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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현재 군사력 그 어느 때 보다 강하다 본문

😲😳🙄 DH.국회.법원.헌재.

북한의 현재 군사력 그 어느 때 보다 강하다

Ador38 2012. 4. 12. 12:29

북한의 현재 군사력 그 어느 때 보다 강하다
2010년의 도발처럼 한미 동맹군 우세가 발휘 될 수 없는 틈새를 노려 도발
이춘근

북한의 군사력은 지난 수십년 동안의 경제 파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증강을 이룩, 2011년 건국 이후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최근 간행된 『북한의 군사력과 군사전략』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군사력이 증강 되어온 패턴과 북한의 군사전략을 분석하고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 보고서는 북한은 한국 전쟁 이전부터 일제가 남기고 간 군수산업을 통해 막강한 군사력을 갖출 수 있었으며 한국 전쟁이후 스스로 전쟁할 수 있는‘독자적 수행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분석한다. 북한이 독자적 수행 능력의 건설을 강조한 것은 무력 통일의 기회가 온다면 언제라도 군사적 공격을 가할 의도가 있다는 북한의 통일전략의 특징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미 동맹의 능력을 감당하기 벅찼던 북한은 아예 국가 사회를 전체를 군사화 시키는 방법을 통해 군사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60년대 이후 소위 4대 군사노선은 북한 사회 전체를 아예 병영처럼 만든 것이었고 병영화 된 북한은 그 자체로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불안 요인이 되어 왔다.

보고서는 냉전 종식 이후 경제파탄 상황에 직면한 북한은 역시 대남 군사우위를 결코 놓칠 수 없다는 일념하에 핵무기 개발을 본격화 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핵개발 의도는 사실 한국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고 동 보고서는 주장한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가 전쟁에서 사용 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춘 무기 체계로 발전, 완성되는 경우 대한민국은 기존의 군사전략으로 북한의 군사도발을 억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은 북한의 어떤 도발도 전면 공격으로 간주하고 이에 공격적으로 대처할 것이라는 소위 작계 5027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해 왔는데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경우 북한의 공격을 공격으로 되받아 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미국의 전술핵 재반입, 한국의 핵무장 고려 등 몇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2011년 기준 북한의 군사력은 대한민국의 군사력을 능가할 수 있는 위협적인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북한이 대한민국을 향해 전면 공격을 가하기보다는 자신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유리한 전쟁 방식을 강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북한은 미국군이 개입할 수 있는 수준의 도발은 피하고자 할 것이며 한국군의 우세한 무기 체계가 작동하기 어려운 곳을 골라서 공격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빈번히 발발하는 서해5도 지역에서의 도발은 한국군의 우세와 미군개입의 가능성이 차단될 수 있는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북한의 비정규전 군사력이 대폭 증강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0만 육군 중 특수전 부대가 20만이라는 현실은 북한이 준비하고 있는 군사도발 형태가 기습, 비정규전임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김정일이 사망하기 이전 완료 된 것이지만 김정은 정권의 경우도 역시 북한의 군사력을 그 통치 기반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북한 군사력과 군사전략의 현황에 관한 이해는 지속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동 보고서는 가용한 권위 있는 자료들을 인용 북한 군사력의 증강 패턴을 수십년에 걸쳐 추적하고 있다. 북한 정권 수립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중요한 시점에서 북한의 군사력에 관한 자세한 자료들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는 북한 군사력의 패턴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군사력과 군사전략

 

이춘근 선임연구위원

 

문제 제기와 연구 목적

 

북한 정권이 수립 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대한민국의 존립 그 자체를 위협하는 주적(主敵)이었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3년 1개월에 걸치는 피비린내 나는 민족상잔을 주도 했었다. 한국 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점령 통일 한다는 전략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북한은 대화 공세를 전개한 적도 있었고 화해의 제스처를 쓴 적도 있었다. 북한의 목표 역시 평화적으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통일 정책 중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통일을 위해 무력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박정희 정부 시절 무력에 의한 통일 정책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북한의 통일정책이 대한민국의 통일정책과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 한 가지는 위의 질문 -즉 통일을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가?- 에 대해 북한 위정자들은 전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북한은 상황이 조성 된다면, 혹은 평화적인 수단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면, 언제라도 통일을 위해서 군사적 수단을 사용, 한국을 무력 정복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무력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궁극적인 수단인 군사력 건설과 준비를 건국 이래 단 한 순간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본 연구는 2010년 3월 26일 북한이 대한민국의 초계함 천안함을 격침 시킨데 이어 같은 해 11월 23일 연평도를 향해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북한의 군사도발 행태를 바라보며, 향후 북한이 대한민국과 세계를 향해 어떤 모습의 도발을 해 올 것인가? 그리고 북한은 어떤 종류의 도발을 할 수 있는 군사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인가? 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학문적인 동기와 필요성에서 준비된 것이다.

 

연구내용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증강 현황과 전략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국가들 중에 상당 수준의 무장을 갖추지 않은 나라는 없다. 경제력이 막강한 나라가 강력한 무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지만 각국의 군사 자료를 살펴보면 아주 가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무장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경제와 군사에서 역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나라들이 몇 나라 있지만 경제력이 약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이 전혀 줄고 있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증강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북한이다.

 

2010년 9월 28일 김정일의 여동생과 3남 김경희와 김정은을 대장으로 임명한 바로 그날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서도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 사상화 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고 다시 강조하고 있다. 2010년 개정된 당 규약은 조선로동당을 아예 김일성의 당이라고 규정하여 사당화(私黨化) 시키고 있었으며, 강성대국의 건설을 국가전략 목표로 승격시키고 있을 정도로 군사적이다.

 

2010년 개정된 당 규약 역시 “조선노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 침략 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 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 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지지 성원하며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 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현존 체제를 타파하는 것을 목표를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한 전제가 주한미군 철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한 미군이 철수한 이후 북한은 대한민국을 평화적으로 북한체제에 편입시키는 통일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애초 건국당시부터 군사 국가를 지향한 나라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하고 과거 극비문서들이 공개됨으로서 밝혀지게 된 사실이지만 김일성은 스탈린을 먼저 설득하여 대남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인물이며 자신이 군인(장군)으로 인식(identify)되기를 원하는 자였다. 비록 대위에 불과 했지만 그는 북한에 소개 될 당시 이미 장군의 칭호를 가지고 있던 자였으며 스스로 정치가보다는 군인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김일성의 뒤를 이은 김정일 역시 자신이 장군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국가를 대표하는 타이틀로 수상, 주석, 총통 혹은 대통령 이라는 직함 대신에 ‘국방위원장’의 직함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지명된 김정은은 2010년 9월 28일, 아예 북한군 “대장”으로 취임했다. 약관 27세인 김정은이 대장의 칭호를 가지는 것 자체가 북한이라는 정치 체제의 속성을 그대로 묘사한다. 요즈음 북한에서 김정은을 호칭하는 말은 “김 대장”이다. 대장이 제일 잘하는 일이 전쟁, 무력도발 외에 무엇이겠는가?

 

건국 이후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북한은 단 한 순간이라도 군사력 증강에 매진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북한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기준이 ‘군사력의 증강과 유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연구는 북한군이 건군 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시대별로 북한 군사력 증강의 패턴을 분석했다. 60년을 관통해서 나타나는 북한 군사력 건설 및 증강 패턴은 북한은 어떤 경우라도 대한민국의 군사력보다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한다는 원칙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파탄 상태에 이른 경우라도 이 원칙은 지켜졌고,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질적인 측면에서 북한의 군사력을 압도하게 된 90년 무렵 이후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통해 열세를 만회하는 것은 물론 대남 군사력 우세를 지속 시키고자 노력했다.

 

북한은 특히 한국 전쟁 이후 중국이나 소련의 지원이 없어도 전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소위 ‘독자적 전쟁수행 능력’ 을 갖추기 위해 노력 했다. 북한의군사력 건설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입각, 시대별로 모습을 달리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원칙에서는 변함이 없었다. 북한은 1960년대에 발표 되었고 오늘까지도 일관성 있게 지속되고 있는 4대 군사 로선을 통해 북한 군사력 건설에 매진했다. 전 인민의 무장화, 전 군의 간부화, 전 국토의 요새화, 군사의 현대화라는 군사력 증강 원칙은 헌법에 삽입되었을 정도로 북한 군사력 증강의 지도 원칙이 되었다.

 

북한은 증강 된 군사력을 동원 대남 군사도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60년대 말엽 월남전에 자극을 받아 대한민국에 대한 간접 침투작전을 전개하기 시작한 북한은 1970년대에는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는 특수 전 병력 수도 대폭 늘렸다. 1970년대는 특히 북한 군사력이 양적 확대를 이룩한 시기였다.

 

북한의 군사력은 냉전이 해소된 1990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20년 동안, 그리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지난 20년 동안, 전혀 감소되거나 약화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흔히 생각하듯 ‘북한은 경제파탄이 심각해서 더 이상 대한민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없다’는 생각을 비웃기나 하듯 북한은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 중에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2011년도 남북한 군사력을 가능한 한 최신 자료를 가지고 분석한 결과 북한의 군사력은 한국보다 오히려 강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울한 현실이다. 총병력 수는 한국군 보다 북한군이 월등히 우세하며, 특히 북한군은 그 편제 및 배치 자체가 공격전쟁을 위한 모습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북한 육군 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부분은 한국의 후방을 교란 시킬 수 있는 20만 명에 이르는 특수전 부대다. 이들의 침투를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북한의 선제공격 의도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이 야기하는 어떤 종류의 도발일지라도, 그것이 비록 소규모의 국지적인 게릴라 전쟁이라 할지라도 한국군은 이를 곧 전면전으로 간주하고 되받아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 북한의 도발은 억제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예로서 북한이 우리가 방어하기 대단히 곤란한 휴전선 부근의 한 지점 혹은 서해 5도의 한 섬을 기습 공격해서 점령할 경우, 우리는 ‘해주를 공격해서 점령할 수 밖에 없다’ 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북한 측에 전달 할 때, 모든 종류의 도발이 사전에 억제 될 수 있다. 이것이 재래식 전쟁억지(conventional deterrence)의 전형적인 방법이며 사실 한반도의 평화는 이 같은 방식에 의해 유지되어왔다.

 

한국이 확실히 우위에 있을 것임이 당연시 되었던 해군과 공군의 경우도 한국 측이 북한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해군의 경우 한국 해군이 북한 해군보다 장비 면에서 막강한 것은 사실이나 최근 한국 해군은 해로를 보호하기 위한 대전략에 따라 성장했지, 오로지 북한의 침투를 막거나 북한과의 전쟁만을 염두에 두고 건조된 군사력이 아니다.

 

또한 한국 해군이 북한 해군보다 질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도발을 당했고, 도발을 당한 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도 못했다는 것은 작년의 북한 도발 사태들(천안함, 연평도)에서도 증명된 사실들이다. 북한은 비록 약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한국을 무력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앞으로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우리의 대북 군사전략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공군 역시 질적인 면에서는 북한을 압도할 수 있지만 양적인 열세는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다. 한국공군이 보유한 신형 전투기 숫자가 북한의 신형 전투기 보다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한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다수의 전투기들은 북한이 보유한 전투기들보다 특별히 탁월한 기종도 아니다. 북한이 보유한 전투기들은 비록 낡은 기종들이기는 하지만 전쟁이 발발했을 초기, 기습 공격 작전을 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수준의 무기들이다. 최근 대한민국 공군은 전투기가 아니라 조종사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한국군의 무기 체계가 점차 정밀화•첨단화의 추세로 나가고 있는데 이를 유지,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은 점차 부족해지고 있다는 점도 유염해야 한다. 군에서 장기 복무하는 전문 기술 하사관의 숫자가 부족하여 첨단 장비 운용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우리 군의 현실이다. 군대 복무기간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에서 첨단 장비가 많이 있더라도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능력이 확보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마음을 놓고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이 같은 전략적, 전술적 열세 하에 있는 대한민국이 북한의 무력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전쟁억지 방안이 있다. 그 방안은 바로 전통적인 재래식 전쟁 억지 이론(Theory of Conventional Deterrence)이 가르쳐 주고 있다. 즉 북한이 어떤 규모의 도발을 가해 올 경우라도 한국을 이를 방어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되받아 침으로서 전쟁을 전면전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인식을 북한에게 확신시키는 것이다.

 

북한의 핵 군사력 현황과 전략

 

북한은 1970년대 후반 적극적 후견자였던 중국의 자본주의화, 1980년대 후반에는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자 북한 건국의 주역이었던 소련의 몰락이라는 국제정치적인 우환을 겪게 된다. 국제공산주의가 모두 몰락한 1990년대 이후 북한은 사실상 홀로 남은 공산주의 국가로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국제상황아래 노출되고 만 것이다.

 

북한은 이 시기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체제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대신 변형된 공산주의인 주체사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행을 저지르고 만다. 북한은 이를 위해 핵무기 개발이라는 강수를 두게 된다. 지극히 불리해진 국제환경 속에서 북한의 위정자들은 핵무기를 위시한 막강한 군사력이 있으면 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물론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핵무기와 대량파괴 무기는 군사적 성격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라는 강수를, 미국과 타협하고 미국으로부터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즉 북한이 보유하고자 하는 핵무기는 군사적, 정치적 목적 두 가지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 전쟁이 끝난 후 불과 1년 밖에 지나지 않는 1954년 무렵부터 핵무기 개발에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의 핵위협에 당면했던 북한은 1954년 인민군을 재편성하는 가운데 인민군 내에 ‘핵무기 방위 부문’을 설치했던 것이다. 2년 후인 1956년 북한은 30명의 핵물리학자를 소련의 핵 연구소에 파견했고 이것이 북한 핵개발 노력의 효시였다.

 

북한은 1959년 9월 소련과 조소원자력협정(朝蘇原子力協定)을 체결했고, 1962년에는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를 설치했으며, 이어 김일성대학과 김책 공과대학에 핵연구 부분을 창설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인 핵 연구를 개시한 북한의 지도자들은 핵보유에 관한 공식적인 언급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 핵 비확산 체제에 순응적인 태도를 취했다. 북한은 197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 국제 핵안전 체제에 들어가 있었고, 한국이 국제원자력 기구에 국장급 관리를 파견한데 비해 북한은 대표부를 상주시켜 원자력 외교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북한은 1985년 12월 핵확산 금지조약에 가입했고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IAEA의 이사국을 지내기도 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은밀히 진행하는 한편, 국제 비 핵확산 체제에 적극적으로 동참 핵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침으로써 1970년대 국제사회에서 핵확산 위험 국가로 주목을 받는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남한이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구체적인 국제 문제로 부각된 것은 1989년 미국의 정찰 위성에 의해 영변의 핵시설이 핵폭탄 제조를 위한 시설이라는 의혹을 받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는 20년 동안 북한 핵문제는 긴장 상태와 소강상태(小康狀態)의 연속이었지만 이 기간 중 어느 시기에도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진정으로 포기한 적은 없었다. 잠깐씩의 소강상태는 언제라도 더욱 심각한 북한 핵 위협을 초래하는 준비기간에 불과했다.

 

북한은 현재 플루토늄 방식과 함께 우라늄농축을 통한 핵무기 제조 기술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북한이 이처럼 핵무기를 제조하는 각종 방식을 모두 다 가지고 있으리라고 상정하는 것은 북한의 과학 기술이 탁월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라늄 농축기술은 이미 1945년도 미국이 실제 일본에 투하한 핵폭탄에서 사용되었던 60년도 넘은 기술인 것이다. 대한민국도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국제정치적인 환경만 보장 되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 핵폭탄이다.

 

핵무기 체계(nuclear weapons system)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핵폭탄(탄두)와 더불어 이것을 표적까지 운반할 수 있는 운반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강 중요한 핵무기 운반수단은 폭격기와 미사일인데 특히 미사일이야 말로 핵폭탄과 더불어 핵무기 체계를 완성하는 핵심적 무기 체계다. 북한은 탄도미사일 제조 기술을 습득한 이래 스커드 B 미사일을 원형으로 삼아 스커드 C, 그리고 스커드 D 미사일을 개발하였다. 스커드 D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700Km 이상에 이르는 것이며 노동 미사일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미국의 정찰 위성이 북한의 함경도 동해안 지역의 노동(蘆洞)이라는 마을에서 발견 한 미사일이기 때문에 미국이 노동(No-dong) 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노동자라는 의미의 노동이 아니다. 2006년 북한이 실시한 미사일 실험 자료를 근거로 판단한다면 북한은 현재 사정거리가 향상된 소위 ER(extended range)스커드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그 사정거리는 이미 850Km에 이르렀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그 역사도 길고 능력도 우리의 예상을 넘는 것이다. 다만 북한이 미사일에 장착 할 만 한 수준으로 핵폭탄을 소형 화 시켰는지에 대해서 확실한 정보는 없다. 우리는 다만 북한은 금명간 핵무기 체계를 완성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체계를 완비하는 경우, 우리의 대북 전쟁 억제 군사 전략은 더 이상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상황으로 뒤바뀔 것이다. 핵무기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갖추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는 전쟁을 직접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파괴력이 강하기 때문에 클라우제비츠적 전쟁 관점이 도저히 적용될 수 없다.

 

즉 핵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다. 재래식 무기와는 달리 일정량이 넘으면 더 보유하고 있어도 별 의미가 없는 무기이며, 폭발력이 강해질수록 쓸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줄어드는 역설적인 무기다.

 

전략이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일이며 북한이 미국까지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 체계를 갖추는 날이 곧 닥쳐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만약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게 된 다면 그때 한반도의 전략 구도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안보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대남 군사전략, 김일성-김정일의 군사전략 사상

 

김일성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전쟁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클라우제비츠식 논리를 전적으로 신봉하고 있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프러시아 전쟁 철학자 클라우제비츠 장군의 논리는 공산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신봉하는 전쟁이론이다. 레닌은 클라우제비츠의 책을 잃고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이 책에는 못 쓸 말이 하나도 없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읽으면서 책 여백에 레닌이 필기해 두었던 깨알 같은 글자들만으로 한권의 책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김일성도 역시 다른 공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러지 않았으면 정권 수립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대 전쟁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을 단지 수단으로 생각하는 북한이 오늘 대한민국에 비해 전략적으로 우위에 서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북한은 전쟁을 수단에 불과하다고 믿는 것과는 정 반대로 대한민국은 전쟁을 평화와 같은 수준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는데 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혹은 고위정치가들이 국민들을 향해 ‘전쟁입니까? 평화입니까?’라는 개념 없는 질문을 할 정도가 되었다.

 

평화는 고귀한 목적이지만 전쟁은 평화를 지키는 '수단'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처럼 변질된 대한민국이 전략적으로 북한에게 우위에 서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전쟁에 관한 관점, 전략사상의 측면에서 남북한은 대단히 비대칭적(Asymmetric) 상황에 놓여있게 되었다.

 

김일성은 또한 전쟁을 계급투쟁의 연속이라고 보았다. 계급투쟁은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인식하는 공산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의 수단이다. 북한은 건국이후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을 반민족적, 외세 굴종적인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있다. 남한의 민족을 해방시켜야하는 것이 북한의 목표라고 강변한다. 북한은 민족해방 전쟁, 계급해방 전쟁은 정의의 전쟁으로 간주하고 제국주의자가 일으키는 전쟁은 불의의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인민군 원수의 계급을 차지하고 있으며 장군이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지만, 김일성과는 달리 그 자신이 전쟁을 경험한 인물도 아니고 군사전략에 능통한 인물도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김일성으로부터 물려받은, 혹은 탈취한 북한의 군사력을 장악하고 군사력의 사용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인물이며 군사력과 그 사용, 전쟁에 관한 견해를 여러 경로를 통해 피력해 왔다. 김정일의 전쟁에 관한 관점은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탈출했던 최고위 인물인 황장엽 선생의 증언으로부터 많은 부분이 밝혀졌다.

 

김정일은 군대를 강력하게 유지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노력 해 온 북한은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일성은 국토의 절반만을 해방시켰을 뿐이지만 김정일은 무력통일을 실현하고 통일조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김정일은 대한민국과의 전쟁은 기껏해야 6개월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래서 전쟁물자도 6개월 치를 비축해 두고 있다. 북한은 동경 등 일본의 도시를 미사일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미국이 개입하는 것을 사전에 억지한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김일성이 사망(1994년 7월)하기 약 2년 전 김정일은 작전사령부 작전반과 함께 한국침략을 위한 시나리오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인민의 생활이 아직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침략 계획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1991년 미국의 걸프전쟁을 면밀히 관찰,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체계의 약점을 분석하고 그것을 격파하는 영화를 제작, 작전국 등 북한군 지휘부 간부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미국과 싸워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김정일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고 호헌한다. 사실 김정일은 단독 명령으로 대남 군사도발 혹은 전쟁을 개시할 수도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조국통일의 주역은 군사력이기 때문에 총력을 다해 군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더 나아가 김정일은 “조선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조선이 없어진다면 세계와 함께 자폭 하겠다.”고 호언했다. 김정일은 ‘대한민국은 북한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것이 아니냐는’ 김일성의 질문에 대해 그럴 경우 북한은 지구를 깨 버리겠다고 호언할 정도로 과대 망상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김정일은 “남조선 인민들은 전쟁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총 몇 방만 쏘면 다 도망간다. 식량과 기름이 부족하지만 휴전선만 넘으면 남조선에 식량과 기름이 많이 있다. 이것을 사용하면 쉽게 남조선을 먹을 수 있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김정일이 이처럼 미국의 초현대식 군사력에 대해서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북한이 벌일 전쟁이 미국의 직접 개입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범위에서 이루어 질것임을 시사한다. 북한은 한국을 향한 기습속결전을 통해 미국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후 미국과 협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이 기습 속결 작전을 통해 서울의 일부를 점령한 후 미국과 협상을 통해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김정일은 전투경험이 있는 부친 김일성과는 달리 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정권을 장악한 후 줄곧 어떻게 군을 통제할 것이냐에 대해 대단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자신 계열의 인맥을 군내부에 투입, 북한의 장성급 장교들을 거의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은 스스로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직을 겸임함으로써 북한군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했다.

 

김정일은 군부에 대한 감시 체계도 확립해 놓았다. 그러나 동시에 김정일은 군을 장악하기 위해, 군부의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일은 북한 장군들을 대거 승진시킴으로써 계급을 부풀려 놓았고 각종 기념일 등에 장군들에 벤츠 자동차 등 값비싼 선물을 제공함으로써 군부의 충성을 사기위해 노력했다.

 

북한의 대남 무력 도발 가능성

 

최근 한국 사회에 만연되어있는 북한의 전쟁 수행능력에 대한 인식은 ‘북한은 이미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다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낙관론이다. 북한이 설마 핵폭탄을 가졌다고 해도, 또한 북한이 미사일을 다량 보유했다고 할지라도, 북한은 결국 전쟁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며, 곧 망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팽배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은 곧 망할 테니 북한의 핵폭탄, 미사일은 궁극적으로 우리 것이 될 것이며 그러니까 북한의 핵보유, 미사일 보유 노력에 대해 미국, 일본 처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몰상식도 만연해 있는 상황이다. 이는 몰상식일 뿐만 아니라 지극히 반 전략적인 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2010년 현재 경제력은 세계 14위, 군사비 지출은 세계 12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는 지난 수년 동안 북한 군사비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의미다. 북한의 GDP도 마찬가지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관인 세계은행, IMF 등에서는 북한의 GDP 자료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 CIA만이 2009년도 북한 GDP를 282억 달러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CIA의 추정치를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북한의 경제력은 대한민국(8097억 달러)의 3.5%에도 미치지 못한다. 북한 경제는 대한민국 경제력의 1/30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 북한은 국가안보라는 측면에서는 대한민국과 대등한 혹은 우위 상황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종의 국제 분규라고 본다면 국력의 측면에서 대한민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세인 북한이 승리한 분규라고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을 통해 북한이 의도한 권력 승계를 진행시킬 수 있었고 대한민국을 언제라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점에서 북한의 전쟁수행력 평가는 북한의 물리적인 군사력,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적 측면, 전략적 측면도 함께 고려되어야하는 복잡한 일인 것이다.

최근에 북한의 경제력과 전쟁 수행능력에 대한 하나의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 있다.

 

그 가정설이란 ‘북한의 경제력은 너무 피폐해졌기 때문에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총체적 붕괴로 인해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북한은 그야말로 경제적인 곤궁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그 결과 북한은 전쟁을 수행할 능력도 잃어버리게 되었을 것이라는 낙관론적인 견해는 1990년대가 시작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일각에 만연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탈냉전 시대가 시작된 이후 대남 화해정책보다는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고 그 같은 군사력 증강 정책은 2000년대가 시작된 이후에도 변동이 없었다. 2000년대 초반 북한의 군사력을 알려주는 각종 자료들은 북한이 결국 경제파탄을 지탱하지 못하고 군사력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력이 주춤했던 기간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불과 3-4년도 되지 않는 기간이었다.

 

북한 군사력의 장기적인 추세를 보기위해 1985년마다 5년 간격으로 북한의 군사력을 표기한 것이 아래의 표다. 북한군 병력의 총수는 2011년인 현재 북한 역사상 어떤 시점보다도 더 많다. 북한 육군은 102만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군대가 되었고, 2010년 북한이 보유한 탱크의 숫자도 사상 최대이다. 각종 포는 2만문을 넘어섰고(역시 사상 최다), 방공포, 각종 군함의 숫자 역시 사상 최대다.

 

전투기의 숫자가 1986년 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북한 공군은 1990년대 이후 공산 진영 최신예 Mig 29를 장비하기 시작했음을 감안하면 공군력도 현재가 최고다. 특히 잠수함의 증강을 괄목할 만하다. 경제 파탄 상태가 20년 이상 지속되었지만 북한의 군사력은 2011년인 현재 과거 어떤 시점보다 막강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이 싸우려는 전쟁과 싸울 수 있는 전쟁

 

최근 북한을 탈출한 북한군 병사출신인 28세 이씨는 증언에서 “북한에서는 결국 언젠가는 반드시 남한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가르치면 ‘언젠가는 싸운다’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6자회담, 정상회담 그런 것과 전쟁은 무관하다’라고 배웠다고 증언 했다. 이들은 한국군을 동족이라고 보자 말라고 배우며, 다 죽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다.

 

남한군은 교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북한은 현재 경제력 때문에 충분한 보급이 불량하고 장기적인 소모전이 될 경우 한국에 대해 불리하다. 그러나 북한은 보급의 중요성을 별로 생각지 않는 나폴레옹식 전쟁을 치를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기습공격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한국의 넓게 뚫린 고속도로, 국도변에 즐비한 주유소는 모두 북한 소유가 될 것이며 식량 및 물자도 점령지 현지에서 조달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예상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클라우제비츠가 논하는 전쟁에서의 마찰의 요인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미군이 철수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이 북한 측의 문제다. 북한에게 더욱 곤란한 문제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경우 일본이라는 군사기지를 마음껏 사용, 짧은 시일 내에 미군 증원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자신이 판단하는 결정적 시기가 도래할 경우 정규전과 유격전을 배합한 대남 속전 속결전을 통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고 통일을 이루려 할 것이다. 이것이 북한이 싸우려 하는 전쟁이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이 싸우려는 전쟁을 치룰 수 있는 전쟁 수행력을 결여하고 있다. 점차 쇠약화하는 북한의 경제력, 주한미군의 존재, 한국군사력의 질적 우위, 한국 군사력의 점진적 증강 등은 북한의 대남 전쟁 수행 능력을 점차 약화시키는 요인들이다.

 

북한은 자신이 원하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백방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전략은 한국과 한미동맹의 군사전략에 의해 그 의도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전체를 병영화시킨 북한은 다른 종류의 대남 군사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여유 있는 군사 전략상의 틈새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무력에 의한 통일 수단을 포기 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개입할지도 모를 전쟁을 여유 있게 치를 능력은 없다. 이미 걸프전쟁에서 나타난 것같이 미국의 막강한 화력이 적용되는 그런 전쟁을 북한은 도저히 치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전쟁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최근 미국의 군사전력에 심각한 변화 양상이 나타나 보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군사전략이란 적의 급소를 효율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적국 전체를 파멸시킨다는 것은 좋은 전략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전략가들은 적의 급소를 노린다. 군사전략 용어로 Center of Gravity라는 말이 사용되는데 우리말로 하면 급소(急所)라는 표현이 좋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일격에 국가가 무너질 수 있는 중요한 곳이 급소다.

 

어느 나라라도 적의 급소(center of gravity)를 정확히 판단하고 파괴할 수 있는 것이 군사 전략의 요체가 된다. 과거 전통적인 전략이론, 특히 클라우제비츠적 군사학에서는 적의 군사력이야말로 적의 가장 중요한 Center of Gravity라고 생각했다. 군사력이 붕괴된 적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할 것이며, 군사력이 남아 있는 경우 적은 전쟁에서 항복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적의 군사력이 일부라도 생존하고 있는 한 전쟁은 종식되지 못할 것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클라우제비츠의 가르침을 따른 서양 각국들은 가능하면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서양 전쟁사에서 대군주의(大軍主義)라고 부르는 전통이 형성된 이유다. 미국도 역시 클라우제비츠식 전략사상에 크게 영향 받은 나라이며 미국의 전쟁 방식은 적국의 군사력을 격멸한다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되었다.

미국은 1993년 걸프전쟁 당시 후세인의 군사력을 격멸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전쟁을 시작 했고 수행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의 당시로서는 세계적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사실상 완벽하게 파괴했다.

 

사담 후세인의 최정예군인 공화국 수비대도 궤멸시켰다. 클리우제비츠식 전쟁 이론에 맞는다면 후세인은 식물인간에 불과한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이제 이라크는 당신들 것이라고 선언하고 후세인을 몰아내라고 독려했다. 미국은 군사력이 모두 제거 된 후 후세인은 당연히 식물이나 마찬가지인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세인은 건재했고 후세인은 자국 국민을 독가스로 살해하는 만행조차 저질렀다. 군사력이 붕괴된 후세인이 막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었다. 결국 이라크의 군사력은 이라크라는 나라의 center of gravity가 아니라는 사실이 판명한 것이다. 미국은 이후 독재국가들의 경우 독재자 그 자신이 급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독재자를 살해하면 전쟁이 끝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전략 발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2003년 이라크와 두 번째 전쟁을 벌린 미국은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후세인을 죽인다는 작전을 개시했다. 작전의 이름이 아예 참수(斬首)작전이었다. 목을 따는 작전이라는 섬득한 용어를 사용한 이 같은 전쟁 방식은 미국은 앞으로 독재국가와 전쟁할 경우 불쌍한 독재자의 군사력이 아니라 독재자 그 자신을 표적으로 겨냥하겠다는 의미였다.

 

이 같은 상황의 진행은 북한으로 하여금, 특히 북한의 지도자로 하여금,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전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은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그간의 세계 군사전략 상황변화를 통해 너무나도 정확하게 배웠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군이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만, 동시에 북한 것보다 우수한 한국군의 무기체계가 사용되기 어려운 전쟁을 골라서 치르고자 한다. 천안함 공격, 연평도 포격은 한국군의 우수한 무기체계리 할지라도 대응하기 아주 곤란한 방식으로 북한이 도발한 것이다. 북한은 이처럼 자신은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반면 대하민국은 대응하기 곤란한 전쟁 방식을 취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웬만큼 용기가 없는 한 도저히 확전할 수 없는 곳에서 북한은 자신의 이점을 노릴 것이다. 북한이 한국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유리한 분야를 북한은 마음껏 활용할 것이다. 북한은 이 같은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고 그런 전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하나씩 마련해 가고 있는 중이다. 북한은 자기가 싸울 수 있는 전쟁을 선택할 것이다.

 

결론

 

한국에는 냉전이란 없었다. 한국 전쟁이 끝난 이후 남북한 사이에는 수백 회 이상의무력 충돌이 있었고 수 백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 국민 수 백 명이 북한군의 총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 한반도에 ‘냉전’ 이 지속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반도에는 열전(熱戰, hot war) 이 지속되었을 뿐이다. 가장 최근인 2010년 한국국민 50명 이상이 북한군의 무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금강산에 관광 갔다가 북한군의 정조순 사격을 받고 죽은 50대의 대한민국 여성 도 있었다. 작년 봄 천안함 사건 당시 인명 구조를 위해 동원 되었다가 목숨을 잃은 군인과 민간인도 여러 명이다. 이처럼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때문에 죽어가고 있으니 사실 남북한은 전쟁 중이나 마찬가지다.

 

본 연구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지도자들에게 한반도의 엄중한 상황을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다. 북한의 국가전략이 대한민국을 적화 통일 하는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진행한 작업 이었다. 그동안 한국국민들과 국가 지도자들은 정상적인 나라의지도자 혹은 국민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궁극적으로 제거하려는 북한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 했다.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 평화가 지속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들과 지도자들이 생각한 평화는 싸움을 회피함으로써 가능한 평화였다. 평화를 돈 주고 살수 있다고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정치학자들도 있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얻는 평화는 노예의 평화다. 대한민국 수많은 국민들이 노예의 평화를 택한 이완용 보다 전쟁 준비를 역설했던 이율곡,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비친 이순신을 존경한다. 또한 우리국민들은 문약했던 조선왕조보다는 군사적으로 막강했고 정복 전쟁을 감행한 적도 있었던 고구려를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선조국가로 기억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혼탁해 진 한국 국민들의 대북관을 바로 잡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다. 우선 북한의 국가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히려고 노력 했다. 본 연구 전체를 통해 누누이 강조한 것은 북한은 한국을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통일 하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즉 주체사상을 전 한국을 지배하는 사상으로 만드는 것이 북한의 국가 목표다. 북한 역시 이 같은 목표를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원한다.

 

북한도 전쟁을 좋은 수단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은 대한민국이 내부적으로 적화되어 북한에 흡수 통일 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전쟁이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즉 북한이 수립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거의 70년이 지나는 세월 동안 북한은 대한민국을 평화적으로 적화 통일 하기 위한 간접침투를 단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종북 세력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할 때 북한 대남 정책의 집요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쟁은 싸워 이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방어를 잘한다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억지(deter)하는 일이다. 손자병법이 말하듯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나라와 북한 중에서 그동안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하고 적용한 편은 북한이라고 보인다. 북한의 위협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더 이상의 전략적 몰상식을 허락할 수 없다. 북한의 군사력 위협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제압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위 글은 '한국경제연구원'(KERI)의 이춘근 선임연구위원이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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