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빈 LKB 변호사가 22일 서울 서초동 정곡빌딩 서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검찰 수뇌부의 부당한 지휘에 맞서다가 법복을 벗었던 임수빈(61) 변호사가 최근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LKB) 대표 변호사로서 법조인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재수감돼 오너 공백기였던 2018년 12월 태광그룹 정도경영위원장(사장)으로 발탁돼 3년간 기업 쇄신 작업을 이끌었다.
대기업 임원으로 변신했다가 본업인 법률가로 복귀한 그는 "기업을 절대 봉으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임 변호사는 22일 서울 서초동 LKB 회의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기업인 경험을 십분 살려 사법 리스크를 극복하려는 기업들에 차원이 다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굴지의 로펌에서 기업들에 변호사비용을 청구하는 행태를 보며 "심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변호사 10명씩 우르르... "택시 미터기 보듯 겁나"
임 변호사는 로펌 측의 살벌한 '타임 차지'(시간에 비례한 보수 지급)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그는 정도경영위원장으로서 사측 인사 2, 3명과 대형 로펌 회의를 하게 되면 업무 파트별로 변호사가 10여 명씩 나왔던 광경을 복기했다.
"이렇게 많이 나오면 (로펌 측 준비 자료보다는) 솔직히 '택시 미터기' 올라가는 것만 보여요." 사안에 비해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로펌의 변호사 동원 행태가 과하다는 얘기다.
임 변호사는 로펌의 방대한 '자료 던지기' 문제도 빼놓지 않았다. 변호사들이 "이 서류 쓰는 데 5시간 걸렸다"는 식으로 시간에 돈을 곱해서 비용을 계산하다 보니 청구액이 '상상 초월'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업을 상대로 한 '뻥튀기' 변호사비 청구는 특정 로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임 변호사는 "아무래도 회삿돈은 개인 돈보다 좀 느슨하게 빠져나가니까 (변호사 업계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업에 법적 문제가 생겼다고 바가지 씌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돈벌이를 무시할 순 없지만 기업을 진정 사랑하고 아껴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임 변호사는 '소송 만능주의'를 부추기는 코칭 역시 옳지 않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는 "변호사는 소송 가면 무조건 이긴다고 말하지 말고 소송 장기화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수년간 재판에 따른 경영 차질 우려도 함께 고민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친정인 검찰을 향해선 "수사를 해도 기업은 살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피고인이 10여 명에 달하고 범죄사실도 수십 개가 넘는 수사는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잡으려는 혐의 입증을 위해 별건 수사로 압박하는 행태 역시 문제 삼았다.
"A 수사했다가 안 되면 B 털고, 그래도 안 되면 C 터는 식으로 장기 수사하면 어느 기업이 버틸 수 있겠어요." 임 변호사는 2017년 서울대 박사 논문 '검찰권 남용 통제방안'을 통해 별건 수사를 '타건(他件) 압박 수사'로 규정하고 폐해를 짚어내기도 했다.
그는 올해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선 법률 자체의 모호함으로 기업 부담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임 변호사는 "무조건 기업 대표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데, 면책 사유도 명확하지 않아 형사 책임이 과하게 확대됐고, 법률 적용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재량권이 너무 커졌다"고 우려했다.
소통 행보는 '쇼'가 아니라 진정성 보여야
임 변호사는 태광그룹 정도경영위원장 시절 직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뿌리 내리도록 노력했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특히 직원들과의 대화가 윗선의 소통 행보 '쇼'로 비치지 않도록 진정성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임 변호사는 "윗사람이 가끔 직원들과 밥은 먹겠지만 '애로사항 있느냐'는 형식적 대화에 그친다면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결국 직원들이 존중과 배려 속에 일에 열정을 쏟게 하려면 상시 소통 창구를 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외부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사측의 '갑질'이 있었는지, 사측과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는지, 배려 없는 행동이 있었는지 설문조사까지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기업은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3년간의 경영 활동을 통해 깨달았다고 했다. 임 변호사는 "기업은 이제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공기(公器)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임수빈 변호사는
1990년 검사로 임관해 법무부 검찰1과와 대검찰청 공안1·2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 등 요직을 거쳤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PD수첩 사건 1차 수사팀의 부장검사로서 당시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보도가 왜곡·과장된 부분은 있지만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윗선에서 기소를 압박하자 2009년 초 검찰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임 변호사는 중간 수사발표에서 '허위'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를 내비쳤다.
이후 법무법인 동인 등에서 변호사로 일했고, 2017년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18년 12월부터 태광그룹 정도경영위원장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