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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음악

* 가수 임재범任宰範 YimJaebumpedia

Ador38 2012. 4. 29. 13:04

가신歌神 임재범任宰範 YimJaebumpedia

2011/05/19 01:22

 

복사http://blog.naver.com/zeburm/20128682421

 

 

외로운 소년, 록에 빠지다

 

임재범은 그의 신비주의에 대해 ‘의도적으로 신비주의 마케팅이라는 미명 아래 활동했다면 인기, 명예 등을 챙겼을 것’이라고 한다.

어려서 친척 중에 또래가 없어서 늘 혼자 지냈고다 여자 아이처럼 소꿉장난과 인형놀이를 즐기고 초등학교 때는 백일장에서 상도 받을 정도이다. 바쁜 인기 아나운서 아버지 임택근은 매우 보수적인 가장으로서 항상 고압적인 가정교육을 하면서 명령투로 말씀하고 그런 환경에서 임재범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

 

사랑과 애정을 느끼는 데 익숙하지 않아 스스로를 소외시켰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심야 라디오 팝송 프로그램에서 듣는 록 음악이 답답한 마음을 뚫어주는 해방구이며 그의 삶에 가수라는 운명을 만난다. 블랙신드롬 보컬리시트 박영철의 자전적 수필에서 임재범에 관한 글에서는 '임재범이 어릴 때 고아원에 맡겨져 자랐고, 그 뒤 할머니의 손에 컸고, 불안하고 매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조용하다가도 화가 나거나 틀어지면 야수로 변했으며, 박영철과 만났을 때 임재범은 아버지 임택근 아나운서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임택근으로부터 배다른 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복동생 손지창을 존재는 몰랐다.

그러나 가수가 된 이후 우연히 하이틴잡지의 손지창을 보고 운명적으로 끌린다.

이후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지지만, 정작 그들 가족이 만난 것은 임재범의 결혼식에서이다. 그러나 오랜 아픔 때문인지 임택근과 손지창과의 부자관계는 이어지지 못하고, 임재범과는 외로움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몇번 연락된다.

 

그리고 듀엣 제의도 있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까지도 가족은 그다지 연락하며 살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생모生母에 관한 사항은 거의 알려 진 바 없다. 유년기 고아원 생활을 추측컨대 아마 일찍 돌아가신 듯 하다.

최초의 한국계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한 성 킴Sung Kim(한국명 김성용)은 외삼촌은 임택근이므로 임재범과는 외사촌이다.

 

 

서울J초등학교와 J중학교을 졸업하고 노래가 하고 싶어서 S고등학교를 중퇴한 임재범은 원래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70년대 군사정권 시절 중학교의 부연대장을 맡기도 한 적 있다. 이미 180cm 정도 성장한 큰 체격에 배우 흉내를 잘 내던 아주 유쾌하고 평범한 학생이라고 동창생이 술회한다. 록밴드 시절에도 몇몇 영화배우 오디션에 참가한 적이 있고, 심지어 영화제작을 위한 오디션에서 발탁되지만, 때마침 그 영화가 무산되는 통에 주연의 꿈은 이루지 못한다.

 

사촌 형님이 신촌의 독수리 다방 DJ라서 해적판이지만 유행하는 록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받아 푹 빠지면서 자연히 공부는 등한시하고 학교와도 멀리 하게 된다. 다운타운가의 록밴드에 가입하려고 준비하게 된다.

기인奇人같은 스타일과 행동, 연예인 여자 지망생에 의해 오해 받았지만 결국 무죄 판명된 강제성추행 사건, 그리고 탤런트 손지창과의 이동형제 확인 등으로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다. <외인부대> 당시 노란색으로 염색한 스포츠 머리도, <아시아나> 시절 몸에 새긴 문신들도, 결혼식에서의 삭발도 항상 충격이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임재범의 삭발은, 아마 암투병중인 아내를 위한 거울효과Mirror Effect인 것으로 판단된다.

 

의학상식 중에, 암투병 환자에게 가족이나 친구가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방법으로 서로 민머리를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는 계속 침묵했고, 간간이 새로운 앨범이 나올 때마다, 매니아 기자들이 연예문화면에 특별히 기사를 내준 정도로 기억된다.

임재범은 전형적인 매니아들에게만 사랑받는 가수였다. 그의 히트곡들에 대한 인기 역시 항상 1,2년 정도 늦게 반응이 온다.

드라마와 영화 OST로 사용되어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되자, 레코드점에서 그의 히트곡을 찾으면 정작 그 앨범은 이미 2년전 철수하고 새로운 앨범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을 찾을 때는 시중에 <고해>가 나와 있었다.

 

다시 <고해>를 찾을 때는 <너를 위해>가 나와 있었다. 임재범의 노래는 처음 들을 때 보다 2,3번 곱씹으며 들으면 눈물이 난다.

가능하면 임재범의 노래는 앨범을 사서 한꺼번에 모두 듣는 것이 좋다. 헤비메틀 시나위, 외인부대, 록인코리아, 아시아나, 솔로 1,2,3,4,5집 등을 들어보면, 녹음 당시의 자기 마음과 환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 국내에는 드물게 컨셉트 앨범 형식으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파워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속도는 느려진다. 40대 후반에 심장박동 보다 빠른 메틀을 1시간 내내 부를 수 없다. 전설의 속주 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Yngwei Malmsteen은 40대 초반에 ‘예전보다 빨리 칠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제 옛날보다 Feel을 더 중요시 한다’고 언급했다.

<너를 위해>는 김하늘, 유지태 주연의 영화 <동감>의 주제곡이다. 녹음 당시 결혼을 위한 노래이지만, 결국 2010년 현재 암투병중인 아내를 위한 또 하나의 고해성사이다. 또는 요즘 아이돌그룹의 노래를 좋아하는 딸에게 ‘아빠도 노래 잘하는 대한민국 가수 중 한명’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랑의 노래이다.

 

철금성鐵琴聲에서 야수野獸의 슬픔까지

 

20대의 임재범 목소리에는 AC/DC의 보컬리스트 故 본 스코트Bon Scott와 같은 쇳소리鐵琴聲가 인상적이다. 외인부대의 메틀곡 <환상의 록큰롤Rock and Roll Fantasy>에서 애드리브로 보여주는 공명음共鳴音은 마이클 잭슨의 그것과는 달리 무게감을 느낀다.

보컬 능력으로서는 외인부대에서 사실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사랑받는 록발라드 <쥴리Julie>에는 감미롭기 그지 없다.

<쥴리Julie>는 그 후 솔로앨범 1집에도 팝 버전으로 편곡해서 다시 싣는다. 김도균의 메틀기타 속주에 맞춰 완성한 <아시아나>에서는 이전 쇳소리가 육식 포유류의 으르릉거리는 소리처럼 가라 앉는다.

 

1989년 MBC 특집 프로그램에 잠시 출연한 임재범은 평소 즐겨 부르던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s의 데이빗 커버데일David Coverdale의 <Fool For Your Loving>을 불러 소울풀Soulful한 목소리를 발휘한다. 이후 백인이면서도 흑인 창법으로 노래하는 로커 출신 마이클 볼튼Micheal Bolton과 비교되면서 ‘한국의 마이클 볼튼’이란 호칭을 받는다. 20대의 공격적이며 거친 쇳소리는 30대의 공명음을 통해 더욱 세련되게 정돈되어 40대에 육식 포유류의 슬픈 울부짖음으로 완성된 듯 하다.

2004년 임재범도 스스로 백제예술대학 특강에서 데이빗커버데일과 로니 제임스 디오Ronie James Dio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들을 좋아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985년 데뷔 이래 단 한번도 ‘대중적 인기’를 누려 본 적 없는 은둔가수이지만 그에게 가신歌神이라고 호칭을 감히 부쳐주고 싶다.

 

1986년 시나위 1집 <Heavy Metal Sinawe>

 

 

 

80년대초부터 신중현이 운영한 록월드Rock World라는 록밴드 전용 소극장 외에 많은 공연장에서 부활, 시나위, 크라티아Cratia, 아발란시Avalanche 등 젊은 록밴드들이 대한민국의 록을 만들고 있었다. 당시 '현중신鉉中神' 신중현의 장남 신대철유명한 록 기타리스트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1960년대 올드 모델 펜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기타를 갖고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결코 영미 록을 극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오리지널 곡들로 채운 명반 <헤비메틀 시나위>을 낸다.

 

특히 클럽가에서 인기 높던 크라티아와 아발란시는 한장의 LP에 앞뒷면을 공유한 옴니버스 엘범을 낸 특이한 경력이 있다.

크라티아의 보컬 최민수는 미소년 이미지로 인기 높아, 그룹 탈퇴후 발라드 솔로곡을 내고 활동한 바 있다.

 

 

1986년 봄 황인용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연하여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군대 제대후 복학 준비중 라디오를 듣고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 아직까지도 임재범의 팬이다. 그룹 시나위로 데뷔할 때 AC/DC의 오리지널 보컬리스트 故 본 스코트의 거친 목소리를 연상시킨다. 특히 <남사당패>를 부를 때 그러하다. 타이틀곡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대히트한다. 그 외에 <잃어버린 환상>, <아틀란티스의 꿈>, <젊음의 록큰롤>이 좋다. 특히 신대철의 기타 연주곡 <1월>에서는 게리 무어Gary Moore의 연주를 연상시킨다.

 

1집 오리지널 멤버중에서 베이스 박영배와 드럼 강종수가 나가고 강기영김민기가 영입된다. 임재범도 1장의 앨범을 남기고 단기사병 근무를 위해 활동을 중지하고, 동시에 시나위를 떠난다.

*초판은 비록 1장의 LP지만 더블앨범자켓으로 나왔고, 재판再版이후에는 싱글자켓으로 되어 있는데, 다행히도 나는 2가지 모두 갖고 있다.

 

1987년 외인부대 1집 <외인부대>

 

아직 자라지 않은 짧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부활1집>에서 김태원과 트윈기타를 연주하던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이지웅을 만나 새로운 록밴드를 조직한다. 이지웅은 ‘한국의 토미 쇼Tommy Shaw’라고 불렸는데, 국내 최단신 기타리스트였기 때문이다.

 

외모를 보면 김태원과 상당히 비슷하다. 그 외 셀프서비스 출신의 기타리스트 손무현, 다섯 손가락의 베이시스트 박문일, 원더버드와 백두산 등 여러 밴드에서 세션을 한 바 있는 드러머 손경호와 모여 외인부대를 결성한다. 원래 드럼에 다섯손가락의 이상희있었으나 앨범 녹음중 손경호로 교체된다.

 

부활에서처럼 키보드 보다 트윈 기타 시스템을 이용한 외인부대는 퀸스라이치Queensrÿche의 사운드와 같은 사운드를 추구한다고 하였지만 막상 앨범의 수록곡은 진보한 LA메틀같은 느낌이 많다. 임재범은 이지웅과 손무현과 함께 작사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로 가득 채운 <외인부대 1집>에는 아직도 사랑받는 발라드 <쥴리Julie>가 있고 임재범의 절정의 메틀 넘버들이 남아 있다.

 

<환상의 록큰롤Rock 'n Rol Fantasy>에서 들을 수 있는 임재범의 공명음 같은 고음역의 샤우팅도 들을만 하다. 그러나 2집 준비를 앞두고 리더 이지웅과의 견해차로 임재범과 손무현은 탈퇴한다. 이후 발매된 2집은 1집보다 못하다는 이유에서 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외인부대는 사라진다.

외인부대는 슈퍼밴드라고 보기는 어렵다. 젊은 사람들의 의견충돌과 수입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로 한 밴드에 오래 있지 못하던 멤버들이 모인 프로젝트 밴드의 앨범으로 생각된다.

 

1989년 <Rock in Korea>


이승환과 함께 히트곡을 작곡한 전설의 노장 기타리스트 무당의 이중산을 비롯하여 임재범과 백두산의 기타 김도균, 작은 하늘의 김현준, 시나위의 보컬 김성헌과 베이스 강기영, 외인부대의 기타 손무현, H2O, 카리스마, 공중전화, 어린왕자의 김인용, 사랑과 평화의 한정호이병일, 국내거주 외국인 로렌 스코트Lauren Scott테리 쉐어러Terry Scherrer의 마르쥬카, 등 1980년대 한국 록의 태동을 이루어낸 최고의 록커들이 모여 만든 기념비적인 옴니버스 앨범이다.

 

여기서 임재범은 백두산의 속주 기타리스트 김도균과 공동 작사작곡한 육중한 메틀 발라드 <The Same Old Story>와 아직도 후배 록커들에 의해 불려지는 한국 록의 찬가 <Rock In Korea>의 2곡을 수록한다. 신인밴드 프라이데이 애프터눈Friday Afternoon의 컴플리에이션 앨범에 자극받아 조직된다. 기타 오태호의 공중전화와 보컬 김종서, 드럼 김민기의 카리스마는 단독으로 한곡씩 참가한다.

 

오태호 기타, 홍성민 보컬의 영롱한 발라드 <기억할 그 날이 와도>가 라디오 신청곡으로 히트한다. 이후 잠시나마 보컬 김성헌과 기타 김도균에 의해 록인코리아 밴드가 활동한 바 있다.

*1980년대 수많은 록밴드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을 총결산한 기념비적 앨범이다.

 

 

<록인코리아> 앨범 이후, 런던에서 정통 록을 공부하고 있던 김도균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즉시 영국으로 날아가 허름한 아파트에서 김도균과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부부같이 지낸다. MBC 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서 밝히듯, 영국 클럽과 칼리지 투어에서 공연하며 번 돈으로 값싼 베트남 쌀이나 미국 쌀을 사서 햄이나 소시지와 야채를 대충 넣어서 볶아 만든 잡탕 볶음밥과 일본라멘에 감자를 넣어 만든 죽을 주로 먹고 지낸다.

 

그래도 그들은 그 시절이 젊은 혈기에 록 음악에 열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한다. <록 인 코리아>와 임재범이 다시 부른 백두산의 <업 인 더 스카이Up in the sky> 2곡을 테이프에 담아서 클럽과 방송국 등에 보내어 데모 테스트를 받곤 한다. 해외에 나가니 애국심이 발동해서 <사랑Sarang>이란 이름의 밴드를 결성해서 한복을 입고 기타치고 노래하기도 한다. 물론 베이스와 드럼에는 영국인 친구들을 영입해서 활동한다.

 

사랑 밴드의 드러머 믹 커튼Mick Kirton는 그 이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호크윈드Hawkwind에 영입되어 활동하고, 베이시스트 짐 호튼은 영국에서 꽤 이름난 세션맨 출신이라고 한다. 현재 그의 기록을 찾기는 힘들다. BBC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바 있는데, 스탭들과 관객들이 처음에는 동양인들이 록을 한다는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막상 임재범이 영국의 자랑 톰 존스Tom Jones의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부르자, 열광하기 시작했고 김도균의 격렬한 프레이즈와 화려한 기타 실력에 반해서 3번이나 앵콜을 받는다. 젊은 그들은 한국 록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1990년 아시아나 <Out on The Street>

 

 

<록인코리아> 프로젝트를 통해 임재범과 김도균은 의기투합하여 록의 고향 영국 런던으로 여행가서 한국록의 가능성을 느끼고, 다시 귀국한 후 베이스 박영진과 드럼 유상원을 데리고 런던으로 돌아가 매트릭스 스튜디오에서 케니 존스Kenny Jones프로듀싱으로 슈퍼밴드 아시아나의 유일한 앨범 <아시아나Asiana>를 만든다. 평균 5분짜리 8곡 모두를 김도균과 임재범의 공동작곡으로 만들었고 영어가사는 데이브Dave라고 적혀 있는데 아마도 김도균으로 짐작된다.

 

대구 영신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기타에 미친 김도균은 언젠가 외국무대에서 성공하고자 다른 공부는 등한시 했지만 영어만은 우수했고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영어실력은 토크쇼 등에 나와 스스로 외국인 여자친구들이 많았다고 언급한 바에서 알 수 있다.

 

백두산 시절 잉위 맘스틴Yngwei Malmsteen의 바로크 메틀 기타와 유사하던 김도균은 이 앨범에서는 하드록 보컬리스트 임재범에 맞는 쥬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스타일의 정통 헤비메틀을 구사한다.

화려한 테크닉에 무게감까지 더한 김도균의 바늘같은 프레이즈와 천둥같은 유상원의 드럼과 농익은 김영진의 베이스위에 임재범의 야수같은 보컬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다. 케니 존스는 ‘차라리 영국이나 미국에서 태어났으면...’하는 아쉬움을 표현할 정도로 임재범의 가창력에 대해 극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양팔과 가슴에 새긴 문신들이 당시 화제였다.

 

왼쪽 팔뚝의 드로이드안 장미 십자가 문신은 1997년 이후에 새로 새긴 것으로 추측된다.

*프로듀서 케니 존스Kenny Jones가 위대한 그룹 더 후The Who의 2대 드러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김도균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아직 기회가 없다.

 

 

8곡의 영어버전 오리지널 곡이 있었는데, <Soldiers' Came>이란 곡이 군부정권하의 심의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잘리자 <Missing you>라는 한국어 발라드로 교체된다. 아쉽게도 <Soldiers' Came>을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디지털 복원 재발매가 되었다는데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 당시 국내 음반제작 기준에 전곡이 영어가사 곡일 경우 정식발매가 되지 않던 제도가 있어서 1곡을 한국어 발라드 곡 <Missing you>을 올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Missing you> 역시 범상치 않은 발라드이다. 발라드를 좋아한다면 특히 <Dancing All Alone>을 꼭 들어보길 바란다.

가사는 에드가 앨런 포Edgar Alan Poe의 시 <Annabel Lee>를 연상시키는 신파적 그리움의 노래이지만, 임재범의 보컬은 처절하기 그지 없다.

 

이 노래를 무대에서 다시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국 유일의 슈퍼밴드로 조직되지만 역시 프로젝트 그룹이라서 별다른 국내 활동은 하지 않고, 이후 미국시장을 강타하고 그해 미국 신인록밴드로 선정된 기타리스트 아키라 타카사키高崎晃의 일본 메틀밴드 라우드니스Loudness의 국내공연 당시 오프닝 무대에 선다. 프로젝트 슈퍼그룹 아시아나는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김도균은 입산수도한 후 국악을 접목시킨 <난 너를 사랑해>와 같은 한국적 록을 창조하려 노력한다. 30대 후반부에 실용음악과에서 후진을 양성하다가 2010년 김태원의 부활이 ‘부활’하는 것에 영향받은 유현상이 백두산을 재결성하는 데에 다시 참가한다. 디지털 싱글 <반말마>를 내놓지만 대중적이진 않다.

 

1990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임재범은 청소년기의 꿈을 이룬다. 강우석 감독, 안성기, 김성령, 박근형, 신성일 주연의 정치 스릴러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의 보았는가>에 단역으로 출연한다. 아시아나 시절 양팔에 새긴 문신 때문에 앵커우먼 김성령의 뒷조사를 하다가 대통령 후보 박근형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녀를 협박하여 돈을 뜯고 폭행하려다가 실패하고 박근형의 부하가 설치한 차의 폭탄이 터지면서 그녀 대신 죽는 악덕 흥신소 직원으로 3씬이나 출연한다. 심지어 대사도 몇 줄 있다. 1991년 개봉, 각종 상을 받은 수작이다.

 

*용케 나는 이 영화 비디오를 갖고 있다. 발연기는 절대 아니다.

당시 잡지에서 신대철과 함께 인터뷰에 응하는데, 임재범은 영화출연을, 신대철은 ‘패션스’라는 3인조 그룹의 앨범 출시를 자랑한다. 패션스는 결국 ‘자유’라는 그룹으로 바뀌어 나온다. 4집 이후 시나위가 잠정 해체된 시기에 베이스 김영진드럼 오경환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프로젝트 락 블루스 밴드의 <자유>에는 박상민의 리메이크로 더 유명해진 <멀어져 간 사람아>가 있다.

 



1991년 솔로 1집 <On The Turning Way>

임재범은 오랜 잠적후 1991년 조용하게 솔로앨범 1집을 내놓는다. 메틀 매니아들에게는 임재범의 솔로 1집은 다소 충격이다. 과거의 메틀 보컬을 억제한 Soulful 보컬과 발라드를 통해 한국의 마이클 볼튼이라는 별명을 받는다.

 

대중적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딥 퍼플Deep Purple과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s을 거친 데이빗 커버데일David Coverdale과 같은 감성이 풍부한 보컬을 완성한다. MBC 특별방송에서 화이트스네이크의 <Fool For Your Loving>부른 적 있다. 발라드풍의 <너의 곁에서>,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 <쥴리Julie>, <Let Me Live My Life> 등과 미디엄 템포의 팝 <이 밤이 지나면>이 히트한다.

 

기타 신대철앤드류 서, 베이스 김영진, 피아노 이호준, 코러스 장필순 등이 지원한다. 앨범 제목처럼 메틀 밴드의 생활을 끝내고 ‘전환점’에서 솔로 가수의 의지를 밝힌다. 특히 <Let Me Live My Life>의 가사는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솔로 1집 <Diary of Mad Man>의 <Good Bye To Romance>의 가사에서처럼 비슷한 느낌을 준다.

 

1995년 정영원의 2집 앨범의 <Thanks 3-마리아의 눈물>에 피처링한다. 1집을 낸 뒤 몇곡 히트하자 이곳저곳에서 출연을 요청하자, 부담스러워진다. 결국 워크맨과 CD를 갖고 강원도 오대산으로 들어가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주민들과 어울리며 1년간 산다. 바다를 보고 싶어 경포대에 갔다가 문득 후배와 통화를 하고 산에서 내려온다.

 

모 방송국의 연예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더 이상 증발하지 않겠다. 물은 증발하지만 사람은 증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결국 또 잠적한다. 당시 리포터는 미스코리아 출신 탈렌트 이승연이다.

 

1997년 <임재범 II>

1집 이후 근 6년만에 내놓은 2집은 LP가 사라진 후 최초의 CD앨범이다. 너무 오랫동안 잠적한 임재범의 마음을 표현한 <비상飛翔>이 타이틀 곡이다. 그러나 <사랑보다 깊은 상처>, <아름다운 오해>, <그대는 어디에>가 대중적이다.

 

이때부터 감성적인 채정은의 작사와 함께 임재범의 명곡들이 쏟아진다. 채정은은 김종서, 이승철, 서태지, 김범수, 양파, 김장훈, 김정현, 서영은노래 잘한다는 국내가수들의 히트곡을 작사한 바 있다. 특히 임재범의 <비상>, <고해>, <너를 위해> 등 임재범과 많은 작업을 한다. 1집에 참가한 신재홍이 프로듀싱하여 좀 더 대중적으로 접근한 앨범이다. 건반에 김광민이 참가하여 이후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간다.

 

방송출연을 꺼려하던 임재범도 김광민이 MC를 보던 <수요예술무대>에 여러차례 출연한 이유가 여기 있다. 사진작가 김중만의 솜씨로 자켓을 만든다. 앨범 홍보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매니아들에게만 팔린다.

*안국동 골목 레코드점에서 사서 즉시 회사에서 처음 들었을 때는 좀 간지러웠다. 그러나 역시 임재범의 노래는 밤에 방구석에서 혼자 들어야 제맛.

 

1998년 <임재범 III>

건반연주자 송재준과 공동작곡 프로듀싱한 3집은 다시 메틀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며 다소 실험적인 곡들이 많다. 노랑 꽁지머리에 눈에 아트화장을 한 측면 얼굴로 채운 자켓 사진조차 어둡다. 토미 킴Tommy Kim의 기타와 김민기드럼이 참가한다. 코러스에 임재범과 목소리가 흡사한 송성훈도 참가한다. 12곡중 10곡이 영어가사인데 박정현이 맡는다.

 

박정현은 이 인연으로 그 해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듀엣을 부르게 된다. 물론 명곡 <고해>의 작사는 채정은이며 노래 앞의 나레이션이 압권이다. 그동안 음악과 팬들을 잊고 살아온 자신의 처절한 고해성사이다. 당시 임재범은 수록된 11곡의 녹음을 단 한 번만에 끝냈다고 한다. 작업 관계자들에 의해 ‘임재범의 미친 가창력’은 이때부터 알려진다.

 

그러나 2010년 오랜만에 공중파에 출연한 임재범은 <김정은의 초콜릿>에서 단 한 번의 녹음으로 작업을 마치는 자신의 과거 행동은 ‘오만함’이라고 자책하는 고백을 한다. 그러나 임재범은 2010년 KBS 드라마 <추노>의 OST 삽입곡 <추노>를 부르는데, 연습 부족으로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공개홀에 모인 관중들에게 사과하고 3번이나 부른 유명한 일화가 당시 참석한 사람들에 의해 전해진다. 그들의 말의 의하면 3번 모두 감동적이라고 한다. 완벽한 성격도 그의 기인 행동의 하나일 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부럽다.

 

*<고해>는 노래방에서 가장 애창되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프로포즈 곡이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이 부르지 말았으면 하는 곡이다. 아마도 그 어떤 남자도 임재범의 느낌을 살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1998년 연말 안재욱, 김희선, 추상미, 한재석, 안정훈, 차태현이 출연한 MBC 메디컬 드라마 <해바라기>의 삽입곡으로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히트하면서 일반인들은 레코드점에서 찾지만 2집은 이미 철수하고 3집을 얼떨결에 구입하여 실망한다.

그러나 얼마후 <고해>에 다시 매료된다. 갑자기 구매자가 많아지면서 재판再版한다. 연말에 출시된 박진영5집 앨범의 <재회>에 피처링한다.

 

다음 해 1999년 한의수 1집의 <Part 3>, 제로지 3집의 <비의 슬픔>와 <더 이상의 아픔은 없어>에 손성훈과 같이 피처링한다. 손성훈의 목소리가 임재범의 그것과 가장 유사하다.

*처음 자켓에서 오타 im jaebum이 재판에서는 yim jaebum으로 정정한다. 나는 너무 일찍 사서 오타 판을 소유하고 있다.

 

2000년 <임재범 4-Story of Two Years>

3집의 흥행실패로 다시 신재홍이 프로듀싱하고 일렉트릭 사운드보다는 현악기를 주로 사용한 팝적인 곡들로 가득 채운 앨범이다. 이미 1998년부터 준비한 노래들이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팝송 <You Are So Beautiful>와 <Three Times A Lady>도 포함한다. 타이틀곡 <너를 위해>도 출반당시 반응이 없었지만 영화 김하늘, 유지태 주연의 <동감>의 OST로 유명해진다.

 

임재범은 노래 부를 때 결코 가사를 소홀히 발음하지 않는다. 음이 낮던 높던, 빠르든, 느리든, 길든 짧든, 어느 부분에서도 정확한 가사로 노래한다. 그것이 좋은 노래를 위해 최선을 다 해준 작사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2000년 서울가요대상에서 <너를 위해>로 최고 작사가상을 수상한 채정은은 ‘노래를 잘 불러주신 임재범님께 감사한다’는 짧은 답사로 오히려 임재범의 가창력에 극찬한다. 앨범 자켓에 매미는, 아마도 평균 15년 정도 유충생활을 하다가 나무위로 올라와 탈피하고 매미가 되어 울다가 그해 여름만 살다가 죽는다는 매미의 일생을 의미하는 것 같다.

 

데뷔 15년 즈음에 나온 앨범이며, 늘 대중적이지 못한 임재범의 모습을 사진작가가 상징화 한 것으로 보인다.

녹음 후 사라진 임재범을 촬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시 앨범 자켓 담당 사진작가는 이러한 이미지를 생각한 것이다.

 

당시 탤런트 손지창과 이복동생임이 밝혀지고 아버지 임택근의 여러 소문으로 고통스러웠다. 1998년 뮤지컬 <하드록카페Hard Rock Cafe>에 출연한 8살 연하의 뮤지컬배우 송남영을 만나 교제후 2001년 2월 11일 쉐라톤 워커힐에서 결혼한다. 송남영의 집안에서도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언론의 관심이 두려워 007작전 같은 결혼식으로 치른다.

 

손지창-오연수 부부를 포함한 아주 가까운 친척과 지인들만 참석한다. 임재범은 삭발한 채 흰색 턱시도를 입고 입장한다.

뮤지컬 배우 아내를 위해 <왕과 나The King and I>의 율 브린너를 모티브로 한 ‘사랑의 맹세’라고 하며 아직도 집에는 웨딩사진이 걸려 있다고 한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여 ‘당시 대단히 의미 있는 곡’이라고 언급하는데 아마도 아내 송남영과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 같다. <너를 위해>는 당시에는 아내를 위한 프로포즈였지만, 2011년 현재 암투병하는 아내를 위한 또 다른 고해이다. <거인의 잠>에서는 차후 임재범의 오랜 잠복기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 있다. 연말에 두 장의 베스트 앨범 <History of Yim Jae Beum>과 <Memories>가 출시된다. 故 김현식의 헌정앨범에 <비처럼 음악처럼>을 부른다.

*임재범의 팬으로서 그의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2001년

서영은의 <She Made...etc. 1> 앨범에서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를 듀엣으로 부른다.

 

2004년 <임재범 5-Coexistence>

새로운 프로듀서 최남욱과 만든 5집앨범은 다시 록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재즈와 뉴 에이지의 크로스 오버의 실험작이다.

작사 채정은, 베이스 이태윤, 기타 토미 킴샘 리Sam Lee, 코러스 버블시스터즈 등이 지원한다. 타이틀곡 <살아야지>를 두 가지 버전을 담는다. 그외 곡들이 별로 히트하지 않아서인지 결국 그 후 오랫동안 잠적한다.

*사실 나도 5집의 노래들은 쉽게 귀에 남지 않는다.

 

2005년

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OST에 참여하여 <이번 만큼은>와 <Prague Reminiscence>을 부른다.

연말에 22곡을 담은 첫 라이브 더블 앨범 <Live and Life>가 출시된다. 요절한 전설의 록커 필 리뇨트Phil Lynott가 이끈 아일랜드 밴드 씬리지Thin Lizzy의 걸작 공연실황앨범<Live and Life>의 타이틀과 같다.

2006년

리메이크 앨범 <옛사랑>에서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부른다.

연말에 테이와 캐롤송 같은 발라드 <겨울애愛>를 부른다.

2007년

리메이크 앨범 <옛사랑 2>에서 <해바라기>을 부른다.

2008년

싱글 <겨울편지>를 내놓는다. 연말에 <스타의 연인> OST에 참가하여 <만남>을 부른다

2009년

싱글 <사랑이라서>를 부른다.

2010년 왕의 귀환

이후 가끔씩 <수요예술무대>에 출연하거나, 후배 가수들과 듀엣곡을 발표하지만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나 2010년 초 윤하와 듀엣한 <사랑에 아파한 날들>이 이외로 히트하고, 곧이어 KBS 드라마 <추노>의 OST <낙인>이 대히트하면서 SBS <김정은의 초콜릿>에 출연한다.

 

MC 김정은은 안절부절 눈앞의 임재범을 반가워했고, 노래 부르는 동안 임재범을 모르던 2,30대 관객들도 그의 노래에 새삼 감동받는다. 2010년말 SBS 드라마 <싸인>의 주제곡 <중독>을 불러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5월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대강당에서 <산책>이라는 타이틀로 콘서트를 한다.

윤하와의 듀엣곡은 다음 5집 앨범의 예고편이라고 한다.

 

 

2011년 나는 가수다

 

<중독>으로 점차 대중적 관심을 끌기 시작한 임재범은 영화 <주먹이 운다>의 OST <주먹이 운다>를 부른다. 그리고 가수 데뷔 25주년 콘서트에서 예전보다 깔끔한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 양복차림으로 <고해>외 그의 명곡들을 불러 매니아들을 감동시킨다.

 

그런데 2011년 3월 MBC PD 김영희 국장은 일밤 코너를 회생시키고자 노래 잘 하는 가수들의 서바이벌 쇼 <나는 가수다>를 시작하는데 즉각적인 반응에 안심하다가, 소위 ‘김제동의 오지랖-이소라의 어리광-김건모의 재도전’ 파동으로 김영희 국장이 책임지고 물러나고, 결국 김건모는 모양 빠지게 재도전을 포기하고, 김제동과 이소라는 사과하고, 프로그램은 잠정 중단한다.

 

이미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임재범의 국민적 소환을 요구하고 있던 차에, 김건모의 재도전 포기와 정엽의 탈락과 백지영의 자진 하차로 새롭게 BMK와 김연우와 임재범이 출연한다. 그의 출연소식과 함께 2011년 3월 케이블채널로 옮겨 방송중인 <수요예술무대>에 출연하여 엎드려 울며 노래 부른 사연과 아내의 암투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삭발한 임재범의 아픔이 언론에서 보도된다. 대중적인 히트곡 <너를 위해>를 불러 평가단을 감동시키고 출연 첫 회에 투표 1위를 차지한다.

 

그 다음 주 감기몸살과 고열을 참고 일렉트로니카 크로스 오버로 편곡한 남진의 트로트곡 <빈 잔>을 불러 이번에는 비록 투표에서 4위를 했지만 관객들에게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동료가수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5월 줄째주 KBS 뮤직뱅크에서 인기 아이돌 박재범의 컴백곡 <Abandoned>와 함께 11년전 나왔던 임재범의 <너를 위해>가 1위 후보곡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한국가요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임재범은 ‘방황 탓에 개인적으로 경력을 축적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지만, 이제 명예나 인기를 누리고 싶다는 것은 아니며, 동네 아저씨나 형처럼 이 분야의 사람들과 둥글게 살고 싶다’고 한다. 이제 임재범은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과 동시에 사랑받는 가수로 우리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 할 것 같다.

 

임재범이 2011년 들어 다시 의욕적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이유는 방황의 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자신의 대인기피증 때문에 풍족하지 못한 생활로 고생한 아내와 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고 한다. 크리스천이 되면서 평안을 찾았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에 출연 당시 묵주인 듯, 염주인 듯한 팔찌를 끼고 나와 결코 특정 종교의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임을 넌즈시

증명한다.

 

사랑하는 고명딸 지수 때문에 요즘 인기 아이돌 그룹과 멤버들의 이름을 줄줄 왼다.

이젠 록과 메틀 음악 외의 장르에도 흥미를 느끼고 즐긴다. ‘남자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가수의 근간은 뮤지션이니 노래 연습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후배가수들에게 조언한다.

 

<나는 가수다>의 인기에 힘입어 이민호, 박민형, 카라의 구라하 주연의 SBS 드라마 <씨티헌터>의 주제곡 <사랑>을 부르게 된다.

2011년 말 자신의 애창곡들을 모아 <풀이Free>라는 리메이크 앨범을 내놓는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과 부른 백지영 원곡 <내귀에 캔디>는 작곡가 방시혁의 사용허락을 거부한 상태에서 출반하여 그와의 미묘한 대립이 예상된다.

 

나만 가수다

임재범의 가창력에 관해 평가한 작곡가 김형석은 <한밤의 TV연예>의 ‘노래 잘하는 가수’라는 코너에서 ‘요즘 가수들이 임재범의 1/10만 닮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또 <수요예술무대>의 한봉근 PD는 임재범을 출연할 때에는 ‘워낙 노래를 잘해서 다른 가수보다 먼저 부르면 다른 가수들이 기가 죽어 안되기 때문에 마지막에 출연시킨다’고 했다.

 

2011년 <나는 가수다>의 자문위원중에서 유일하게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형석은 다시 그의 실력을 최고로 극찬하며, 한마디로 ‘나만 가수다’라고 충격적 발언을 한다.

임재범이란 은든형 가수가 무대에 선다는 자체만으로 즐겁다. 그를 잘 몰라도 그가 어둠속에서 나와 마이크 앞에 서는 순간부터 압도당한다. 관객들은 숨죽이고 노래를 듣고 마지막에 박수 칠 수 밖에 없다.

 

같은 무대를 서는 다른 가수들조차 그를 보는 것이 ‘동경하던 연예인’을 보는 것처럼 신기한 것이다. 방송출연이 드물어, 카메라 보는 법도 몰라 노래하는 중 잠시 눈을 뜨면 이곳저곳 촌스럽게 시선을 맞추다가 이내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는 진짜 가수이다. 마이크를 잡지 않은 다른 손을 어찌 할 바 몰라, 결국 짝다리를 짚은 바지춤에 집어 넣는다.

 

이젠 예전과 다르다, 별것 아니다, 실력이 과대평가 되었다 등으로도 그의 실력을 결코 훼손할 수 없다. 오히려 은둔형 가수였기 때문에 그의 라이브 실력이 과소평가 되었던 것이다.

맹장염 수술로 나가수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게 되자 마지막으로 출연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긴 말을 끊은 모가수와 언쟁이 벌어지고 불같은 성격의 임재범은 언론에서 침소봉대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가신歌神

대한민국에는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 웬만한 사람들이 아는 자신의 히트곡들만으로 2시간이상의 단독 콘서트가 가능한 노래 잘하는 가수가 몇이나 될까?

 

 

 

엘러지Ellergie의 여왕 이미자

*국내 최다 음반 발표한 가수이며, 패티김보다 한 수위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0년대 들어와 전혀 무대에 서지 않는다. 변한 목소리를 팬들에게 들려주지 않겠다는 거장의 고집이다. 간간이 자선행사활동에 나타난다.

 

소리꾼 나훈아

*80년대부터 자작곡 발표이후 아티스트로 성장한 트로트의 황제이다. 2009년 소위 '~카더라' 소문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허리띠를 풀며 엘로우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에 대해 분노한 이후 콘서트를 하지 않고 있다. 2012년 이혼 문제에 휩싸인다.

 

해외진출 1호가수 윤복희

*루이 암스트롱의 스카우트로 라스베가스 진출, 한국 뮤지컬의 대모이다.

 

트로트의 여왕 하춘화

*만 6세에 데뷔, 수백장의 음반발표, 국내 최다 공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음유시인 송착식 *70년대 청년문화와 포크음악의 대부이다. 아직도 하루 4시간 이상 노래연습을 하여 가창력이 죽지 않았다.

 

가왕歌王 조용필

*최초의 국민가수라는 호칭을 최초로 받았고, 이제 가왕이란 호칭을 받기에 충분하다.

인천출신이며 밤무대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출발, 연주와 작곡능력이 최고이다. 개인 밴드<위대한 탄생>의 최고 세션맨들과 만든 80년대 곡들을 지금 현재 들어봐도 결코 촌스럽지 않다. 특히 록, 발라드, 팝, 프로그레시브, 트로트 등 각종 쟝르의 곡들로 모든 앨범들을 내놓아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개인적 가정사의 고통까지 노래에 담은 아티스트이다.

 

일본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한국의 아티스트이며, 카네기 초청공연 1호 가수이다.

별밤지기 이문세 *천재작곡가 故 이영훈과 콤비를 이루어 8,90년대를 풍미한 최다 히트곡 가수이다.

 

발라드의 황태자 신승훈

*오랜 무명생활을 통해 다양한 쟝르를 소화하는 토종 발라드 가수이다.

 

어린 왕자 이승환

*하드록으로 출발하지만 특유의 대중적인 록세계로 콘서트의 왕자가 된다.

 

국민가수 김건모

*R&B와 레게 등 흑인음악을 토대로 고음의 테크닉 보컬을 자랑한다.

 

위의 가수들 정도만이 유명한 자기의 히트곡들로 2시간 이상의 단독콘서트를 관객들과 함께 즐겁게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속하지는 못하지만 실력과 히트곡 수는 결코 뒤지지 않는 완전한 단독콘서트 가수가 하나 더 있다. 임재범이다.

비록 콘서트에서 시나위, 외인부대, 아시아나의 히트곡들 보다 솔로앨범의 곡들을 많이 부르지 않아 아쉽지만, 그는 은둔의 가창력’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맞는 이 시대의 대한민국 가수이다.

 

비주류 록 음악으로 데뷔한 임재범은 방송 울렁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있어 데뷔 25년동안 공중파 출연 횟수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며, 심지어 콘서트 횟수도 상대적으로 적다. 50세를 바라보는 나이, 그래서 이젠 둥글게 살며 TV나 무대에서 출연하는 그를 자주 보았으면 한다.

소녀시대의 태연과 혹은 아이유와 함께 듀엣하는 모습도 그려 본다.

 

 

10여년전, ‘열창하는 디바’라고 불리는 모 유명 여가수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는데, 콘서트 2시간 동안 지루하고 짜증나서 견딜 수 없었고 마지막 두 어곡을 남겨두고 결국 혼자 콘서트장를 떠났다. 콘서트 티켓 값이 아깝다고 생각까지 들었다.

 

많은 관중들 역시 그녀의 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오리지널 곡들을 따라 부르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가 좋아하는 팝송과 선배가수들의 커버곡에 열광하는 듯 했다. 콘서트 중 그녀가 부른 레퍼토리의 절반은 애창하는 팝송과 선배들의 국내 히트곡들이며, 자신의 오리지널 곡이라고 부르는데 당췌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함에 지루했다.

 

당시까지 단 하나의 넘버원 히트곡이나 메가 히트곡 조차 없었지만 열심히 대중과 만나는 언더그라운드 가수였다. 최근 그녀는 특기인 록 넘버가 아닌 발라드 한 곡을 크게 히트시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콘서트 내내 부른 팝송이나 선배가수의 커버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시켜 불렀는지, 모창처럼 똑같이 불렀는지 기억이 없다. 아마 자기 스타일로 불렀겠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편곡과 곡해석이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코 다른 노래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가끔씩 자기 스타일의 어줍잖은 R&B 애드리브만 집어 넣는 그냥 모창가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자가수는 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와서 가수지망생의 모창을 지적한다. 하지만, 좀 우스웠다. 그래도 그녀의 언더 그라운드에서 축적된 음악은 존중한다.

 

포유류의 가장 슬픈 목소리

 

 

에벌리브라더스Everly Brothers가 부른 명곡 <Let it be me>를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밴드 뉴트롤즈New Trolls가 리메이크한 것을 들었을 때, 신곡으로 착각했다. 배드핑거Badfinger의 저주받은 명곡 <Without You>를 해리 닐슨Harry Nelson이 불렀을 때에도 전혀 다른 곡인 줄 알았다. 리메이크한 가수의 역량과 편곡의 기술로 전혀 새로운 노래처럼 들리되 새로운 느낌을 주도록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

 

임재범의 <빈 잔>은 남진의 원곡이라고는 생각도 되지 않는 편곡과 곡해석 능력과 보컬의 특색으로 리메이크의 모범을 보여준다. 1979년 MBC가 주최한 서울국제가요제의 대상곡 윤복희 작곡 노래, 윤항기 편곡의 <여러분>을 전형적인 가스펠Godspell이며, 한국판 <마이 웨이>로 일컬어지는 대곡大曲인데, 진심으로 불러 다시 한번 관객들을 울리고 <나가수> 최초의 기립 박수를 받는다.

 

故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마이 웨이My Way>는 세계각국의 가수들이 가장 많이 사랑받고 리메이크되는 대표적인 인생 찬가이다. 단 3곡으로 <나가수> 선풍의 주역이 된다.

 

굴곡진 유년시절의 아픔을 숨기고자, 50년동안 마음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고 안타까워 하는 임재범은 <여러분>을 부르다가 또 다른 슬픔에 눈물 짓는다. 이제 인기를 두려워 말고 누릴 줄 아는 인기가수가 되길 바란다.

 

<여러분>은 그에 비견되는 한국판 <마이 웨이>로 일컬어지는 대곡이다. 방송 직후, 어린 시절 윤복희을 만난 적 있는 임재범의 에피소드와 함께 윤복희와 윤항기 남매는 '임재범이 곡의 의미를 잘 알고 불러 줘서 고맙다'며 극찬하고, 현재 목사 윤항기는 모 프로그램에서 직접 '새로운 자신의 곡을 주고 싶다'고 전한다.

 

덩달아 <빈 잔>에서 귀곡성 스캣을 피처링한 뮤지컬가수 차지연도 주목받고, 임재범과 같은 소속사 예당과 계약한다. 직후 임재범은 그녀에게 자신의 곡 <그대는 어디에>를 리메이크하게 하여 가수로 데뷔시킨다.

 

그러나 <나가수> 3차 출연에서 압도적인 선호율 28.9%로 1위를 차지한 직후 급성맹장 수술과 손가락 부상으로 하차하고 갑작스런 전국적 '임재범앓이'의 과도한 관심에 팬카페 탈퇴, 미니홈피 폐쇄의 행동을 보여 팬들의 근심을 사고 있다.

 

심지어 건강문제로 나가수를 하차하는 임재범의 후임으로, 데뷔초기부터 임재범의 아류라고 맘고생을 했던 JK김동욱과 안티팬이 많은 아이돌 가수 출신의 뮤지컬배우 옥주현이 새롭게 참가한다. 게다가 하차 고별인사를 하러온 임재범이 경연무대 뒤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말들이 나와서, 나가수의 시청률 하락과 함께 다시 프로그램에 위기가 닥친다.

 

<너를 위해>의 가사처럼,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상처받은 야수 임재범을 생각하게 한다.

 

나가수 자진 하차 직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날아가 여행하는 등 역시 충동적인 듯 기이한 그의 행보를 계속한다.

귀국후 국가대표 축구경기에 초청받아 무반주 애국가를 불러 다시 한번 그의 엄숙한 가창력을 그라운드에 온 팬들에게 선사한다.

 

 

콘서트와 방송 출연 등으로 숨은 끼와 재능을 발휘하며 더욱 대중과 친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2011년 6월말 장마의 시작의 알리는 날,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나가수 이후 초미의 관심속에 '다시 깨어난 거인' 전국 컨서트의 서막을 연다. 나가수 열풍으로 그의 콘서트 티켓 예매는 15분만에 매진되고, 12만원 티켓의 암표가 100만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이다.

 

기존의 히트곡에 나가수에 출연하여 알려진 남진의 <빈 잔>과 윤복희의 <여러분>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구성하여 재현한다.

<빈 잔>의 피처링으로 유명해진 뮤지컬배우 차지연은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를 리메이크하고, 이날 공연에서는 임재범과 듀엣도 부른다. 공연중 나치복장으로 나타나 구설수에도 오르지만, 반나치를 상징하며 자유를 퍼포먼스한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김모씨가 7월 29일 소속사의 사무실에서 작업중 콘서트 연습중이던 임재범에게 '시끄러우니 볼륨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가 임재범과 경호원 등 3명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8월 20일 경찰에 임재범을 고소했지만 4일후 임재범과 합의를 한다.

 

양측의 합의로 사건은 사실상 마무리되는 듯 하지만 경찰수사는 계속된다. 현행법상 폭행죄는 합의에 의해 고소가 취하되면 사건이 종결되지만 상해죄의 경우 합의는 정상참작의 사유일 뿐 무혐의 처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재범은 8월 4일 고소인 김씨가 고소장에서 진술한 내용의 사실관계 여부를 확인하는 조사를 받기 위해 서초경찰서에 출두하여
피고소인 조사를 받은 후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지만 사건은 무혐의 및 쌍방합의로 종결된다.

많은 팬들의 가슴을 철렁거리게 한 또 다른 사건사고이다. 그의 원초적인 화기火氣가 화기和氣로 융화되길 바란다.

 

 

선풍적인 인기에 따라 20여개의 광고제안을 받는다. 그중 생애 첫 CF 커피광고는 평소 모습을 잘 담은 듯하다.

 

임재범은 9월 7일 인기만화가 강풀 원작의 <통증>을 개봉관에서 관람한 후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멜로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에 담겨진 깊은 감성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정말 잘 봤고 가슴이 먹먹할 만큼 감동적이었다. 연휴에 많은 분들이 보셔서 꼭 1위 했으면 좋겠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엔딩에 흘러나오는 OST <통증>과 영화가 이렇게까지 소름 끼치게 어울릴 줄 몰랐다. 영화의 OST에 참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말한다.


곽경택 감독은 '임재범 씨가 부른 OST <통증>을 처음에 휴대전화로 듣게 됐는데 듣자마자

소름이 쫙 끼쳤다'며 칭찬한 바 있다.
<통증>의 흥행은 최악이었지만 OST는 각종 음악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며 호응을 얻었다.

 

 

임재범은 배우 김영호, 탤런트 이준혁, 개그맨 지상렬, 작편곡가 하광훈, 작곡가 이호준, 소울다이브 넋업샨 등과 함께 MBC <우리들의 일밤-바람에 실려>의 촬영을 위해 9월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하루 전 9월 6일 경기 고양시 MBC 드림센터 인근 모 카페에서 이들은 여행전의 각오와 포부를 나누며 첫 녹화를 한다.


<우리들의 일밤-바람에 실려>는 히피 문화의 고향이며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시발점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록과 블루스 음악의 본산 미국 남부를 옮겨 다니면서 미션으로 던져진 음악작업을 하는 신선한 콘셉트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또 임재범이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을 지 여부에도 궁금증이 쏠렸다.
해외 현지 촬영중 생길 수 있는 각종 사고를 미연에 이번 미국행에 경호원이 동행한다. 그동안 해외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해
현지 코디네이터를 이용했지만 이번에는 경호원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항간에서는 늘 돌발행동의 가능성이 있는 임재범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경호원은 임재범과 무사히 여행을 끝내고 귀국할 때까지 함께하게 된다.


이미 13년전 임재범과 미국횡단 버스여행을 약속했지만 갑자기 임재범이 도망가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작곡가 하광훈은 '임재범의 여권을 압수하겠다'고 하며 '임재범이 잠수만 타지 않으면 이 프로그램은 성공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버클리대, LA 키클럽, LA 노키아극장 공연 등의 스케쥴을 마친 <바람에 실려>팀들은 현장에서 고스란히 녹음한 음원을 출시하고 특별히 하광훈과 스탭들이 만든 신곡 <바람에 실려Saddle The Wind>의 녹음도 마친다. 곳곳에서 부른 그의 애창곡들은 방송직후 음원으로 출시되어 많은 인기를 끈다. 특히 이글스Eagle의 <Despardo>, 김도균과 만든 명곡 <Rock In Korea>, 나가수에서 부른

남진의 <빈 잔>은 노키아극장에서 같은 소속사 뮤지컬가수 차지연의 피처링으로 다시 부른다.

 

2011년 12월 KBS <승승장구>에 출연, 최초로 토크쇼에 출연한다. 항간에 떠도는 그에 관한 모든 소문을 얘기한다. 2012년 2월 종편채널 TV조선 토크쇼 <노코멘트>에서 정준하가 20살 때 임재범과 친한 형 동생하는 막역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당구장에서 몇 시간 동안 머문 임재범을 보고 ‘형님 여기 아직도 계세요?’라고 물었다가 옥상으로 끌려가 따귀를 맞았다고 고백했다. 사람 좋은 정준하는 '재범 형이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자신을 창피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욱하는 마음에 따귀를 때리셨지만 후에 다정하게 안아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준하의 인맥은 놀랍다.

2012년 2월 19일 MBC TV 나가수 시즌1 종영스페셜 <310일의 여정>에서 감동무대3를 선정했다.
3위는 자문위원단의 극찬을 받은 박완규의 <고해>, 2위는 윤민수의 <어머님께>, 대망의 1위는 임재범의 <여러분>이다.
당시 청중평가단들과 참가가수들 눈물을 같이 흘렸고 무대를 마친 후 청중평가단은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2012년 4월 KBS2 인기드라마 <적도의 남자> OST <운명의 끈>을 불러 음원챠트를 다시 석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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