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칭했다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고영주(사진)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논란의 발언이 처벌되지 않기까지는 “현재 우리 사회는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지만은 않는다”는 시대적 변화가 고려됐다.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법원의 입장은 다양한 의견을 ‘잘 차려진 풍요로운 밥상’으로 비유한 데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은 21일 고 전 이사장에게 판결문 등본과 확정증명서, 형사보상청구 안내문을 발송했다. 검찰이 고 전 이사장의 무죄 판결 재상고 기한인 지난 18일까지 법원에 재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된 것이다.
‘공산주의자’ ‘종북’ ‘주사파’ 등의 용어로 지칭하는 일은 명예훼손 시비를 낳았고 더러 불법 행위로 인정됐다. 법조계는 법원이 단순히 용어의 사용 여부를 놓고 처벌이나 손해배상 책임을 판단해온 것이 아니라, 시대적 정치적 흐름을 감안했다고 해석한다.
대법원은 2002년 12월에는 한 언론인을 ‘주사파’로 칭한 1998년의 월간지 기사에 대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했다. 하지만 2018년 10월에는 정치인을 ‘종북’ ‘주사파’로 칭한 트윗을 수사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보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02년에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특정인이 주사파로 지목될 경우 그는 반사회세력으로 몰리고 사회적 명성과 평판이 크게 손상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2018년에는 “주사파라는 용어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 의견은 “(2002년)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10여년 이상 지나는 동안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발전하고, 그동안 표현의 자유가 계속 확대돼 온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는 것이었다.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을 두고도 시대적 정치적 변화가 고려됐다. 대법원은 2심의 고 전 이사장 유죄 판결을 파기하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공산주의자’라는 말이 북한 정권과 긴밀히 내통하는 사람을 칭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북한 정권에 유화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사람까지도 폭넓게 의미하게 된 점을 감안했다는 설명이었다.
법원은 용어의 해석이 다양해지는 점을 감안하는 한편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잘 보장돼야 한다는 자세를 보인다. 대법원은 고 전 이사장 사건에서 “다양한 의견은 창의성의 발현이며, 잘 차려진 풍요로운 밥상과 같다”고 했다.
하급심에서도 표현의 자유의 ‘숨 쉴 공간’을 말하는 판례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법관은 “법원이 정치적 논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태도의 판례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박성영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