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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백선엽 - 한미연합사령관, 미8군사령관이 기꺼이 무릎을 꿇어보였던 한국노인 본문
???한미연합사령관, 미8군사령관이 기꺼이 무릎을 꿇어보였던 한국노인_이 남자 없었으면 한국은 북한에 흡수됐다.
디씨멘터리 게시일: 2019. 9. 9. 2018년 11월 21일. 해리스 주한미군대사,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빌스 미8군사령관, 월즈바크 제7공군 사령관은 다짜고짜 한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입니다. 100에서 한 살 부족한 그 노인은 덤덤하게, 당당하게 그 인사를 받아들입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죠. 6/25 발발부터 휴전까지 1,000일이 넘는동안 단 하루도 전쟁터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남자. 현재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극한의 전투에서 서울 재수복의 선봉에 섰던 전설의 군인. 백선엽 장군이 바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2019년 올해는 6/25 전쟁이 발발한지 69년째 되는 해입니다.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무서운 속도로 남한을 점령해가기 시작했고, 3일 만에 서울을, 일주일만에 오산을, 한 달만에 대전을, 50일 만에 목포를, 두 달만에 김천과 포항을 함락시켰습니다. 낙동강이 무너지면 남한은 희망이 없었고, 모든 군인들이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부산 교두보 방어작전의 최대 결전이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리에서 벌어졌는데 이 전투는 미국의 전쟁 역사책에서 6/25 전쟁의 최악의 전투로 기록되어있죠. 세계 역사상 최초로 사단장 돌격을 감행한 바로 그 전설의 인물이 백선엽 장군입니다. 서른살의 나이로 1사단장으로 임명되었고, 다부동에서 8,000명으로 2만명이 넘었던 북한군의 총공세를 한달 이상 막아냈습니다. 아마 다부동전투에서 패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붉은색이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현재의 북한이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전투 중 이 승리는 중요했는데, 이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북한군은 낙동강을 돌파하는데 실패했고, 그 결과 북한군을 좌절시키는 데 성공했죠. 이 전투에서 상당한 전력을 소진한 북한군은 이후 전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됩니다. 반대로 국군에게는 계속 밀리던 낙동강을 고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해준 결정적인 전투가 되었습니다. 또한 최초로 한국군과 미군의 연합작전을 실시한 것도 중요한 점인데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한미간 상호신뢰감이 형성됐죠. 백선엽 장군은 ‘사단장 돌격 작전’으로 전세계적으로 굉장히 유명한데, 그가 전쟁 중에 보여준 솔선수범 때문입니다. 한 번은 백선엽을 시기한 한 병사가 미군 수뇌부에 그를 고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백선엽이 부대를 두고 후퇴한다고 말이죠. 이에 흥분한 미군은 "한국놈들이 자기네 땅을 지키는 전투에서 싸우지 않는데 우리가 싸워야 할 이유가 뭐냐" 며 분통을 터트렸고, 백선엽에게 이딴 식으로 싸우면 당장 철수하겠다며 항의하러 갔는데, 항의하러 가서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사단장 백선엽이 병사들의 앞에서서 북한군으로 돌격하는 광경을 본 것이죠. 그래서 나중에 휘하 군인들에게 물어 보니 백선엽은 병사들이 피곤한 기색을 보이자 '미군도 이 낮선 땅에서 싸우는데 우리가 후퇴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선두에 설거니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 라며 훈시한 후 직접 권총 들고 돌격을 감행했다고 하죠. 보통 사단장, 즉 소장의 지위에 있으면 지휘막사에 편히 앉아서 작전만 세우는데 백선엽은 1,000일 동안 전장에 머무르면서 항상 병사들의 제일 앞에서 별 두개를 달고서 직접 적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병사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인 것입니다. 백선엽의 가장 큰 업적 중에 기억될만한 건 박정희를 사형으로부터 구명했다는 점입니다. 여러 증언과 문건으로 볼 때 박정희는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남로당에 가입해 좌익으로 활동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이 때문에 특무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군사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구형받았습니다. 사형 날짜를 열흘 앞두고 박정희는 은밀하게 그를 찾아 ‘살려달라’ 말한 일화는 유명하죠. 결과적으로 그를 살린 은인은 백선엽이었고, 우리가 기억하듯이 박정희는 풀려나 쿠데타를 일으키고 대통령이 됩니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가난한 한국을 부강하게 만들기위해서 조금은 강압적으로 조금은 강한 리더십으로 한국을 이끌어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습니다. 당연히 그 아래에서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과 아픔과 고통과 눈물이 스며든 기적이지만 만약 백선엽이 그를 살리지 않았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사실, 백선엽 장군은 친일파로 분류됩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 토벌에 나선 만주군 간도특설대 장교로 2년 반 동안 복무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수록됐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그를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포함시켰죠. 친일파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번 영상을 제작하면서 백선엽이라는 분에 대해서 알게됐고, 그의 어릴 적부터 간도특설대 복무기록, 그리고 전쟁에서의 활약상도 읽었습니다. 백선엽을 친일파로 보든, 전쟁영웅으로 보든 그에 대한 평가는 누구나 다를 수 있으나 저는 그의 활약상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분명, 간도특설대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추적하고 때려잡았던 그 행위는 잘못된 것이고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상황에 따라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런 후에는 무엇보다 처신이 중요합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인다면 그에게 손가락질 하거나 돌을 던질 사람은 없습니다. 백선엽은 지금까지 뉘우치고 반성하거나 참회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 그가 전쟁에서 보여준 살신성인의 모습, 죽음을 무릅쓴 적을 향한 돌진. 말 한마디 사과보다, 뉘우침보다, 목숨을 내건 이런 행동이, 보여준 모습이 어쩌면 더 큰 사과가 아니었을지...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 공감을 바라고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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