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속 950고지의 생과 사 - 라오스 후웨이호댐 건설 프로젝트'
▶해외건설의 신기원
- 기획제안형 프로젝트 B.O.T 방식 제안 1993년 9월 23일, 대우건설은 라오스에서 1억 5천만 달러 규모의 댐공사를 수주했다. 한국 해외 건설사상 최초로 B.O.T (Build, Operate & Transfer) 방식으로 수주한 이 댐은 단순 시공을 탈피해 해외건설의 신기원을 마련한 도전이었다.
80년대 후반, 해외건설 시장에서 입찰경쟁을 통한 단순 공사 수주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제고할 수 없고, 수익성을 증대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대우건설은 획기적인 '기획제안형 프로젝트' 발굴에 힘쓰기 시작했다. 이후 90년대 초, 침체된 해외 건설시장의 돌파구를 찾던 중 미수교국인 라오스가 풍부한 강수량을 이용해 전력의 75%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게 됐다.
라오스 천혜의 자원인 풍부한 강수량을 이용한 수력 발전소를 건립하고 생산된 전력을 전량 태국에 판매하는 B.O.T 방식을 라오스 정부에 제안하고, 자금과 공사 수행능력이 없는 라오스 정부를 설득해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나갔다.
대우건설에서 최초로 시도한 B.O.T (Build, Operate & Transfer) 방식의 기획제안형 프로젝트란, 공사를 수주한 기업이 프로젝트의 기획 및 설계, 건설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완성 후에도 그 운영을 맡아 수입을 올림으로써 프로젝트 건설비용을 회수하고 그 후에 양도하는 방식을 말한다.
▶우리 기술로 독자 설계, 우리 손으로 댐을 건설하라 !
대규모 토목공사에 해당하는 댐공사를 우리 기술로 직접 독자 설계하고, 건설하라 ! 후웨이호댐 수력발전 프로젝트는 라오스 메콩강의 지류인 세콩강의 풍부한 강수량을 이용하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로 높이 80m, 길이 400m의 댐을 쌓아 물을 담수한 다음, 아시아 최대규모인 715m 수직터널의 낙차를 이용해 발전용량 150MW의 전기를 생산하는 대규모 토목, 플랜트 공사였다.
국내 최대의 소양강을 비롯한 국내 유명한 수력발전소인 충주댐, 대청댐, 팔당댐, 안동댐 등의 경우에도 댐 설계는 해외 기술력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만 7년에 걸쳐 진행된 라오스 후웨이호댐 건설 프로젝트는 설계부터 건설까지 우리 손으로 건설한 국내외 건설사에서 보기 드문 도전이었다.
▶밀림 속의 수광(水鑛)을 잡아라 !
93년 9월, 계약 체결과 동시에 선발대를 라오스 밀림으로 파견, 수개월에 걸친 현장 조사 및 기반공사를 시작으로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나갔다. 붉은 황톳물이 사계절을 채우는 메콩강과 그 지류인 세콩강이 만나는 라오스 남부 팍세(Pakexe) 지방. 사람의 발길을 허락한 적 없는 금단의 땅,
밀림 속 해발 950m 고원지역에서 이 나라 최고이자 최초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대 역사를 시작했다. 99년 9월, 태국으로 전력을 수출하는 그 날까지.. 라오스 밀림 속에서 수광(水鑛)을 잡기 위한 우리의 건설역군들의 사투가 시작됐다.
▶금단의 땅,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다 ! 1989년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을 선언한 라오스. 그러나, 라오스의 낙후된 국가기반 시설 수준은 도로나 교량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공사 초기, 가장 먼저 대형 장비를 현장으로 운송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대규모 댐공사는 한 마디로 장비와의 싸움이다. 내륙국가인 탓에 항만이 없는 라오스는 모든 수입물자를 태국 등 인근 국가를 거쳐야만 했고, 대형 중장비 운송을 위해 도로 보수 및 신설하고 하천 우회도로와 교량을 건설하는 등 장비 동원하느라 전쟁을 방불케 하는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에 따라 공사 일정 또한 6개월 이상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넉 달에 걸쳐 계속되는 라오스의 우기는 도저히 공사를 진행시킬 수 없는 형편이었다. 장비 수급은 물론이고, 식량 보급마저 힘든 위기 상황이 연이어 계속했다.
하지만, 라오스의 제 3의 도시라는 팍세에도 통신시설이 없어 외부와의 연락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 공사 철수가 조심스레 논의되는 가운데, 그들은 과감한 도전을 선택했다. 미지의 땅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노라는 굳은 다짐, 이것이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었다.
▶아시아 최대 715m 수직터널 낙차댐 건설 성공 ! 94년 11월, 본댐 기초굴착을 시작으로 드디어 아시아 최대의 낙차댐의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건기엔 공사에 필요한 물이 부족하고, 우기엔 집중호우로 유량이 증가해 범람의 위험이 따르는 절박한 상황은 계속됐고. 그 속에서 24시간 철야작업을 불사하며 혹독한 물과의 전쟁을 치루며 본댐 성토에 성공했다.
후웨이호댐 수력발전 프로젝트의 최대 하이라이트이자 난공사 중의 난공사 구간은 바로 715m 수직터널 공사. 댐 공사에 처음 도전한 이 수직터널 공사의 성공은 바로 후웨이호댐 수력발전 프로젝트의 성공과 다름없는 현안이었다. 수직 터널 시공 방법을 고민하던 대우건설은 금광개발의 선진 기술을 보유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담당자를 급파, 기술 습득에 매진했다.
그 후 완성되기까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수직터널 건설에 작업자들은 목숨을 걸고 도전했고, 그 결과 아시아 최고의 715m 수직터널의 건설 경험을 축적하게 됐다. 1997년 4월 25일, 라오스 수상과 정부 관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 최대 낙차를 자랑하는 후웨이호댐의 준공식이 펼쳐졌다.
댐과 수직터널을 준공함으로써 6억톤의 물을 담수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대우건설은 발전소 및 송전선로까지 댐 건설과 운영에 관련된 시설 공사를 완료하고, 1999년 9월부터 본격적인 전력 생각에 돌입, 태국으로 수출이 가능해졌다.
지난 93년 첫 삽을 뜬 이래 99년 9월 본격적인 상업 생산을 시작한 후웨이호댐 수력발전 프로젝트는 연간 614Gwh의 전력을 생산해 대우건설에 연간 3천만불의 수익을 안겨주었다.
▶한국 - 라오스 국교수립의 디딤돌 !
2000년 10월, 라오스 후웨이호댐 프로젝트의 성공 이후, 라오스에 대규모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외국 기업인으로써는 최초로 라오스 정부 최고의 훈장을 수여받는 영예를 얻었다.
대우건설의 성공적인 공사 수행으로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았던 한국 - 라오스 양국간의 외교관계에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으며, 한국의 다른 기업들이 라오스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