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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 ◑◐ 러시아가 핵무기로 위협하면서 미국 비상상황에 빠트리자 미 국방부가 비밀리에 불러들인 한국 아저씨(feat. 미국-러시아 전쟁을 막은 남자) 본문
★★★ ◑◐ 러시아가 핵무기로 위협하면서 미국 비상상황에 빠트리자 미 국방부가 비밀리에 불러들인 한국 아저씨(feat. 미국-러시아 전쟁을 막은 남자)
Ador38 2021. 9. 9. 20:02조회수 11,650회
2021. 9. 9.
구독자 38.9만명
[광고 문의] 디씨멘터리 채널과 광고 협업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이메일로 문의해주세요. dcmentary@naver.com 러시아가 핵무기로 위협하면서 미국 비상상황에 빠트리자 미 국방부가 비밀리에 불러들인 한국 아저씨(feat. 미국-러시아 전쟁을 막은 남자) #반도체 #러시아 #미국
현재 한국의 1등 기업은 삼성이고 삼성의 핵심은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하는 삼성전자입니다.
그런데 이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강기동 박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1974년에 한국 최초로 3인치 웨이퍼 가동라인을 갖춘 전공정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를 설립했었고 삼성이 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현재에 이르렀죠. 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까요?
일제강점기였던 1933년에 태어난 강기동은 서울대학교 전기과를 졸업한 후 미국의 첨단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1950년대 말 오하이오주립대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당시 미국은 반도체 특성화 대학으로 오하이오주립대학교를 지정하고 대학 내 반도체 인력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오하이오주립대 출신의 또 한 명의 유명한 한국인이 있었으니 바로 현대 반도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강대원 박사’입니다.
그는 강기동 박사보다 3년 선배로 한국인 태생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 분에 대해서는 따로 영상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어쨌든, 강기동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반도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62년 애리조나 피닉스에 소재한 모토로라로 입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뒤 1965년. 미 국방성 서부지역 보안책임자로 근무하던 한 대령이 이름도 밝히지 않고 일급보안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방문하게 되는데 이 사건으로 강기동의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미국이 오하이오주립대학교를 반도체 특성화 대학교로 지정하는 등 반도체 분야를 집중적으로 투자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면 당시 반도체는 군사용 무기에나 적용되는 전략부품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에 적용시키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미국이 알래스카에,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두었던 이유도 탄도미사일의 무서운 탄두로 인해 장거리 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국은 러시아 바로 옆 알래스카에, 소련은 미국 바로 옆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둔 것입니다. 무거운 진공관 컴퓨터로 움직이던 초기 탄도미사일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진공관 대신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 등의 반도체를 탑재하면서부터 무게의 부담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데요.
어쨌든, 모토로라 반도체 공장을 찾은 담당자는 미 국방성이 가용한 모든 비용과 재원을 투입할테니 방사능에 노출되면 기능하지 않는 미니트맨-2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해왔죠.
그리고 미 국방성은 그에게 분리된 거대한 비밀공간을 그의 실험실을 준비해주었는데요. 사실 그는 당시 '정부가 모든 비용을 결제하는 것이라면 이 기회에 못했던 실험도 하고 비싼 새 장비도 모두 사들이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실험, 비싸서 엄두도 못내던 실험장비들을 모조리 사들였는데 이 모든 것에 대해 국방성은 아무런 제지도 없었습니다.
얼마가 들든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미 국방성은 그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승인해주었고, 필요하다하면 공군수송기를 이용해 최신 장비를 하룻밤만에 가져다 줄 정도로 그의 연구에 목매고 있었습니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기 위해서 만든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방사능에 노출되면 기능을 하지 않아버리니 얼마를 쓰든 반드시 해결해내야 하는 문제였으니까요.
당시 강기동은 스스로를 "진시황이 부럽지 않다"고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어쨌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강기동은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한 기술력을 축적했고, 반도체 제조 장비 하나를 직접 만들 수 있을만한 지식이 생겼습니다.
당시 그를 도와 함께 일했던 인물들은 실리콘 밸리로 건너가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를 설립했고 현재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 회사가 되었는데요.
그리고 그때 그의 머릿속에서는 불현듯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전기계통이니 우리나라에 필요한 전기기술을 배워와서 남이 못하는 큰 일을 해야한다"는 말이 뇌리에 깊숙히 박혀있었다가 미 국방성의 안보문제까지 해결해주고나니 다시 떠오른 것이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간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