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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 꼬마 불상의 정체 본문
안충기 기자
2021.05.28. 06:00
文, 靑 참모진 교체…박수현 국민소통수석으로
시리아 대통령, 95% 지지로 4선…국제사회는 비판
© ⓒ중앙일보 그림=안충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림=안충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풍수(風水)’란 말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여러 설이 있지만 대체로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로 통한다. 바람을 감추고(막아주고), 물을 넉넉히 공급해 주는 곳이 명당이란 얘기다.
농사짓기 좋은 터를 의미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와 비슷한 맥락이다.
큰 산(주산)을 중심으로 좌우 능선(좌청룡, 우백호)이 바람을 막아주며 그 사이로 냇물이 흐른다. 높은 지대인 산 쪽에 관청을 중심으로 사람이 살고, 그 아래 냇가엔 농사짓는 들판이 있다.
이런 생김새의 터는 그 규모가 크면 한 나라의 도읍지가 되고, 작으면 시군 단위나 읍내 수준의 마을이 형성된다.
그런 면에서 서울 백악산을 기준으로 좌청룡(혜화동, 동숭동, 이화동을 거쳐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낙산 능선)과
우백호(자하문, 인왕산, 무악재, 만리재를 지나 효창공원으로 이어지는 능선)가 남산을 향해 감싸 안고, 그 사이로 청계천이 흐르는 조선의 수도 한양(사대문 안)은 으뜸가는 도읍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 ⓒ중앙일보 남산에서 본 서울 도심. 시가지 너머로 북한산~백악산~인왕산~안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인다. [뉴스1]
남산에서 본 서울 도심. 시가지 너머로 북한산~백악산~인왕산~안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인다. [뉴스1]
© ⓒ중앙일보 1926년 일제는 10년 공사 끝에 광화문과 경복궁 근정전 사이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완공했다. 조선의 맥을 끊겠다는 의도였다. 이 건물은 광복 뒤 미군정청 하지 중장의 집무실로 쓰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식을 연 장소이자 제헌국회와 제2대 국회의사당이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정부청사로 쓰였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민족정기 회복을 내세워 이를 철거했다. 그 뒤 경복궁 복원사업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1926년 일제는 10년 공사 끝에 광화문과 경복궁 근정전 사이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완공했다. 조선의 맥을 끊겠다는 의도였다. 이 건물은 광복 뒤 미군정청 하지 중장의 집무실로 쓰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식을 연 장소이자 제헌국회와 제2대 국회의사당이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정부청사로 쓰였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민족정기 회복을 내세워 이를 철거했다. 그 뒤 경복궁 복원사업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물론 제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완벽하지는 않다. 완벽하지 않은 땅을 완벽하게 만드는 노력을 풍수에서는 ‘비보(裨補)’라고 한다. 약하거나 모자라는 것을 ‘도와서 채운다’는 뜻이다. 사람이 병들었을 때 혈맥을 찾아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병이 낫는 것처럼, 산천의 병도 비보 행위를 통해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불교와 민간 신앙이 강했던 시절에는 땅의 기운이 부족한 곳은 절을 지어 보충하고, 지나친 곳은 불상으로 누르고, 달아나는 곳은 탑을 세워 멈추게 했다.
지금 대통령 가족이 사는 청와대 관저 바로 뒤편에 불상이 있는 것도 백악산에서 내려오는 강한 기운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해석도 있다(불상 규모가 작아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당간지주, 비석, 남근석, 연못, 정자 등 많은 문화유산이 이런 차원에서 세워졌다. 풍수 공부가 우리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 ⓒ중앙일보 경복궁 경회루와 청와대 뒤로 백악산이 웅장하다. 산은 겨울이 돼야 제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겨울 눈이 내렸을 때 모습이다. [연합뉴스]
경복궁 경회루와 청와대 뒤로 백악산이 웅장하다. 산은 겨울이 돼야 제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겨울 눈이 내렸을 때 모습이다. [연합뉴스]
© ⓒ중앙일보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있는 작은 불상. 8세기 통일신라시대 석불로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양식이다. 본래 경주 이거사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옮겨왔다. 백악산에서 내려오는 강한 기운을 무마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앙포토]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있는 작은 불상. 8세기 통일신라시대 석불로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양식이다. 본래 경주 이거사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옮겨왔다. 백악산에서 내려오는 강한 기운을 무마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앙포토]
한양에 도읍을 정한 조선 왕조도 완벽한 터를 갖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불리는 동대문이 대표적이다.
왜 숭례문(남대문), 돈의문(서대문)처럼 세 글자가 아니라 ‘之’ 자를 추가해 네 글자 이름을 붙였을까. 이유가 분명하다.
한자 ‘之’ 자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기세 좋게 이어지는 산맥’을 의미하기도 한다. 뱀이나 용이 꿈틀거리며 힘 있게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之’ 자를 닮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한양의 지세는 우백호인 인왕산이 더 높고 긴 반면, 좌청룡인 낙산은 낮고 짧아 남산에서 장충동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만날 때까지 뻥 뚫려 있는 모양새다. 바로 이 부족한 산세를 보완하기 위해 산의 흐름과 비슷한 ‘之’ 자를 추가한 것이다. 전형적인 비보풍수인 셈이다.
© ⓒ중앙일보 동대문의 본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청계천이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자리라 도성의 좌청룡 기운이 약해 흥인문에 之를 끼워넣었다. 之는 ‘기운차게 이어지는 산맥’ 을 의미한다. [중앙포토]
동대문의 본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청계천이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자리라 도성의 좌청룡 기운이 약해 흥인문에 之를 끼워넣었다. 之는 ‘기운차게 이어지는 산맥’ 을 의미한다. [중앙포토]
또한 왕이 사는 경복궁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큰 산인 관악산은 불기운(火氣)이 많은 산으로 여겨졌다. 그 기운을 막기 위해 광화문 앞에 해태(해치)를 설치했다. 해태가 물을 뿜어 불기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 연못을 만든 것도 같은 이유다.
남대문의 ‘숭례문(崇禮門)’ 현판은 다른 문과 다르게 세로로 세웠는데,숭(崇)자는 불꽃(火)이 위로 타오르는 듯한 모양이고, 례(禮)는 오행상 화(火)를 뜻한다. 두 글자를 세로로 놓으면 불꽃 염(炎)을 의미한다. 관악산의 화기를 불로 막겠다는 의지이다.
© ⓒ중앙일보 숭례문 현판은 세로다. 崇과 禮가 모두 불을 의미한다. 관악산의 화기를 불로 막겠다는 의미다. 최정동 기자
숭례문 현판은 세로다. 崇과 禮가 모두 불을 의미한다. 관악산의 화기를 불로 막겠다는 의미다. 최정동 기자
이 같은 비보풍수는 궁궐뿐 아니라 개인들이 사는 집의 건축이나 실내 인테리어에도 적극 활용되면서 끊임없는 얘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옛사람들이 집안에 산수화를 걸어놓은 것도 비보풍수의 일종이다. 풍수에서 산은 인물, 물은 재물을 뜻하므로 산수화는 ‘집안에 좋은 인재와 많은 재물이 들어오라’는 염원이다.
풍수 좋다는 한양에서 특히 좋은 터는 어디일까. 명예와 관직을 의미한다는 좌청룡 능선을 보면 창덕궁, 창경궁, 운현궁, 종묘 등 왕가와 관련된 건축물이 많다. 조선 최고의 인재들이 공부했던 성균관(혜화동)과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가 자리 잡은 곳(동숭동)도 낙산 자락이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사저도 이곳에 있었다.
© ⓒ중앙일보 낙산(126m)은 야트막하지만 성곽길에 서면 내사산(백악산·인왕산·남산·낙산)에 안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종현 기자
낙산(126m)은 야트막하지만 성곽길에 서면 내사산(백악산·인왕산·남산·낙산)에 안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종현 기자
좌청룡 능선의 안쪽에 있다고 내(內)청룡으로 불리는 감사원에서 정독도서관(경기고등학교터)을 거쳐 윤보선 대통령 집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유명하다. 화초를 재배해 궁중에 납품하던 동네라 해서 화동(花洞) 1번지였던 경기고 터는 사육신 성삼문부터 조선말 서재필 김옥균 등의 집이 있던 곳으로, 우리나라 최고 인재의 산실로 부족함이 없는 터다.
© ⓒ중앙일보 백악산에서 낙산으로 흘러가는 능선 하나가 도성 안으로 내려온다. 감사원~정독도서관(옛 경기고 터)~윤보선가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앞으로 청계천이 흐르고 경복궁과 인왕산을 굽어볼 수 있는 자리다. 가운데가 정독도서관, 오른쪽 아래가 윤보선가와 헌법재판소다. [V WORLD지도 캡처]
백악산에서 낙산으로 흘러가는 능선 하나가 도성 안으로 내려온다. 감사원~정독도서관(옛 경기고 터)~윤보선가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앞으로 청계천이 흐르고 경복궁과 인왕산을 굽어볼 수 있는 자리다. 가운데가 정독도서관, 오른쪽 아래가 윤보선가와 헌법재판소다. [V WORLD지도 캡처]
정독도서관 정원에선 맞은편 우백호 능선의 핵심인 인왕산이 한눈에 보인다.
이 정원에 ‘겸재 인왕제색도비’가 세워져 있다.
얼마 전 국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최고로 여겨지는 인왕제색도를 새긴 비석이다. 이 그림처럼 호랑이의 늠름한 기상을 보여주는 인왕산 언저리에는 현대그룹을 일군 정주영 회장이 살던 자택도 있다.
© ⓒ중앙일보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국보 제 216호 인왕제색도.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이 비온 뒤 인왕산을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138.2㎝, 세로 79.2㎝이다. 1984년 8월 6일 국보로 지정됐다. 인왕산은 한양 도성 우백호의 중심이다. [문화재청]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국보 제 216호 인왕제색도.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이 비온 뒤 인왕산을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138.2㎝, 세로 79.2㎝이다. 1984년 8월 6일 국보로 지정됐다. 인왕산은 한양 도성 우백호의 중심이다. [문화재청]
© ⓒ중앙일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 인왕산 아래 있다. 왼쪽 웅장한 바위에는 양산동천(陽山洞天), 남거유거(南渠幽居) 글자가 새겨져 있다. 볕이 잘 들고 신선이 살 만큼 경치가 뛰어난 곳, 남거 장호진이 유거하는 집이라는 의미다. [연합뉴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 인왕산 아래 있다. 왼쪽 웅장한 바위에는 양산동천(陽山洞天), 남거유거(南渠幽居) 글자가 새겨져 있다. 볕이 잘 들고 신선이 살 만큼 경치가 뛰어난 곳, 남거 장호진이 유거하는 집이라는 의미다. [연합뉴스]
인왕산에서 이어진 우백호 능선의 끝자락에 효창공원이 있다.
이 터의 역사는 그대로 풍수의 역사다.
풍수원리에 기초해 수원 화성을 건설할 정도로 조선 임금 중에서 가장 풍수에 해박했던 인물인 정조는 아들 문효세자와 문효를 낳은 의빈 성씨가 죽자 소나무가 울창하고 한강이 보이는 이곳에 묘지를 쓰고 '효창원(孝昌園)'이라고 이름 붙였다.
1921년 일제는 조선의 좋은 기운을 꺾기 위해 이곳에 골프장을 개설하는 등 유원지로 활용했고, 문효와 의빈의 묘를 고양시 서삼릉으로 이장했다.
해방이 되자 풍수 식견이 높은 김구 선생이 주도해 해외에서 돌아가신 독립운동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모셔와 3의사묘(三義士墓)를 조성했는데, 그 자리가 바로 문효세자가 묻혔던 곳이다. 김구도 나중에 효창공원 안에 안장되었다.
© ⓒ중앙일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최고 길지로 꼽히는 삼의사 묘역.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를 모셨다. 맨 왼쪽은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를 모신 가묘다. 왼쪽에 김구선생 묘역이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최고 길지로 꼽히는 삼의사 묘역.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를 모셨다. 맨 왼쪽은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를 모신 가묘다. 왼쪽에 김구선생 묘역이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남산에서 신라호텔을 거쳐 장충동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좋은 맥이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살면서 오늘의 삼성을 키웠던 장충동에는 지금도 CJ, 신세계, 한솔 등 범(汎)삼성 가문이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배산임수’는 농사에 좋은 터지만 장사에 좋은 터는 따로 있다. 이른바 ‘배수면가(背水面街)’. 뒤에는 돈을 상징하는 물길이, 앞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돈과 사람의 유통이 편리한 곳으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따라 이어진 종로와 을지로를 말한다.
조선시대 나라에 물품을 공급하던 상점인 육의전이 종로를 따라 들어섰고, 많은 기업들이 을지로를 중심으로 성장했음은 우연이 아니다. 청계천 상가는 지금도 전국에서 현금이 가장 많이 움직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중앙일보 1905년의 종로2가 풍경. 전차레일이 깔린 도로를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행인들이 오가고 있다. 종로는 조선시대 이래로 유통의 중심가다. [중앙포토]
1905년의 종로2가 풍경. 전차레일이 깔린 도로를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행인들이 오가고 있다. 종로는 조선시대 이래로 유통의 중심가다. [중앙포토]
© ⓒ중앙일보 서울 도심의 상징이 된 청계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말에 완전히 덮었다가 이명박 서울시장 때인 2005년에 복원을 마쳤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상징한다. 김상선 기자
서울 도심의 상징이 된 청계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말에 완전히 덮었다가 이명박 서울시장 때인 2005년에 복원을 마쳤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상징한다. 김상선 기자
◆도읍지 한양의 풍수가 좋은데 조선 왕조가 왜 그리 무능했냐는 비판도 많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중국엔 300년을 넘긴 왕조가 하나도 없는데, 그 무능한 조선 왕조가 500년을 이어간 건 그나마 풍수 덕일 거라고.
글=심재학당, 그림=안충기 기자 newnew9@joongang.co.kr
© ⓒ중앙일보 서울은 개발연대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산등성이까지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왼쪽의 인왕산과 안산에서 효창공원쪽으로 내려오는 산줄기와 오른쪽 낙산 줄기 위의 집들을 걷어내니 서울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림=안충기
서울은 개발연대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산등성이까지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왼쪽의 인왕산과 안산에서 효창공원쪽으로 내려오는 산줄기와 오른쪽 낙산 줄기 위의 집들을 걷어내니 서울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림=안충기
◆심재학당은 풍수학자 심재(心齋) 김두규 교수와 함께 영역이 다른 전문가들이 모여 공부한다. 고서 강독과 답사를 하며 풍수의 현대적 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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