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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의 풍진세상> 히로히토와 아베의 한판승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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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의 풍진세상> 히로히토와 아베의 한판승

Ador38 2016. 5. 23. 14:55

<김종현의 풍진세상> 히로히토와 아베의 한판승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논설위원 =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미국의 도쿄 대공습(1945년 3월 10일) 시점에서 사실상 끝난 상태였다. 슈퍼폭격기인 B29 330대의 융단 폭격에 일본은 속수무책이었다.


해군과 공군력이 무력화해 전쟁 수행이 불가능해졌는데도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다. 일본이 동원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은 천황에 대한 국민의 충성심과 군의 정신력뿐이었다. 가장 강력한 전술 무기는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神風)였다.


일본 제국주의를 이해하려면 천황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군국주의의 정점에 있던 천황은 '만들어진 상징'이었다. 천황은 쇼군(將軍)이 권력을 잡은 가마쿠라 막부 이후 700여 년간 백성들에겐 잊힌 존재였다. 그 천황을 소환한 것은 국가를 통합할 구심점을 찾고 있던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젊은 사무라이들이었다.


일본 군국주의 설계자인 이토 히로부미는 새로운 일본의 지배체제를 강력한 통치권을 지닌 유럽의 절대군주제에서 불러왔다. 그는 1889년 반포한 제국헌법에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하며 '천황은 신성하므로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천황을 범접할 수 없는 신으로 승격한 것이다.

 

태양신의 후손이라는 천황은 군부 파시즘과 결합하면서 국가 그 자체가 됐고, 종교가 되었으며, 백성이 목숨을 바쳐 보호해야 할 절대적 존재였다. 일본 장병들은 전투에서 항복하지 않았다. 그 건 천황에게 누를 끼치는 짓이다. 자결해야 했다. 할복하건 자폭을 하건 그들은 죽기 전 가족을 찾지 않았다. '천황폐하 만세'였다.


가미카제의 전사들은 '후지산보다 무거운 책임' 완수를 위해 '깃털보다 가벼운 목숨'을 기꺼이 천황에게 바쳤다. 젊은 생명이 사쿠라 꽃처럼 흩어졌다. 그들은 죽어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봉안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야스쿠니신사에서 그들은 신이 된다. 살아있는 신인 천황으로부터 유일하게 절을 받는 곳이 야스쿠니신사였다.

    

천황의 주술에 걸린 이런 광신적인 군대와 싸워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함부로 일본 본토에 병력을 상륙시킬 수 없었다. 언제든 가미카제화 할 수 있는 항공기 1만대가 대기하고 있었고 일본 본토와 아시아 지역에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600만 명의 병력이 있었다. 미국은 일본에 지상군을 투입할 경우 27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의 장병이 죽을 수 있다고 봤다.


원폭이 투하되기 약 열흘 전인 7월 26일 연합국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내놓았지만, 일본은 '1억 신민'의 옥쇄 운운하며 버텼다. 성전(聖戰)에 무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죽창으로라도 순교하겠다는 자세였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천황제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고, 국민이 죽어가는데 전쟁 지도부는 천황제에 매달렸다.


결국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무고한 희생을 줄이면서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를 명령했다. 23만 명(조선인 4만 명 포함)이 숨진 미국의 원폭 사용에는 논란이 있다. 비록 전시라곤 하지만 민간인 희생과 후유증이 너무 컸다는 점에서 대량 살상무기인 원폭 투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비극의 원인인 일본의 집단 광기가 부른 아시아태평양전쟁 전체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너무나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종전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민간인 사망자는 2천만 명이 넘었다. 전쟁이 계속됐다면 더 많은 생명이 죽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일본 군부와 천황의 의지는 관철됐다. 히로히토는 전쟁 책임자였지만, 절대권력을 내놓고 '인간선언'을 하는 선에서 목숨과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국민의 80% 가까이가 히로히토의 처벌을 원했지만, 팽창하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안정된 일본이 필요했다. 일본 국민의 정신을 움직이는 천황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는 미에현(三重縣)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폐막일인 오는 27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는다. 지난 7년여 핵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한 오바마로서는 히로시마 방문이 '용 그림에 눈알을 찍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비핵화와 세계 평화를 향한 오바마의 간절한 염원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퇴임을 앞둔 오바마가 '실적'에 급급해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에 엮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은 '왜'는 제쳐놓은 채 원폭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만 극대화하고 있다.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발을 딛는 순간 일본 역사엔 '사죄'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순서에도 문제가 있다. 아베가 먼저 진주만을 찾아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절차가 생략됐다.


71년 전 천황 히로히토는 우리가 항복문서로 알고 있는 800자 '종전조서'에서 "적은 새롭고 잔혹한 폭탄(원자탄)을 사용하여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희생자가 났다"고 미국을 비난했을 뿐 전쟁 책임 인정이나 주변국 침탈에 대한 반성과 참회는 없었다.


그는 '민족의 멸망과 인류 문명의 파괴를 막기 위해 포츠담선언을 수락했다'고 둘러댔다. 이를 당시 언론은 '천황의 성스런 결단'이라고 선전했다. 히로히토가 고심 끝에 결정한 '종전'이지 패배나 항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서 아베 신조 정권은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G7 회의가 열리는 미에현엔 이세신궁(伊勢神宮)이 있다. 이곳은 천황가의 조상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를 제사 지내는 곳이다. 일본이 주장하는 만세일계의 천황과 신이 일체화하는 종교시설이다. 이 천황가의 성지에 오바마를 비롯한 2차 세계대전 승전국과 패전국 정상들을 부른 일본의 속내는 무엇인가.


일본이 참 대단한 국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집요하고 현란한 외교술로 히로히토의 유지(遺志)를 관철해 미국 대통령이 제 발로 히로시마를 찾도록 한 그 재주가 부럽다. 일본의 국기(國技)인 유도에서 완벽한 승리를 '한판승'이라고 한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누가 뭐래도 아베의 한판승이다. 그것은 또한 전쟁 책임을 연합국에 돌린 히로히토의 승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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