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에 필수적인 4개 핵심 기술의 이전을 거부한 데 이어 당초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던 21개 기술 항목의 이전까지 미룬다고 한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11월 중 미국 정부의 기술 이전 승인이 날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미국 측에서 21개 기술을 세분해 협의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 정부가 21개 항목 중 쌍발엔진의 체계통합 기술과 세미스텔스 기술 등 3건의 이전이 힘들다는 뜻을 방사청에 통보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2025년까지 노후 전투기를 대체할 KFX를 우리 기술로 개발하려는 국방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방사청과 군, 청와대는 이전에도 KFX 사업 기술이전이 잘못될 때마다 쉬쉬하며 국민을 속이려 들었다. 핵심 기술 이전 무산으로 물의를 빚은 방사청이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하는 자리에서 “자체 기술로 개발하겠다”고 낙관론을 편 뒤 ‘면죄부’를 받은 일이 무색하게 될 판이다.
장명진 방사청장은 어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간 KFX 사업을 맡아 책임지고 하라면 하겠다”며 개발을 장담했다. 미국이 거부한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의 핵심 장비는 한국이 자력 개발할 수 있고 이를 항공기에 탑재, 운용하는 체계통합 기술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장 청장처럼 근거 없는 낙관만 하다가 쌍발엔진 체계통합 기술의 이전마저 무산될 경우 한국은 핵심 기술 개발은커녕 아예 초기 설계부터 난관에 봉착할 공산도 크다. 박 대통령이 “KFX 사업에 대해 의문이 없도록 정확하게 국민에게 설명하라”고 질타했는데도 방사청이 또다시 거짓 해명으로 당장의 곤경만 모면하려 해선 안 될 것이다.
미국이 기술 이전에 난색을 표명하는 이유부터 우리 정부가 정확히 파악해야 대책도 세울 수 있다. 한국이 T-50 초음속 고등훈련기를 개발한 이후 미국이 우리를 항공산업 분야의 경쟁 상대로 여겨 견제한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보다는 한국이 최근 중국으로 급속히 기우는 듯하자 미국이 ‘길들이기’ 차원에서 제동을 건다는 시각도 있다. 단순한 군사기술 협력 차원을 넘어 총체적인 한미관계의 틀까지 감안해 정밀하게 진단해야 적확한 처방이 나올 수 있다.
KFX의 핵심 기술을 이전받기 위해 지난달 박 대통령 방미를 수행했던 한민구 국방장관은 미 국방부에 협조를 요청했다가 퇴박을 맞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게 우회적으로 ‘노’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KFX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10년 뒤 영공 방어에 대한 우려도 크지만 그보다 심각한 것은 견고해야 할 한미동맹의 약화 그 자체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