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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 [유석재의 돌발史전] “중국이 백제·신라 역사도 강탈!”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본문
유석재 기자 - 1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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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게 말이 됩니까?”
2007년 6월 2일 자정이 가까운 밤, 저는 마포구 동교동 골목을 서둘러 걷고 있었습니다. 이미 취재 때문에 여러 번 갔던 서길수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전 서경대 교수, 현 고구리·고리연구소 이사장)의 연구소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의 동북공정 관련 기사를 100건 넘게 썼지만, 이렇게 황당한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파헤치던 서길수 교수와 통화 도중 “중국이 고구려뿐 아니라 백제와 신라 역시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믿기지 않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연구실로 들어서서 서 교수와 만나자 그는 문제의 책을 내밀었습니다. 동북공정을 주관한 단체는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의 ‘변강사지연구중심’이었습니다. 이 단체의 중심 인물인 마다정(馬大正)과 리다룽(李大龍) 같은 학자들은 본래 고대사 전문가도, 고구려 전문가도 아닌 국경 문제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저는 중국의 옛 ‘서북 변경’인 투루판에 갔다가 서점에서 그들의 이름이 적힌 ‘서북공정’ 관련 연구서를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국책 연구인 ‘변경 연구’를 진행했던 학자들이 미리 정해 놓은 목적에 따라 서북 변경에서 ‘동북 변경’으로 옮겨 동북공정을 시작했다는 뜻이 됩니다.
서길수 교수는 그 변강사지연구중심이 동북공정 공식 시작 1년 전인 2001년에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총론’(흑룡강교육출판사)을 출간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완역본을 내는 과정에서 기가 막힌 내용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이 책은 ‘중국이 쓴 고구려 역사’(여유당)란 제목으로 출간됐죠.
그 기막힌 내용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서 교수가 말했습니다.
“중국이 백제와 신라를 ‘기미(羈縻) 통치’의 방식으로 다스렸다는 거예요.”
기미란 ‘굴레와 고삐’란 의미로, 중국 측에서 이적(夷狄)에 대한 통제 및 회유책으로 주변 국가를 중국에 조공하게 해 관직을 수여하는 대신 그에 상응한 경제적 보상을 하는 일을 말합니다. 이것을 본따 조선이 여진족에 행한 정책도 기미정책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인근 국가나 민족에 대한 일종의 회유책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기미 ‘통치’라고 하면 엉뚱하게도 이 정책을 통해 인근 국가를 통치했다는 의미라 둔갑하게 됩니다.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총론’은 275쪽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고대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인 부여인의 한 갈래가 건립한 정권이다.(百濟也是我國古代的邊疆少數民族夫餘人的一支建立的政權)” 277쪽은 또 이런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당나라는 (백제가 멸망한) 660년 이전에는 기미통치를, 그 이후엔 직접통치를 했다.”
백제는 중국 남북조시대 북조를 통일한 강국이었던 북위와 5세기 후반 세 차례 전쟁을 벌여 모두 승리한 사실이 있고, 남조와는 줄곧 친선 관계였습니다. 이것이 기미 ‘통치’였다고?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가 설치한 웅진도독부는 이북5도청 같은 명목상의 기구였고 그나마 16년 만에 사라졌는데 무슨 ‘그 이후 직접통치’를 했다는 건지 황당할 지경이었습니다.
신라에 대한 기술은 더 기가 막혔습니다. “중국 진(秦)나라의 망명자들이 세운 정권이었다.(以秦世亡人爲主政權)”(266쪽) “중국의 번속국으로서 당나라가 관리권을 갖고 있었다.”(272쪽)
진나라 망명자라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이며, 서기 675년 매소성 전투와 676년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와 싸워 패퇴한 뒤 다시는 한반도에 군사를 파견하지 못했던 당나라가 무슨 ‘관리권’을 어떻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지요.
하지만 이 실소가 나오는 내용을 쓴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총론’은 2003년의 그 후속편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속론’과 함께 동북공정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게 됩니다.
서길수 교수가 말했습니다. “백제와 신라가 기미 통치를 받았다는 것은 이 책 이전까지 중국 학계가 전혀 언급한 적이 없는 정치적이고 무리한 해석입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이건 한국 고대사 전체를 빼앗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되는 내용으로 봐야 해요.”
동북공정의 주 왜곡 내용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의 왕조가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중국사의 일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제와 신라까지 중국이 통치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결국 한국사 전체를 침탈하려는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이 내용은 2007년 6월 4일자 조선일보 1면에 보도됐습니다.
학자들의 반응은 역시 황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사(당사) 전공인 김택민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학계에서 백제 멸망 이후 잠시 웅진도독부를 설치한 것을 ‘기미’라고 해석한 적은 있지만 그 전의 백제를 기미통치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국고대사 전공인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국은 신라를 이웃 독립국가로 여겨 왔으며 ‘기미’란 것은 처음 나온 얘기다. 조공·책봉 제도를 중앙과 지방 정권의 관계라고 무리하게 해석한다면 아시아 대부분이 중국 영토라는 논리가 된다.”
하지만 당시 다른 언론은 이 보도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사 왜곡이라면 모르겠지만 한국사 전체 침탈이라니,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생각이었을까요.
그러나 그 보도로부터 10년 뒤인 2017년 4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한 이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진핑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을 하더라.”
한국인들이 크게 놀란 이 뉴스는 이미 10년 전에 그 근거가 보도됐던 셈입니다.
동북공정은 공식적으로 2007년에 끝났으나 중국 지린성 사회과학원이 그 업무를 계승해 2017년까지 학술지 ‘동북사지’를 냈습니다. 바이두 백과 등을 통한 인터넷상의 왜곡 작업도 진행해 이젠 고조선에서 조선에 이르는 한국사의 역대 왕조를 중국의 ‘번속국’으로 규정했습니다.
교과서엔 아직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는 노골적인 왜곡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을 ‘요동을 쳤다’고 써서 마치 중국의 ‘내전’인 것처럼 기술했습니다. 마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아니라 ‘군사 작전’이라 강변했던 것을 연상케 합니다.
이렇게 역사 왜곡을 사실상 끝내 놓은 중국은 그것을 기반으로 ‘한복공정’과 ‘김치공정’ 같은 문화 침탈에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중국 국가박물관이 한·중·일 청동기전의 한국 역사 연표에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측이 제공한 원 자료를 마음대로 뜯어고쳐 고구려와 발해를 삭제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2004년 ‘고구려사 문제를 정치화하지 않는다’고 중국과 구두 합의한 한국 정부는 그 이후로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이번에도 문제의 연표를 수정하는 대신 서둘러 떼냈습니다. 그들은 한국 정부와 국민이 또 이 문제를 금세 잊어버리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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