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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의 시사讀說]한국의 못 말리는 과학결핍증후군

Ador38 2015. 6. 18. 19:03

[송평인의 시사讀說]한국의 못 말리는 과학결핍증후군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15-06-18 03:00:00 수정 2015-06-18 10:44:10


송평인 논설위원

2000년 옛 농림부 출입기자로서 국내에 처음 발생한 구제역 사태를 취재한 적이 있다. 구제역은 발에 굽이 있는 동물만 걸리는 전염병이다. 당시에도 과민반응이 많아 사람도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육류 소비가 현저히 감소했다.


독일 구제역 한글 푯말

하지만 구제역은 사람이 감염되고 싶어 안달이 나도 감염되지 않는 병이다. 발굽을 만드는 유전자가 구제역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학자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그런 얘기가 안 먹혔다는 것이다. 그 후 독일에 출장 갔다가 프랑크푸르트 공항 세관에서 ‘구제역은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습니다’라고 쓰인 한글 푯말을 봤다. 독일 소시지 판매 때문이었는데 한국인을 위한 특별한 배려에 고맙기보다는 씁쓸했다.

어떤 바이러스는 기침 등의 비말(飛沫)로만 전파되고 어떤 바이러스는 공기로도 전파된다. 그것도 신비로운 과학적 현상이다. 메르스가 공기를 매개로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위에 의존할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공기 전염이 아닌 한 산발적으로 병원 밖 감염이 일어난다 한들 지역사회 감염으로서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연일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쓰고 정치인은 부채질한다. 이러니 국민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나.

메르스 감염자는 대부분 병원 내 감염이다. ‘대부분’이라 해도 무방한 것은 병원 밖 감염이 있더라도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비말 감염은 말 그대로 비말이 있어야 일어난다. 비말이 있을 정도의 증상이면 병원을 찾아가게 돼 있다. 그래서 병원 밖 감염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병원에서만 일어나란 법은 없다. 비말을 뿜는 환자가 집에 있다면 왜 가족이 감염되지 않겠는가. 다만 그런 감염은 산발적이어서 지역사회 감염의 의미가 없다. 일각에서 연무질에 의한 감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설혹 가능하다 하더라도 비말이 퍼지는 범위를 좀 더 확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변이가 없는 한 지역사회 감염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나 ‘비말 2m 이내’ ‘최대 잠복기 2주’ 등 방역 기준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무제한 방역을 할 수 없으니까 외국 사례를 기초로 한 국제기구의 기준을 따른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 기준을 바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를 두고 과학을 신뢰할 수 없다는 듯이 몰아가서는 안 된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소통을 학문의 주제로 삼은 독일의 대(大)학자다. 그러나 그가 소통을 강조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그는 소통 이전에 소통이 그 위에서 이뤄지는 합리화한 일상(lifeworld)을 훨씬 더 많이 강조했다. 합리화하지 않은, 즉 막스 베버의 표현을 따르자면 주술에 사로잡힌 일상에서는 올바른 소통이 이뤄질 수 없다. 과학에 기초할 때 비로소 토론이 가능하고 합의에 이를 수 있다. 억지와 괴담을 받아주는 것이 소통이 아니다.


비합리적 일상 언제까지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의 일상은 합리화와는 거리가 멀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없다고 방역당국이 말하고, 전문가들이 말하고, WHO 같은 국제기구가 말해도 믿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광우병 시위 때도, 천안함 폭침 때도 그랬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말해도, 국제 민관합동조사단이 말해도 믿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나.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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