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곳곳에서 벚꽃축제가 한창이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벚나무가 많다. 한때는 창경궁을 비롯해 전국 각처에 심었던 벚나무를 일본의 상징으로 여겨 베어버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에 심은 대부분의 벚나무는 왕벚나무다. 그리고 왕벚나무는 자생지를 두고 지난 100여 년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자존심을 건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왕벚나무가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08년.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 사제인 타케(1873-1952) 신부는 한라산 해발 600m 관음사 부근에서 식물표본을 채집하던 중 꽃이 핀 벚나무 가지를 꺾어 자신의 채집 표본번호 4638번을 붙인다. 그리고 이를 장미과식물의 대가인 독일 베를린대학 케네 박사에게 보낸다. 케네 박사는 일본 에도에 있는 왕벚나무와 같은 종임을 확인한다.
1908년 한라산에서 왕벚나무가 발견되기 전까지 일본에서 왕벚나무와 관련해 알려진 사실은 도쿠가와 시대에 에도의 꽃집에서 팔기 시작했다 것뿐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어디에도 자생 왕벚나무 자생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1901년 동경대학의 마츠무라 진조 교수는 일본 이즈의 오오시마를 왕벚나무의 자생지라 주장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된 이후 벚꽃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느꼈을 박탈감은 쉽게 상상이 간다. 일본 학자들은 이를 뒤집으려 일본 내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찾지 못했고, 나중에는 왕벚나무 잡종설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에서 왕벚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는 1965년. 제156호 신예리 왕벚나무, 제159호 봉개동 왕벚나무, 제173호 해남 대둔산 자락의 왕벚나무가 차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한라산 관음사 지구 왕벚나무 천연기념물 봉개동 왕벚나무
이 과정에는 부종휴라는 식물학자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만장굴을 발견해 처음 보고하기도 했던 그는 1962년 한라산 수악 서남쪽 1㎞지점에서 30년생 왕벚나무 1그루와 동남쪽 700m지점에서 2그루를 찾아냈고, 1964년 700고지 부근에서 자생 왕벚나무를 추가로 발견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관음사 경내와 야영장, 어승생악 등지에서 새로운 왕벚나무가 속속 발견되고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왕벚나무의 고향은 한라산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특히 관음사 지구 야영장 주변 숲에서는 왕벚나무와 함께 관음왕벚나무, 탐라왕벚나무 등 새로운 종이 추가로 발견됐다.
최근 학계를 중심으로 왕벚나무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라산 관음사 지구 왕벚나무가 후계목 보급을 위한 어미나무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 도로변에 있는 왕벚나무를 자생 왕벚나무의 후계목으로 교체하자는 주장과 함께 왕벚나무 발견자인 타케 신부를 기념하는 공원을 만들자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말로만 왕벚나무의 고향이 제주라고 자랑할 게 아니라 이에 걸맞게 다양한 대책이 절실하다.
말이 나온 김에 한라산 중산간 일대에 제주에 자생하는 수 십 종의 벚나무를 일정 면적 심어 식물원을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종류별로 개화시기가 다르기에 날씨 때문에 매년 벚꽃축제 시기를 고민할 필요도 없고, 축제를 한 달 내내 진행할 수도 있다. 장담컨대 적어도 10년 후면 또 하나의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한라산을 파헤치는 골프장과 인위적인 테마파크만이 관광개발의 전부가 아니다.
강정효 (사)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