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iframe width="760" height="560" src="https://www.youtube.com/embed/bDp_UBovguQ?list=RDCMUCR1DO0CfDNPVdObksAx508A"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allowfullscreen></iframe>
- 미
- 다음 불로그
- Today
- Total
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4. 벤츠·BMW 차례로 넘어선 ‘신성’ 아우디 본문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4. 벤츠·BMW 차례로 넘어선 ‘신성’ 아우디
Ador38 2014. 12. 11. 10:40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4. 벤츠·BMW 차례로 넘어선 ‘신성’ 아우디
피에히 의장이 프리미엄 브랜드로 변신 이끌어…람보르기니 등 인수
| ||
“아우디가 벤츠를 제쳤다.”
2012년 1월 세계 자동차 업계가 술렁거렸다. 폭스바겐그룹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아우디의 2011년 글로벌 연간 판매량(130만 대)이 메르세데스-벤츠(126만 대)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기술 혁신과 품질 강화를 통해 BMW·벤츠 추격에 나선 지 40여 년 만의 일이다. 아우디는 그 후 벤츠와 꾸준하게 격차를 벌리며 2위 자리를 굳혔다. 벤츠는 2005년 BMW에 1위 자리를 내준 후 6년 만에 3위로 주저앉았다. 이제 아우디의 칼끝은 독일 프리미엄 3사 중 9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BMW를 향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1~2월 아우디(24만2400대) 판매량은 BMW보다 383대 앞섰다. 아우디가 BMW보다 많이 판매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1~2월 판매량 BMW 추월
4개의 자동차 브랜드가 합병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우디의 역사는 알루미늄 차체와 콰트로(사륜구동) 등 끊임없는 소재와 기술 혁신을 통해 발전해 왔다. 몬테카를로 랠리와 르망 24시 레이스 등 모터스포츠를 통해 자사의 기술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와 모터사이클 브랜드 두카티, 디자인 회사 이탈디자인주지아로까지 거느리며 폭스바겐과 함께 그룹을 이끄는 양대 축으로 자리 잡았다. 아우디가 ‘폭스바겐그룹 안의 작은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늘의 아우디를 만든 주역이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이 있었다.
아우디의 전신은 아우구스트 호르히 박사가 메르세데스-벤츠에서 독립해 1901년 설립한 ‘호르히 오토모빌-베르케’다. 자신이 세운 회사이지만 자동차 경주에 지나치게 몰입한다는 이유로 다른 경영진에 의해 회사에서 쫓겨났다.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잡스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지만 호르히는 그렇지 못했다. 결국 그는 1909년 ‘호르히 오토모빌’이라는 회사를 다시 설립했다. 하지만 기존 호르히 회사에서 “같은 이름을 쓴다”며 고소를 당했고 호르히(듣는다는 뜻)의 라틴어인 아우디로 회사명을 바꾸게 된다. 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아우디AG의 설립 배경이다.
1932년 호르히와 아우디 두 회사는 합쳐진다. ‘데카베’와 ‘반더러’까지 총 4개 자동차 회사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아우토 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합병한 것이다. 아우디의 엠블럼 네 개의 링은 이들 4개 회사를 의미한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올림픽 오륜기와 닮았기 때문이다. 아우디는 이를 역이용해 2013년부터 올림픽 후원사로 나섰다. 위원회의 기분도 달래고 브랜드도 알리는 전략이다.
4개의 회사는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뭉쳤지만 의도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경영난을 겪던 아우토 유니온은 1959년 다임러-벤츠에 인수됐다. 다임러-벤츠는 1964년 다시 아우토 유니온의 상표권과 지분 50%를 폭스바겐에 넘겼다. 폭스바겐은 이 회사의 브랜드명을 데카베에서 아우디로 바꿨고 2년 뒤 지분율을 99.55%까지 높이며 폭스바겐그룹에 완전히 편입시켰다.
아우디는 내로라하는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4개의 회사가 모인 만큼 기술력이 강했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아우디의 슬로건인 ‘기술에 의한 진보’ 역시 이것에 뿌리를 뒀다. 이 때문에 모회사인 폭스바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폭스바겐을 뛰어넘는 기술과 차량을 내놓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의사결정 사다리의 꼭대기에는 언제나 폭스바겐이 있었다.
피에히 의장은 폭스바겐그룹 성장의 주역이지만 오늘날의 아우디를 있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포르쉐 경영에서 손을 뗀 후 아우디로 자리를 옮겨 1973년부터 1992년까지 총 19년간 몸담았다. 이 기간 동안 아우디는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중국인을 사로잡은 ‘네 개의 링’
아우디 80은 그가 아우디로 옮기기 직전인 1972년 7월 출시된 차로, 큰 성공을 거뒀다. 피에히는 이 차량을 기반으로 2도어 쿠페 해치백 모델을 제작했고 아우디와 폭스바겐 경영진을 만족시켰다. 이듬해 이 차량이 폭스바겐 엠블럼을 달고 세상에 나왔는데, 이게 바로 최초의 ‘파사트’다. 오늘날 아우디는 물론 폭스바겐그룹 전체의 심장 역할을 하는 디젤엔진도 그의 손에서 나왔으며 아연 도금의 자리를 이어받은 알루미늄 차체라는 소재 혁신 또한 피에히의 추진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알루미늄 차체와 함께 아우디를 가장 많이 수식하는 것이 ‘콰트로’다. 가파른 스키 점프대를 거꾸로 올라가는 퍼포먼스로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콰트로’는 독일 3사 중 아우디가 가장 먼저 시도한 사륜구동 시스템이다. 승용차의 주행 성능을 극대화하면서 안정성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한 피에히 당시 아우디 개발 담당 이사는 사륜구동 승용차 개발에 착수해 1978년 프로토타입 모델 ‘아우디 A1’을 제작했다. 이것의 양산 모델이 아우디의 전설적인 명차 ‘아우디 콰트로’다. 최초 사륜구동 프로젝트의 발터 트레저 팀장이 ‘쿼드로(quadro)’라는 명칭을 고안했고 피에히가 “단어의 어감이 너무 부드럽다”며 이탈리아어로 4를 뜻하는 ‘콰트로(quattro)’로 수정했다.
아우디의 질적 성장은 모터스포츠에서, 양적 성장은 중국에서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오프로드를 내달리는 각종 랠리 대회에서 2000년대 들어선 ‘르망 24시 레이스’를 통해 디젤엔진과 디젤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 기술력을 증명해 보였다. 아우디는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 횟수인 12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르망 24시는 포뮬러원(F1)과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등과 함께 세계 최대의 자동차 레이스로 손꼽힌다. 레이싱 카 한 대당 3명의 드라이버가 번갈아 운전하며 24시간 동안 누가 더 먼 거리를 갔는지 겨루는 경기다. 일반적으로 완주하면 주행거리는 4000~5000km에 달한다.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중국의 역할이 컸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동차 업체들의 중국 판매 의존도가 높은 건 흔한 일이다. 아우디는 BMW나 메르세데스-벤츠보다 중국 시장을 먼저 파고들어 현재 3사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아우디의 중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25% 늘어난 41만 대다. 전체 판매량(157만5000대)의 26.1%에 달한다. 같은 기간 중국에서 BMW는 21만 대, 벤츠는 13만 대를 판매했다. 중국 시장을 선점한 아우디의 전략도 주효했지만 중국인들의 남다른 아우디 사랑도 큰 역할을 했다. 아우디의 엠블럼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 ‘8’과 닮았기 때문이다.
아우디는 피에히 의장과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그룹 회장의 ‘총애’를 받으며 외형적인 성장도 이루고 있다. 그룹은 아우디에 이탈리아 슈퍼 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를 안겨준데 이어 2010년 이탈디자인, 2012년 두카티까지 인수하며 대제국인 폭스바겐그룹 내의 작은 제국으로 커나갔다. 여기에는 아우디가 독일 3사에 필적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하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 그 덕분에 아우디는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내며 실적 또한 지속적으로 개선됐다.
아우디는 1998년 6월 인도네시아 부호 토미 수하르토(수하르토 전 대통령 아들)로부터 람보르기니를 인수했다. 수하르토는 1994년 크라이슬러로부터 람보르기니를 인수했지만 1990년 후반 경제 위기로 타격을 입어 디아블로 후속 모델 개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매각을 결정했다. 2003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에 비해 다소 뒤처졌던 아우디는 A4와 A6 성공을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지만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기반의 슈퍼 카 R8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이탈리아 기업 3개 인수…폭스바겐그룹 내 소제국
자동차 성능과 조립 품질 등은 독일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디자인만큼은 이탈리아가 여전히 힘을 내뿜고 있다. 2010년 아우디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설립한 ‘이탈디자인주지아로’의 지분 90.1%를 인수했다. 나머지 9.9%는 주지아로 일가가 보유하고 있다. 주지아로는 ‘해치백의 교과서’로 불리는 폭스바겐 ‘골프’ 1세대 등 폭스바겐 주력 차량을 디자인했다. 이 밖에 페라리 ‘250GT’와 마세라티 ‘기블리’, 현대차의 ‘포니’까지 다양한 자동차를 빚어낸 이 분야의 독보적인 인물이다,
피에히와 주지아로는 동갑내기 친구다. 둘의 인연은 40여 년 전인 197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르쉐 경영에서 손을 뗀 피에히는 머리도 식힐 겸 이탈리아 자동차의 특징을 연구하기 위해 이탈리아 토리노에 살고 있는 조르제트 주지아로를 찾아갔다. 그는 주지아로의 자택에서 한 달 정도 지내면서 견습생으로 일도 하고 이탈리아어도 배울 정도로 가까웠다.
프리미엄 오토바이 업체 두카티 인수(이탈리아 3개의 PEF로부터 인수)엔 모터사이클 마니아인 피에히 의장의 선호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탈리아 두카티의 미학과 오스트리아 KTM의 경량 차체 철학이 나의 취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 모터사이클의 팬이기도 한 피에히 의장은 폭스바겐그룹 회장으로 임명되던 1993년 1월까지도 1970년대 출시된 혼다의 ‘750’ 초기 모델과 135마력짜리 ‘VR1000’, 4기통 엔진을 탑재한 야마하 ‘500’ 등을 타고 있었다. 피에히 의장의 아내인 우줄라가 “모터사이클과 폭스바겐그룹 회장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닦달하고 나서야 모터사이클을 처분할 정도였다.
피에히 의장은 모터사이클 자체 생산을 시도한 적도 있다. 아우토 유니온 4개 회사 중 데카베와 1969년 추가로 인수한 NSU는 모터사이클 제조사이기도 했다. 아우디에 제작 및 생산 기술 노하우가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피에히는 1977년 아우디 엔지니어들과 함께 모터사이클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양산을 추진했다. 하지만 폭스바겐 경영진은 이를 백지화했다. 혼다가 모터사이클로 ‘대박’을 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피에히는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2012년 아우디가 자회사인 람보르기니를 통해 두카티를 인수한 배경에 피에히 의장의 지휘가 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피에히 의장을 포함한 폭스바겐그룹 경영진은 프리미엄 3사 중 최고의 자리를 노리는 아우디 역시 이들에 필적하는 외형을 갖추길 원했을 것이다. 아우디가 위로 람보르기니를 두고, 디자인 회사인 이탈디자인과 두카티를 거느리고 있는 이유다. 폭스바겐그룹이 더 큰 제국을 꿈꾸듯이 아우디 역시 팽창을 향한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게다가 피에히 의장의 심복인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그룹 회장은 아우디 출신이다. 그리고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은 바로 2007년 44세의 나이로 아우디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루퍼트 슈타들러다. 이변이 없는 한 아우디의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은 물론 차기 회장이 누구일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진석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
'📡 4차산업.보안.특허.AI.IT > 🚢 조선.차량.항공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6. ‘모두를 위한 자동차’…GM 왕국의 탄생 (0) | 2014.12.11 |
---|---|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5. 해가 지지 않는 자동차 제국 ‘폭스바겐’ (0) | 2014.12.11 |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3. 역인수로 친가를 제압한 피에히 회장 (0) | 2014.12.11 |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2. 골리앗 정복을 꿈꾼 ‘다윗’ 포르쉐 (0) | 2014.12.11 |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1. 세계 자동차 산업 뒤흔든 ‘차이나 파워’ (0) | 2014.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