 고달팠던 삶은 까마득히 잊고 있다. 탈북자들은 더 생생한 경험을 안고 사선(死線)을 넘은 사람들이다.
이들과 임씨 중 어느 쪽이, 안 교수가 말하는 '상식의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가는 따져볼 필요조차 없다.
안 교수는 대선주자 여론조사상 야권의 맨 앞줄에 서 있다. 이달 말 1학기 강의가 끝나면 대선판에 들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돈다. 이런 그가 부산대에서 진보당 사태를 두고 "건강하지 못한 이념 문제로 확산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토를 달았다. 진보당 이석기씨 등이 저지른 일은 잘못이지만 이는 '일부의 문제'일 뿐이란 시각도 내비쳤다. 그가 임씨 막말 사태를 보고 나서도 그런 수준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지 궁금하다.
민주당에는 이번 일 이후에도 임씨를 감싸려는 세력이 꽤 있다.
당내 우려를 무릅쓰고 임씨에게 끝내 금배지를 달아준 게 전임 지도부다.
안 교수가 정말로 대선판에 들어설 작정이라면 야권 안팎에 널리 퍼져 있는 '임수경류'의 실체부터 직시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이런 세력의 눈치까지 살피며 정치적 타산을 할 것인지 아니면 '상식의 칼'을 빼들어 이들을 제압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안 교수가 후자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야권 내 종북 세력의 엄청난 반발에 부닥칠 것이다. 벌써 그런 조짐이 일고 있다. 그러나 그런 반발을 뚫고 나갈 각오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안 교수 역시 기성 야당 정치인들과 하등 다를 게 없고 그가 말해 온 '상식'이란 잣대도 길을 잃고 미로(迷路)를 헤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