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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선 - 프랑스 외인부대서 5년, 군가 부르다 목소리 얻었지요 본문
[배양숙의 Q] 프랑스 외인부대서 5년, 군가 부르다 목소리 얻었지요
장하니.한용수 입력 2017.08.12. 04:00 수정 2017.08.12. 07:23
18세 때 60만원 들고 프랑스로.. 뭔가 변화 절박해 외인부대 지원, 전투는 안 했지만 세네갈 내전 파병... 보이스 코칭이란, 속에 숨어 있는 본인만의 목소리 신체 여러 부위 훈련 통해 찾아줘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보이스 코치 이진선(37)씨. 신체 여러 부위 훈련을 통해 자신 속에 숨겨진 목소리를 찾아주는 조련사다. 지금은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3살에 부모와 헤어졌고 15살엔 수녀원에서마저 도망쳤다. 갈 곳 없는 소년을 받아준 중화요리집, 더 큰 세상으로 가기 위해 선택한 프랑스 외인부대, 그토록 꿈꿨던 배우 데뷔, 그리고 우연히 만난 보이스 코치라는 직업. 배우와 보이스 코치로 1인2역을 하고 있는 이진선을 '배양숙의 Q'가 만났다.
Q : 보이스 코치란 직업이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데요.
A : “목소리엔 그 사람의 건강 상태는 물론이고 지적 수준, 직업, 신체골격, 자라온 환경 등 200여 가지의 정보가 담겨 있어요. 보이스 코치란 각자에게 숨겨져 있지만 정작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본인만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조련사입니다. 올바른 호흡법과 발음, 발성법을 알려주죠. 전략적으로 목소리를 사용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돋보일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Q : 영화 촬영 때문에 매우 바쁘다고 들었어요.
A : “네, 영화 ‘공작’과 ‘안시성’ 두 작품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윤종빈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은 ‘공작’은 내년 추석 전 개봉 예정인데, 북한의 핵 개발 실체를 밝히기 위한 남북의 첩보전을 다룬 영화에요. 전 기자 역으로 출연합니다. 2018년 개봉 예정인 ‘안시성’은 김광식 감독님 작품으로 15일 첫 촬영에 들어가요. 고구려 장수 양만춘이 88일간 당태종의 공격을 막아낸 '안시성 전투'를 그린 초대형 사극이에요. 제 배역은 당나라 총사령관 입니다. 아직 비중이 큰 배역은 아니지만 이제 시작이에요. 영화 촬영과 더불어 보이스 코칭 강연도 틈틈이 다니느라 여름을 바삐 보내고 있습니다.”
Q : 부모님과는 어떻게 헤어졌나요?
A : “부모님과 헤어진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도 안 나고요. 1983년 서울 종로3가 파고다 공원에서 제가 발견됐고 마리아 수녀회에 보내졌다고 하더라고요. 16살에 어쩌다 나는 고아가 됐을까 생각해보며 종로3가를 한없이 걸었어요. ‘내가 이쯤에서 혼자 울고 있지 않았을까’, ‘나라면 여기서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했을까’. 만약 부모님이 저를 잃어버린 거라면, 그리고 저를 찾기 위해 애타게 노력했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상했지만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Q : 어린 나이에 처음 마주한 세상은 어땠나요?
A : “도망친 날 밤 무작정 걷다 부산 국제시장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일단 중화요리집으로 들어가 짜장면을 시켜 먹었어요. 직원이 배달 나가면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마감 시간이라 안 나가더라고요. 결국 사장님이 눈치를 채시고 제게 돈은 있는지, 잘 곳은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그 중화요리집에서 일하며 생활할 수 있게 도와주셨죠.”
Q : 정해진 삶이 싫어서 도망쳤으니 중화요리집에서 일만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A :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중국집 총각’으로 불리고 있더라고요. 저는 이런 삶을 원해서 수녀원을 나온 게 아니었고, 공부만이 이 상황의 돌파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준비했죠. 처음에는 주변에서 괜히 돈 낭비 하지 말라고 비아냥거렸어요.”
Q : 교재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A : “어느 날 아침 사장님이 공부하다 잠 든 제 모습을 보시고는 남은 교과서 할부금을 다 대주셨어요. 제 진심을 느끼신 거죠. 그렇게 대입 검정고시까지 합격했지만 한국에서 대학을 가기엔 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연극영화과는 다른 데보다 학비가 훨씬 비싸고, 독학으로는 유복한 가정에서 과외 받은 아이들을 따라가기 힘들었어요. 저 같은 사람은 대학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구조였어요.”
Q : 배우라는 꿈과 프랑스 외인부대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여요. 외인부대로 가게 된 계기가 뭔가요?
A : “꿈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무력감에 너무 힘들어 혼자 술을 한잔 하다 잠든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열어둔 창문으로 제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게 느껴져 깼는데, 어디선가 읽은 ‘외인부대’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요. “내 스스로 내 자신을 변화 시킬 수 없다면 외부의 힘을 빌려 나를 변화시키자. 프랑스 외인부대로 가자.” 죽을 수도 있는 곳이지만 전 정말 절박했거든요. 제 젊음의 일부를 희생하면 기회가 주어질 것 같았어요. 그렇게 결심하고 나서 바로 여권을 만들고 프랑스 편도 항공권과 60만원, 바지 한 벌, 속옷 한 벌, 양말 한 켤레만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때가 18살이었습니다.”
Q : 불어를 전혀 몰랐잖아요. 외인부대까지 혼자 가기조차 쉽지 않았을 텐데요.
A : “정말 궁하거나 간절히 원하면 눈앞에 작은 빛이 보이더라고요. 공항에 내렸는데 한국인처럼 보이는 가이드가 서 있는 거예요. 그분한테 도움을 청했죠. 우여곡절 끝에 모병소에 도착했지만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어요. 이를 악물고 지원했고, 각종 테스트를 통과해 외인부대원이 됐습니다.”
Q :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했나 보네요. 5년 동안 복무하면서 많은 걸 얻었을 것 같아요. A : “스키, 승마, 수영, 운전, 불어를 배웠고 가장 중요한 건 제 목소리를 얻었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텍스트를 또박또박 소리 내 읽거나 노래를 나지막이 부르는 건 좋은 목소리를 얻기 위한 훈련이거든요. 프랑스 군가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음이 굉장히 낮아요. 저는 당시 목소리가 미성이었는데, 프랑스 군가를 5년 동안 부르니까 목소리에 힘이 생겼습니다.”
Q : 실제로 전투에 참여한 적도 있나요?
A : “2000년, 세네갈에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부군와 반정부군이 대치했습니다. 세네갈 정부는 프랑스 외인부대에 협조를 구했고, 저희 부대원 150명 정도가 갔어요. 외인부대가 있는 것 만으로도 전쟁이 억제되거든요. 다행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안전을 위해 아이들한테도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Q :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한 일은 뭔가요?
A : “오디션을 찾아봤습니다. 맨 위에 있던 단원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연락해 단원 생활을 하게 됐어요. 처음 맡은 배역은 ‘닭’이었습니다. (웃음) 김유정의 소설 '봄봄'에 나오는 닭이요. 저한테는 너무 소중한 첫 배역이었기 때문에, 닭 동영상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어떻게 걷는지, 목은 어떻게 돌리는지, 어떻게 우는지, 눈빛은 어떤지 까지요. 그렇게 꿈에 그리던 무대에 섰는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힘든 때도 많았어요. 연극 만으로는 살기 힘들어서 막노동까지 했거든요.”
Q : 생애 첫 인터뷰 장소인 서울 삼성생명서초타운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요.
A : “사실 이 건물도 제가 일했던 현장이에요. 공사하느라 한참 드나들었던 건물이 완공되고 출입이 통제되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제가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오늘 이렇게 인터뷰하기 위해서 왔네요. 여기 들어오면서 건물과 인사를 나눴어요. 그동안 잘 지냈냐고. (웃음)”
Q : ‘코칭’은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A : “제 아내는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어서 많은 강의를 들어요. 하루는 아내가 저한테 김상임 코치의 강의를 들어보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강의료가 생각보다 비싼 거예요. 저는 ‘내년에 아기도 태어나고 쓸 돈이 얼마나 많은데!’하고 버럭 화를 냈죠. 그런데도 아내가 계속 권유하니까 속는 셈 치고 들어봤는데, 코칭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신기하더라고요. 저는 제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코칭을 받을 때마다 새로운 제 자신을 발견했고 잠재된 능력들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됐죠. 물론 가장 큰 깨달음은 제 목소리를 발견한 겁니다. 코칭은 다른 주입식 일반 교육과는 달라요. 질문 하나하나가 그 사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끌어내거든요.” 김상임코치는 두 자녀의 엄마로 삼성공채로 입사해 CJ임원에 오르기까지 다양한 업무경험을 했다. 2011년에 퇴임한 후 "코칭으로 대한민국 행복지수"를 높이겠다는 마음으로 기업임원에서 대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코칭과 강의로 변화시키고 있다. 현재 블루밍경영연구소의 대표코치다.
Q : 직접 코칭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A : “김상임 코치님이 저한테 처음 코칭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어요. ‘제가 볼 때 이진선씨는 지금도 충분히 많은 재능이 있어요. 이제 달리기는 그만하시고 가지고 계신 재능을 깨워 보세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로 고민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목소리 훈련을 하셨을 텐데 다음 코칭 모임 때 보이스 코칭을 한 번 해주시면 어떨까요?’ 그 날 밤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요. 달리기가 아닌 새로운 도전은 오랜만이었거든요.”
Q : 첫 보이스 코칭은 어땠나요?
A : “첫 번째 프로 데뷔 무대가 우리나라 최고의 회계사 그룹이었어요. 그런데 같은 날 아내가 출산을 위해 병원에 실려 간 거예요. 아내도 걱정되고 임원들 앞에서 강의하려니 무척 긴장되더라고요. 하지만 제 자신을 믿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지금은 '블루밍경영연구소' 소속 코치로 저만의 보이스 코칭 프로그램과 기업 리더들을 위한 보이스 코칭을 진행하고 있어요.”
Q : 37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힘든 상황을 잘 극복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A : “저는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 혼자 지냈고, 가족도 없어서 힘들어도 말할 곳이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많은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이거 하나만 넘자’라는 생각으로 버텼죠. 제가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환경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처지에 낙담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도전이라도 꾸준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도전을 성공시켜나가다 보면 반드시 자신의 꿈에 도달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Q : 앞으로 어떤 도전을 하고 싶나요?
A : “먼저, 저는 2023년까지 1000만 관객 영화의 주·조연이 되기 위해 달려갈 것입니다. 두 번째로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봉사와 기여를 할 것입니다. 저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는 동료 배우들을 코칭하고 싶습니다. 배우들은 작은 배역 하나 따내기도 힘들지만 운좋게 배역을 맡더라도 이름을 알리거나 스타반열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이렇다보니 생계유지도 힘든 배우들이 대부분입니다. '배우'라는 꿈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동료들을 제 코칭으로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Q : 지금도 계속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지요.
A : “코치 선생님들 중 경기도 평택의 한 초등학교에 있는 다문화 학생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다니는 분이 계세요. 그런데 학교에 불어밖에 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있다고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시더라고요. 그 아이들 중에 특히 의욕이 없는 남학생이 있는데, ‘공부하면 뭐해요, 어차피 공장에서 일할 텐데.’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으니 제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당장 아이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죠. 일단 제가 불어로 말한다는 것에 아이들이 놀라워하고 신나 했어요. 또, 제가 프랑스에서 살던 얘기를 들려주니까 의욕 없던 아이들도 마음을 열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앞으로도 저는 이런 활동을 통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 저도 힘들 때 따뜻한 시선, 작은 손길,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됐으니까요.”
Q : 100세 시대에서 37세면 아직 절반도 안 왔잖아요. 앞으로 긴 여정을 가야 하는 동년배한테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A :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 시선에도 제가 순간순간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 다음으로는 '진정한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가?', '무엇을 더 해볼 수 있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뭐지?' 이렇게 자신에게 진실 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해요. 자기 안에 들어있는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바랍니다. 방법이 어렵다면 코칭 서적을 읽어보세요.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고,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또 다른 나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기회 없는 능력은 쓸모가 없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배양숙 (사)서울인문포럼 이사장 theore@joongang.co.kr 정리 = 장하니 인턴기자 chang.hany@joongang.co.kr
'🙆♂️ 시사 & 인물 &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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