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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가을은 - 법정스님 본문
- 가을은...
- 법정 스님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간다.
-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모은다. 오늘 낮 사소한 일로 직장의 동료를 서운하게 해준 일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깊은 밤 등불 아래서 주소록을 펼쳐 들 친구들의 눈매를, 그 음성을 기억해낸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https://t1.daumcdn.net/blogfile/fs9/32_blog_2007_12_23_14_41_476df51811f4e?x-content-disposition=inline&filename=11.jpg)
달밤 / 캔버스에 유채,1957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이 시대 이 공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 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 낮 동안은 바다 위의 섬처럼 저마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우리가 귀소(歸巢)의 시각에는
같은 대지에 뿌리박힌 지체(肢體)임을 비로소 알아차린다.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 우리들의 현실은 지나간 과거처럼 보인다.
이삭이 여문 논밭은 황홀한 모자이크. 젖줄 같은 강물이 유연한 가락처럼 굽이굽이 흐른다.
구름이 헐벗은 산자락을 안쓰러운 듯 쓰다듬고 있다.
![](https://t1.daumcdn.net/blogfile/fs9/14_blog_2007_12_23_15_08_476dfb56d001a?x-content-disposition=inline&filename=31.jpg)
툇마루 / 캔버스에 유채,1974
시골마다 도시마다 크고 작은 길로 이어져 있다.
아득한 태고적 우리 조상들이 첫걸음을 내디디던 바로 그 길을 후손들이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 길을 거쳐 낯선 고장의 소식을 알아오고, 그 길목에서 이웃 마을 처녀와 총각은 눈이 맞는다.
꽃을 한 아름 안고 정다운 벗을 찾아가는 것도 그 길이다. 길은 이렇듯 사람과 사람을 맺어준 탯줄이다.
그 길이 물고 뜯는 싸움의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사람끼리 흘기고 미워하는 증오의 길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뜻이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짐승처럼 주리를 트는 그런 길이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인 것이다.
![](https://t1.daumcdn.net/blogfile/fs6/2_blog_2007_12_23_15_11_476dfc1ca018c?x-content-disposition=inline&filename=34.jpg)
길에서 / 캔버스에 유채,1975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잡힐 듯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그런 것인 줄은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 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그림/장욱진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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