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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 문정현 文正鉉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본문

🙆‍♂️ 시사 & 인물 & 인터뷰

* 문정현 文正鉉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Ador38 2012. 4. 29. 16:25

문정현 文正鉉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 김일성 장군 조금만 오래 사시지 아쉽습니다

    (2002)

발언록

(제주 강정기지에서 체포당하며) 불의한 공권력에 저항했을 뿐

서귀포 경찰서에 연행되어 들어왔습니다. 저는 불의한 공권력에 저항했을 뿐입니다. 강동균 마을회장은 풀러나야 합니다. … 주저하지 말고 주민들과 함께 싸워주십시오. 강정을 지켜주십시오. 더 많은 이들이 필요합니다

( 2011년 08월 24일 , 제주 강정마을 트위터)

임수경, 문규현 신부의 방북 사건은 통일의 물꼬를 트는 계기

1989년 문규현 신부와 임수경의 방북은 예상대로 통일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와 조·중·동 보수 신문의 대결 구도가 벌어졌다. 작가 이문열은 “사제복을 벗어라. 빨갱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때 ‘한겨레’가 없었다면 통일에 대한 논의가 그렇게 활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89년 3월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이은 임수경, 문규현 신부의 방북 사건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 통일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

( 2010년 07월 25일 , 한겨레 기고문)

국가권력이 아니라 국가깡패

인혁당 추모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했습니다. 여전히 죽여 놓고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러고도 국가권력이라고 이야기하나? 국가깡패지. 지금도 이런 것을 당하고 있어야 하나요? 용산에서 생사람들 죽이고. 35년 동안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

( 2010년 04월 09일 , 4·9인혁열사 35주기 추모제)

우리는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

노무현 당선자도 당선 전과 후가 다르더군. 당선이 되고 나니 북핵은 생존이고, 소파(SOFA, 韓美행정협정)는 自主인데 생존이 자주보다 앞선다고 하대. 그래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노사모가 다 빠져나가고 자주의 촛불이 사그라졌지. 그런데 자주를 포기한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여중생이 죽어나가도 아무 말 않고 있는 것이 생존이야? 종속과 굴종은 살아있는 상황이 아니야. 자주는 우리 삶의 始發(시발)이야. 북핵문제도 자주할 때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해. 국제사회에서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도 미국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잖아.

( 2004년 05월 28일 , 인터넷 ‘문정현 신부의 세상보기’의 ‘문정현 신부에게 평화를 묻다’)

미국의 추악한 도덕성이 이라크전에서 드러나

한미(韓美)관계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겠어? 우리나라 군인 3600명을 일방적 통보로 끌고 갔잖아. 그건 일방적 통보나 다름없어. 그런 사람들은 우리 정부와 관계없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어. … 또 이라크戰도 그래. 이라크인들의 희생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지금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패권에 저항하고 있잖아. 그렇게 끝까지 버티니까 미국의 본질이 드러나는 거야. 저들이 말하는 도덕성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말이야.

( 2004년 05월 28일 , 인터넷 ‘문정현 신부의 세상보기’의 ‘문정현 신부에게 평화를 묻다’)

통일의 대장정을 위하여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자면 갈 길이 멀고도 멀다. 오늘의 기쁨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 모두 다시 신발 끈을 메야겠다.

( 2002년 12월 09일 , ‘제6회 지학순 정의평화상’ 수상소감)

한국민은 인간 백정 주한미군을 반드시 한국 재판대에 세울 것

( 2002년 11월 21일 , 동두천 여중생 추모집회 에서)

이제 미군 부대만 지나면 저주의 마음이 든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저들이 사람이냐?

( 2002년 09월 30일 , 朴모라는 시민이 미군 트레일러 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장례식장에서)

미군(美軍)고압선에 사망한 전동록 씨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전동록 씨와 효순이, 미선이를 죽인 美2사단 캠프 하우스를 즉각 폐쇄해야 한다.

( 2002년 07월 27일 , 서울 종묘공원‘미 군장갑차 여중생 살인만행 주한미군 규탄 5차 범국민대회’)

전동록, 신효순, 심미선의 죽음은 옛날 같으면 ‘개죽음’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죽고도 말 한마디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미군(美軍)의 주둔을 원치 않는다. 당장 떠나라.

( 2002년 07월 04일 , 용산 전쟁기념관 앞 반미집회)

우리 나라의 민주화가 되지 않고서는 인권문제도 사각지대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인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통일이라는 것이 미국놈이 없어야 가능하며 인권도 민주화도 가능하기에 시민의 힘으로 미국을 몰아내야 할 것이다.

( 2002년 05월 22일 , 경북대 '깨자! 내안의 분단의식' 제1기 통일아카데미)

나 역시 북한을 방문하였을 당시 만경대에 가서 ‘김일성 장군 조금만 오래 사시지 아쉽습니다’라고 썼습니다. … ‘우리를 갈라놓은 것이 미국이 아니고 무엇인가?’ 라면서 잠시 동안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 2002년 05월 22일 , 경북대학교 ‘제1기 통일아카데미’)

마지막으로 나의 견해를 밝힙니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 주둔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이것들은 해결되어야 할 민족의 과제입니다. 저는 국가보안법을 꼭 철폐하고 말 것입니다. 주한미군도 꼭 철수시킬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동지들과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다가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 2001년 11월 30일 ,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서 열린 국가보안법과 군사시설보호법 및 폭력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따른 선고공판에서의 ‘최후진술’)

인물정보

출생

  • 전북 익산 (1940)

학력

  • 카톨릭대 신학과
  • 메리놀신학교 대학원

주요 경력

  •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 상임대표 (2005)
  • 매향리 미군국제폭격장폐쇄 범국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 (2000)
  • 불평등 SOFA 개정 국민행동 상임대표 (1999)
  • 익산 창인동 성당 주임신부 취임 (1987)
  • 익산 작은 자매의 집 원장 (1986~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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