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늙었어도 가을단풍은 늠름하게 아름다운 느티나무 수령 400살의 보호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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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수지에 있는 심곡서원(조광조 사당)의 느티나무 400년동안 뿌리깊게 자라며 온갖 풍상을 겪었겠지요400년된 나무 기둥을 보니 역시 늙을 수 밖에 없어요
조광조의 주초위왕 기묘사화
조선조인 1506년 이른바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폭군 연산이 쫓겨나는 바람에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중종(中宗)은 비록 왕이라 할지언정 자신을 옹립한 훈구대신들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펼 수가 없었다.
견디다 못한 중종은 1515년 마침내 성균관에서 신진 사림(士林)세력이자 급진개혁론자인 조광조(趙光祖)를 전격적으로 발탁해 훈구대신들의 전횡을 견제하며 왕권회복을 도모한다.
기대했던 대로 조광조는 도학(道學)정치 이념아래 폐정개혁(弊政改革)을 내세우며 훈구파들의 목을 죄기 시작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공신의 4분의 3에 해당하는훈구대신들의 공훈까지 박탈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훈구대신들이라고 손 놓고 있을 리 없었다. 절치부심 기회만 엿보다 드디어 결정타를 날린다. 그들은 중종의 총애를 받던 희빈 홍씨와 짜고 나무 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을 써서 벌레가 파먹게 한 뒤 이를 왕에게 보여주었다.
여기서 ‘走와 肖를 합치면 趙’가 되니 이는 趙씨 곧 조광조가 왕이 되려 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조광조가 역모를 꾸민다는 얘기가 된다.
때마침 왕도 조광조의 지나친 도학적 언행에 염증을 느끼던 차였다. 신구세력간 사색당쟁 과정에서 발생한 황당무계하고도 추잡한 음모일지언정 왕은 이 모두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린다. 이것이 그 유명한 1519년의 기묘사화(己卯士禍)다.
조광조가 1500년대에 죽었으니 이나무는 조광조 1600년대에사후에 심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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