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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 모터 바이크 본문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2013.02.05 조회 18,413 댓글 46
바이크를 타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다. 하지만 바이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렇다면 현재 바이크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겐 뭔가 특별한 시작이 있었던 것일까? 바이크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13명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바이크 입문과 바이크 라이프에 대해 물었다.
트라이엄프 본네빌
글쎄 아마도 어릴 때부터 정해져있던 운명 같은 게 아닐까? 내가 아주 어릴 적의 우리집은 장충동이었다. 군의 날이나 각종 시가행진이 늘 우리집 근처를 지날 때가 많았는데 당시에 지나가던 오토바이 행렬을 볼 때면 나는 “오토바이~!” 라고 외치며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늘 나를 데리고 다니시던 우리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저건 경찰 오토바이고 할리라는 미제 바이크란다. 오토바이는 ‘하레이’가 최고란다” 라고….
그 뒤부터 언젠가 나도 꼭 할리를 탈 거라는 생각을 멈춰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내가 탔던 바이크는 대략 20대 정도 되는 거 같다. 한때 7대의 바이크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바이크에 미쳐 살았고 바이크를 너무나도 좋아했었다. 그 중 단 한 대도 특별하지 않은 바이크는 없었지만 그래도 굳이 꼭 한 대를 꼽으라면 트라이엄프 보네빌! 너무나도 어렵게 구한 바이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의 우상 스티브 맥퀸의 바이크이기 때문이다. 이 보네빌을 시작으로 나의 본격적인 바이크라이프가 시작되었던 거 같다.
안해성 아웃도어 칼럼리스트
야마하 비노
영화 속에서 주인공만큼이나 존재감을 뽐내던, 때로는 주인공과 함께 멋진 장면을 연출하던 바이크의 모습을 볼 때마다 바이크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러던 내가 스쿠터라는 것을 처음 타게 된 것은 약 10년 전,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친구들과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친구 중 한명이 배기량 50cc의 조그만 스쿠터를 끌고 나타났다. 하얀 매연을 힘차게 뿜어내던 그 스쿠터는 야마하의 비노. 딱히 체험해볼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다. 친구에게 간단한 교육을 받고 도로에 나왔는데 조작법은 어렵지 않아 금세 익숙해졌고 비록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한적한 도로를 유유자적 달리며 몸에 부딪히는 봄바람을 맞아보고는 단박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로부터 얼마 뒤 같은 배기량의 스쿠터를 한 대 구입했고 스쿠터 특유의 뛰어난 기동성과 수납성, 5000원을 주유하면 거의 하루를 놀 수 있는 높은 연비에 언제나 감탄했다. 그 뒤로 수동미션의 바이크를 배우는데 까지도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끔 125cc 매뉴얼 바이크를 빌려 연습하다 250cc이상의 바이크를 탈 수 있는 2종 소형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 등록, 한 번에 취득했다. 친구의 스쿠터를 타본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나름 폼나게 바이크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박상호 월간 모터바이크 기자
질레라 DNA50
같이 일했던 친구가 두카티의 몬스터라는 바이크를 타고 다녔다. 친구가 바이크를 타는 모습을 보니 나도 타보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주저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의 자동차의 불편함과 주차문제, 또 가끔 날아오는 교통범칙금고지서 때문에 대체이동수단으로 스쿠터를 선택했다. 초보자가 타기 쉬우면서 디자인이 예쁜 질레라의 DNA50이라는 스쿠터를 처음으로 구입했다.
스쿠터를 막상 타보니 좋은 점이 많았다. 스쿠터를 처음 탔을 때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신세계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 뒤로 여러 바이크를 타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바이크로 BMW F800ST를 꼽을 수 있다. 이 바이크로 인해 동호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바이크 타는 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BMW의 R1200GS 어드벤처라는 모델을 타고 있지만 BMW F800ST를 탈 때 가장 열심히, 또 재미있게 탔었던 것 같다.
노지훈 포토그래퍼
야마하 DT80
초등학생 때 나는 웨일즈 시골집 뒷마당에서 놀다가 집 근처 비포장 길에서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나기만하면 오토바이를 보기 위해 집 앞으로 재빨리 뛰어가곤 했다. 내가 집 앞에 도착할 때면 이미 지나가던 오토바이는 사라져버렸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공기에 아직 남아있는 2T엔진의 연기냄새와 흙바닥에 깍두기모양으로 찍힌 타이어 흔적을 보면서 오토바이를 타는 꿈을 꾸었다. 몇 년 뒤, 잉글랜드의 복잡한 도시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부모님은 오토바이를 못 사게 했지만 대신 농장에 살던 한 친구가 가지고 있던 오프로드 바이크인 야마하의 YZ80를 함께 타며 재미있는 추억들을 만들었다.
나중에 우리 가족은 잉글랜드에서 웨일즈로 다시 이사를 갔고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야마하의 DT80을 구입했다. 그렇게 바이크를 타기 시작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주로 오프로드 바이크들을 탔다. 나의 첫 대배기량 바이크는 야마하의 1985년식 FZ750였다. 당시 아는 형한테 샀던 그 바이크와 7년 동안 날마다 함께하면서 정말 많은 곳을 다니고 좋은 추억들을 만들었다. 내가 영국을 떠나게 되어서 이 정든 바이크를 팔아버렸지만 만약 내가 아직도 영국에 살고 있었다면 지금도 FZ를 계속 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야마하의 페이저 6N을 타고 한국의 도로를 달리고 있다.
피터 컬 초등학교 영어교사
혼다 줌머
2006년 즈음 클래식 스쿠터의 열풍과 함께 줌머 라는 이름을 가진 혼다의 스쿠터가 마음속에 들어왔다. 다소 만만해 보이는 작은 크기와 깜찍한 디자인을 가진데다가 4스트로크 수냉 50cc엔진을 장착해 매연도 없고 소리도 조용한 스쿠터였다. 이 스쿠터의 매력에 빠져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주말마다 바이크의 거리인 충무로를 헤매었으며 얼마 뒤 그 스쿠터를 구입해버렸다. 그땐 스쿠터를 타는 것이 얼마나 즐겁던지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회사를 스쿠터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아서 출근했었고 퇴근 후에는 스쿠터 동호회 회원들과 자주 밤거리를 달리곤 했다.
어느 날, 그 작은 스쿠터에 아내를 태우고 탄천길을 달리는데 아내가 작은 목소리로 “왜 오빠가 스쿠터를 타고 싶어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아지네~”라고 말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럼 우리 내년에 스쿠터 타고 제주도에 갈까?”라고 물어봤고 아내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로부터 1년 후 혼다의 250cc 스쿠터인 포르자 Z 스쿠터를 구입해 약속대로 아내와 제주도에 다녀왔다.
그 즈음 BMW R1200RT의 “A journey through Norway”라는 프로모션 동영상을 보고 매뉴얼 바이크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 후배의 소개로 두카티 물티스트라다를 구입하여 매뉴얼에 첫 발을 내딛었고 지금은 꿈에 그리던 BMW R1200RT를 타고 있다. 돌아보니 직업마저 모터사이클 용품 쇼핑몰의 대표로 바뀌었고, 아내도 2종 소형 면허를 보유해 전국일주를 함께 다니는 라이더 집안이 되어버렸다. 모터사이클은 내 인생을 바꿔놓았으며, 앞으로도 평생토록 함께할 인생의 동반자가 될 것 같다.
임용진 진 솔루션즈 대표
대림 마그마
대학 시절 학교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수업을 듣기 위해 헐레벌떡 언덕을 뛰어 오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도저히 못살겠더라. 그래서 뭐 없을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학교 후문에서 노란색 대림 마그마 125를 보고 한눈에 ‘그래 바로 저거다!!’ 했다. 위풍당당한 풍채에 트윈 머플러라니!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멋진 바이크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탔다는 건 아니고 마그마를 보고나서부터 모터사이클에 관심을 가져 99년부터 모터바이크 잡지를 구독했었다.
처음 구매했던 모터바이크 잡지의 메인기사는 스즈키 하야부사모델 특집이었는데 당시 이순수 기자님의 ‘스로틀을 비틀면 뒤에서 폭탄이 터져 공간이동을 한다.’ 는 문구를 보고 가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실제로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건 군 제대 후 부터이다. 군 제대 후 상태 좋은 대배기량 바이크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바로 혼다 CB400 V-TEC 99년식 모델이었다. 수요일에 나에게 왔다고 ‘웬디’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좋은 사람들과 이곳저곳 투어도 다니기 시작했다. 겁 없이 무릎을 긁으며 달릴 수 있게도 해준 차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내 첫사랑 바이크라고나 할까? 참 이놈하고는 이런 저런 좋은 추억이 많다.
이영선 대림 모터스쿨 교관
대림 텍트
게임회사 그래픽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시절 광나루 근처에 위치한 사무실과 업무상 강변역을 자주 오가게 되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직원의 편의를 위해 대림 택트50 한 대를 마련해 주었다. 장롱면허로 가지고만 있던 운전면허로 처음 맛보는 상쾌한 라이딩. 매력에 눈을 뜨고는 매일같이 카메라를 메고 타고나가 사진을 찍어댔다. 그래봤자 멀지 않은 곳이지만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데려다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길가에 잠깐 세워두고 볼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데 눈앞에 똑같은 택트를 탄 학생이 달려가는 것이었다. “엇!” 하는 사이 멀어지는 스쿠터. 일부러 농락하려는 것인지 몇 차례나 근처를 배회하더니 경찰이 등장하자 영영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바쁘게 일하며 스쿠터 생각을 못하다가 첫 125cc 스쿠터를 구입하게 되고 2종소형도 따고 두 바퀴의 매력에 빠져 결국엔 직업까지 바꿔 바이크 잡지사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50cc 택트가 결국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셈이다.
양현용 월간 모터바이크 기자
효성 RX-125
지방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터라 늘 자전거를 타고 근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마다 조금만 더 빠르게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죠. 어느 날 자전거를 도난당하고 나서 이번엔 또 다른 바이크인 모터사이클을 타볼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림 VF125를 타는 라이더가 된 겁니다. 졸업 후에도 서울에서 출퇴근용으로 VF125를 계속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바이크에 신경을 쓰지 못해 또 바이크를 도난당했습니다.
그렇게 바이크 없이 몇 달을 보내는 동안 마음속에 자리 잡은 바이크는 효성, 지금의 S&T RX125였습니다. 홍대부근에서 작업실을 할 때여서 비슷하게 생긴 오프로드 바이크가 많은 신촌의 바이크 샵을 자주 들렀습니다. RX125를 구매할 때만해도 이 머신을 타고 산에 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해봤습니다. 알고 보니 그곳이 신촌독수리라는 오프로드 클럽을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시작하게 된 오프로드 경험은 가난하고 고독한 창작활동을 하는 저에게 일상의 커다란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국내에 RX125같은 훌륭한 머신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범 디자이너
혼다 몽키
처음 바이크라는 것을 탄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형들의 바이크에 잠깐잠깐 올라 타본 것이 계기가 되어 이 기계장치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꽂히게 된 것이 혼다의 몽키를 타고 동경타워까지 투어링(?)을 갔었을 때다. 당시 동경에 살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전거를 타고 동경타워 1층에 있는 게임센터에 자주 놀러가곤 했었는데, 타워로 이어지는 언덕을 올라가기가 좀 빡세서 언제나 도중에 꼭 한 번은 자전거에서 내려서 쉬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그 언덕길을 이 조그마한 녀석은 힘들다는 소리도 안 하고, 낑낑거리는 기색도 전혀 없이 무거운 나를 싣고 잠자코 통통통거리며 올라가는 거다. 자전거를 타면서 내가 무겁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앙증맞은 시트에 다소곳이 앉은 채로 이 작은 녀석에게 무척이나 미안하고, 하염없이 기특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달리면 달린 만큼 가솔린이 줄어드는 것도 마치 먹이를 먹는 동물을 연상시켰다. 기계가 아닌 생명체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 내 운명을 갈랐다고 봐도 좋다. 그 후의 인생은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다.
이순수 월간 모터바이크 편집장
로얄엔필드 C5M
사실 나만큼 바이크 자체를 부정적인 인식으로 바라봤던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아버지께서 소방공무원이셔서 항상 사고현장을 접하며 살아왔기에, 영화 속에 나오는 아주 멋진 바이크 씬을 보더라도 나에겐 항상 ‘위험한 탈것’ 그 자체였으니까. 게다가 고등학교 때 불량하게 바이크를 탔던 친구들의 모습도 부정적인 인식에 한몫을 했던 것 같다. 그런 관점이 한방에 바뀌었던 계기는 성인이 된 후 직장동료의 50cc 스쿠터 줌머 뒤에 탠덤을 했던 날이었다.
그 날 느꼈던 자유로움과 오후의 햇살, 스쿠터로 이동해보니 너무나도 가까웠던 한강, 그곳에서 바라본 노을, 그야말로 내 안에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새로운 세포가 하나 더 뻥! 하고 열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정서적인 감동과 합리적인 이동수단으로 바이크라이프를 시작했고, 잡지사에 들어오고 여러 바이크를 접하다가 지금은 클래식 바이크인 로얄엔필드 C5M을 타고 있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 바이크는 행복한 이동 수단이며 멋진 옷이자, 감성의 촉매제이다.
조현 월간 모터바이크 기자
선빔 S7
내 첫 소유의 모터사이클은 19살이 되던 해에 영국으로 해외어학연수 인솔자로 갔다가 예전에 살던 동네를 우연히 방문하였다가 아직도 그 집 그대로 살고 계시는 옛 이웃 분을 뵙고서이다. 흰 수염이 인상적이시던 이 할아버지는 브로어 슈페리어를 비롯하여 다양한 영국 모터사이클들을 소장하고 계셨다. 근10년 만에 찾아뵙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에 아시아인이 없어서였는지 할아버지께서 나를 기억해 주셨다. 할아버지의 모터사이클 소장품들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가 마침 대학 다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방학 때마다 인솔자로 영국에 오기로 되어 있는지라 이참에 바이크 한 대 질러야겠다 싶어서 할아버지를 조르고 또 졸랐다. 남는 거 하나 없수?(웃음) 결국 할아버지가 두 대 소장하고 계시던 선빔(Sunbeam) S7 1948년식 모델 하나 획득! 가격이 더 착한 것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만져보고 싶은 욕심이 강했던지라 상태가 더 안 좋은 넘을 구매하였다.
선빔이 1943년부터 BSA에 귀속되었던지라 정확히 표현하면 BSA Sunbeam S7 모델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낮에는 학생들 인솔하고 퇴근하고 나면 무조건 할아버지 집에 쳐들어가서 같이 S7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기 시작하였다. 아쉽게도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귀국해야 했던 관계로 실질적인 라이딩은 다음 방학인 6개월 후로 미루어졌다…. 정말이지 한국에 돌아와 있던 이 6개월…. 시간은 왜 이리 안 가는지…. 한국에 가져오자니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5년 후 선빔 동호회 회장한테 위탁하여 판매했지만, 어찌 보면 이것이 나의 클래식 모터사이클 삶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유봉재 로얄브리티쉬클래식 대표
할리데이비슨 아이언 883
바이크를 타게 된 특별한 계기는......없다. 예전부터 ‘그냥’ 타고 싶었다. 용기를 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 더 나이 들면 바이크 일으켜 세울 힘도 없어질 것 같아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 짜내어 라이더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막상 라이더가 되고 보니, 할머니가 되어도 계속 탈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할 걸 그랬나 후회도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바이크는 할리데이비슨 아이언 883. 내 첫 바이크다. 가장 많은 추억을 선물해 준 녀석이다. 폭우 속을 달려 서울-부산을 왕복한 2011년의 투어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일 때, 무작정 구입했다가 고생만 시킨 아이언 883.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전승우 라이더
야마하 팝갤
제가 처음으로 돈 주고 산 바이크는 1982년식 야마하 팝갤(Popgal)이라는 스쿠터였습니다. 처음 딴 바이크 면허라 50cc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나한테 바이크를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저렴한 초보자용’을 골랐던 겁니다. 물론 완전히 순정 상태로 타면서 바이크의 기본을 파악하면서 바이크 타는 법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순정인데 무진장 빠른 바이크’라는 것이 우리들 사이에서 유행이라서, 스스로 연구, 정비를 하면서 조금씩 빠르게 만들어갔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순정 상태로는 최고 시속 30~40km인 것을 시속 90km까지 올리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푸른 신호등 받고 출발 가속하면 따라올 자가 없었지요. 아무리 봐도 순정 상태 바이크였으니 주위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는 것은 참으로 유쾌하답니다.
다카하시 바이크 정비사
'📡 4차산업.보안.특허.AI.IT > 🚢 조선.차량.항공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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