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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고랭지 배추밭이 진흙탕으로… “다 물러져 팔 게 없다” 본문
이정구 기자 - 9시간 전
지난 12일 오후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매봉산의 고랭지 배추 생산 단지엔 이파리가 바닥에 축 늘어진 배추만 한가득 보였다. 전날까지 사흘간 128.3㎜의 비가 쏟아지면서 배추밭은 온통 진흙탕으로 변해있었다.
태백 지역 8월 평균 강우량(278.7㎜)의 절반 수준의 비가 3일간 한꺼번에 쏟아진 셈이다. 해발고도 1200m 지역인데도 뻘밭으로 변해버린 배추밭에서는 딛는 걸음마다 발이 푹푹 빠졌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빳빳하게 하늘을 향해 자라던 배추들은 시든 채로 바닥에 잎을 떨어뜨린 채 늘어져 있었다.
◇폭우에 뻘밭 된 배추밭... 무름병까지
장화를 신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시든 배추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다. 도매 시장에 내보낼 수조차 없는 배추들 사이에서 먹을 만한 배추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멀쩡한 배추 한 포기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또 다른 한 농민은 혼자 밭에서 배추를 고르고 있었다.
이 농민은 “어디 내다 팔 수는 없겠지만, 자식 같이 키운 배추들이라 한 포기라도 건질 수 있을까 싶어 밭에 나왔다”며 “옆에 밭은 아예 올해 출하를 포기하고 폐농(밭을 정리하는 것)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며칠 새 양동이로 쏟아붓듯 내린 비에 속수무책으로 물러가는 배추를 살리려 농가들은 조기 출하와 농약 살포 등을 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날 경매장(가락1경매장 기준)에서는 전날보다 6400원 내린 1만400원에 배추가 팔렸다.
경매장 관계자는 “배추는 상태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큰데 저가에 거래되는 물량만 경매장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통상 밭에서 출하하는 배추의 20%가 도매시장으로 나와 대형마트·시장 등 일반 소비자들 가정으로 가고 품질이 낮은 배추는 김치공장 등으로 간다.
올해는 도매 시장에 내놓는 배추가 10% 미만이 될 거라고 농민들은 추정한다. 배추 소매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날 배추밭을 일구던 한 농민은 “가뜩이나 7월 폭염으로 배추가 잘 자라지 못했는데 수확을 앞두고 비까지 쏟아지면서 배추들이 ‘무름병’에 걸려버렸다”고 말했다. 배추 밑동부터 썩기 시작하는 무름병은 빗물 등을 통해 병원균이 확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산물 가격, 이번 주부터 급등할 듯
추석 명절 특수로 과일 등 제수 가격이 오르는 것은 통상 명절 일주일 전이다. 하지만 가격 급등세는 이번 주부터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휴 동안 중부권을 중심으로 폭우가 더 쏟아지면서 비 피해 지역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충남 청양·부여 지역에서는 멜론과 수박, 포도 비닐하우스 약 1550동(棟)이 집중호우 피해를 봤다. 시간당 100㎜ 이상 내린 비로 물에 약한 멜론과 수박 등이 흙탕물에 잠겨버렸다. 수확을 일주일 남기고 내린 폭우로 농민들은 “한 해 농사를 다 망쳤다”고 말했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농경지가 대거 피해를 보자 유통 업계에서도 당장 이번 주부터 일부 농산물에 대한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신선 채소, 과일에 대한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가격도 가파르게 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중부지방을 강타한 폭우로 농작물 1754ha와 농경지 14.8ha, 비닐하우스 0.1ha가 훼손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피해 면적만 따져도 축구장 면적(0.7ha)의 2527배, 여의도 면적(290ha)의 6배에 달한다.
육계 8만1600마리, 산란계 250마리 등 가축 8만1857마리가 폐사하기도 했다. 또다시 중부 지역에 폭우가 예상되면서 피해 지역이 늘고 기존 피해 지역에 대한 복구도 늦어지면 가격 인상은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