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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22. 현대차, 갈라파고스섬인가 백조의 발인가 본문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22. 현대차, 갈라파고스섬인가 백조의 발인가
Ador38 2014. 12. 11. 11:11[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22. 현대차, 갈라파고스섬인가 백조의 발인가
꾸준히 독자적 기술 개발에 주력…해외 완성차 인수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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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2010년 4월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웃으며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의 옆에는 디터 제체 다임러그룹 회장이 미소 짓고 있다. 이날 곤 회장과 제체 회장은 양자 간 자본 제휴를 공식 발표했다. 다임러가 닛산과 르노 지분 3.1%를 취득하고 닛산과 르노 역시 같은 수준으로 다임러 지분을 갖는 방식이다. 다임러는 르노-닛산에 11억7000만 유로어치의 주식 3290만 주를 넘기고 르노-닛산으로부터 8900만 주를 받았다.
소규모 지분 교환 방식의 느슨한 협력 관계이지만 독일·프랑스·일본, 고급 브랜드(메르세데스-벤츠와 인피니티)와 양산 브랜드(르노와 닛산, 스마트)라는 촘촘한 진영으로 구성된 연합군의 탄생이었다. 이들은 엔진과 소형차를 공동 개발하고 차량 부품을 같이 조달해 구입비용을 낮추고 생산 공장 공동 사용도 약속했다. 전기차도 공동 연구하기로 했다. 주목할 만한 결과물이 지난해 등장했다. 벤츠의 2.2리터 디젤엔진을 탑재한 인피니티 ‘Q50’이었다. 이 차량은 해외시장은 물론 국내시장에서도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판매 저조로 시련에 빠져 있던 인피니티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일본의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사인 도요타는 독일 BMW와 폭넓은 기술제휴를 진행 중이다. 2011년 11월 클린 디젤엔진 분야에서 기술제휴하기로 했고 이듬해인 2012년 6월에 연료전지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강화 플라스틱을 이용한 차체 경량화와 차세대 배터리 개발도 공동으로 진행 중이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연료전지 기술 노하우와 BMW의 우수한 디젤엔진 제조 능력을 공유해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업계는 2018년께 내놓을 이들 두 회사의 ‘실크 로드2’ 프로젝트를 주목하고 있다. 포르쉐 911과 같은 고성능 미드십(엔진이 차체 가운데 탑재된 방식) 스포츠카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 차량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피아트그룹은 지난 1월 크라이슬러의 지분을 모두 인수,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포드와 포니, 출발은 제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글로벌 업계의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반면 현대자동차 주변은 유독 잠잠한 듯하다. 합병이나 자본 제휴는 물론 기술협력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어떤 기업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 현대차는 빈번하게 인수 후보 1순위로 거론된다. 그때마다 현대차 측은 부인하며 “자동차와 관련된 것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한다. 기술협력에 있어서도 ‘자체 개발’을 부르짖는다. 현대차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홀로 서 있는 ‘갈라파고스섬’일까, 물밑으로 치열하게 기술협력과 제휴를 맺고 움직이는 ‘백조의 발’일까.
현대차는 시작은 제휴였다. 첫 파트너는 미국의 포드였다. 당시 정주영 회장이 포드를 선택한 이유는 이 회사가 자본 및 경영 참여에 큰 욕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드와의 첫 합작품은 소형차 ‘코티나’였다. 영국 포드로부터 부품을 들여와 국내 공장에서 조립하는 방식(CKD)이었다. 포드와의 제휴는 순조로웠지만 현대차가 합작사 설립을 제의하면서 이내 틀어졌다. 포드가 합작사의 50% 이상 지분과 경영권을 수락 조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1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합작 엔진 법인을 설립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마저도 실무 협상에서 이견을 보이며 끝내 무산됐다. 정부도 1973년 1월 포드와의 합작 투자 계약 승인을 취소했다.
현대차가 독자 노선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된 첫 사례였다. 포드와의 합작 실패는 현대차에 전화위복이 됐다. 고유 모델 ‘포니’를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포니도 속을 들여다보면 다수의 완성차, 부품 제조사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현대차는 당시 자동차 독자 개발 능력이 부족해 일본·영국·미국·이탈리아 업체들의 기술 지원을 받았고 이를 발판으로 성장해 갔다.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첫 엔진은 이후 25년 뒤인 1991년 등장한 알파엔진이었다. 마북리연구소에서 7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해 배기량 1.5리터짜리 알파엔진을 스쿠프에 장착했다. 중형급 엔진은 2001년 쏘나타의 4.5세대 모델인 EF쏘나타에 처음 탑재됐다. 2500cc 델타엔진이었다. 기존의 1.8리터, 2.0리터 시리우스 엔진도 함께 들어갔고 2004년 5세대 NF쏘나타가 등장하면서 세타 2.0, 2.4와 3.3 람다 등 독자 개발한 엔진으로 모두 교체됐다.
지난해 11월 21일 국내 자동차 업계는 뒤숭숭했다. 다임러그룹이 베이징자동차그룹(BAIC)의 지분 12%를 6억2500만 유로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BAIC의 이사회 자리 2석도 확보해 의사 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외국 기업이 중국 국영 자동차 제조사의 지분을 인수한 첫 사례였다. 문제는 현대차의 중국 내 합작 파트너가 BAIC라는 것이다. 논란은 현대차와 다임러그룹 양사 모두 “이번 지분 변동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히며 잦아들었지만 10년 전 두 회사의 합작 청산을 떠올리게 했다.
2000년 9월 현대차가 다임러그룹에 지분 10%를 넘기고 다임러 측은 이사진 1명을 파견했다. 다임러·BAIC 간 합작과 유사한 모양새다. 당시 현대차·다임러는 전주의 상용차 공장을 50 대 50 합작 법인으로 전환하고 기술 교류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두 회사의 파트너십은 불발로 끝났다.
완성차보다 부품사 협력 중시해
2002년 설립하기로 했던 합작 법인이 무기한 보류되자 다임러그룹은 베이징자동차와 승용차 합작 생산 계약을 체결했고 둘 사이에 금이 갔다. 이후 2004년 5월 다임러가 현대차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합작은 끝났다. 현대차는 미국(포드)·일본(미쓰비시)·독일(다임러그룹) 등 주요 자동차 선진국 제조사와의 제휴를 경험했다. 그 사이 ‘기술 독립’의 의지도 굳어져 갔다. 이후 현대차는 공식적으로 어떤 완성차 업체와도 기술·자본 제휴나 합작, 인수·합병(M&A)을 추진하지 않았다.
현대차는 눈을 부품사로 돌렸다. 완성차 업체와의 제휴나 합작에는 인색한 반면 부품사와의 협업은 활발하게 진행했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현대차를 ‘백조의 발’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현대차는 전장 부문 강화에 역점을 두고 2005년과 2006년 현대오토넷과 본텍을 인수하면서 이를 본격화했다. 전장 부문에서도 기술 독립을 진행했다. 2012년 8월 1일 현대차는 독일 보쉬로부터 케피코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며 제휴 관계를 청산했다. 케피코는 1987년 현대차와 보쉬, 일본 미쓰비시전기 계열사인 멜코 등 3개사가 함께 세운 엔진 제어 관련 전장 부품 생산 업체다.
설립 당시 현대차·보쉬·멜코의 지분은 각각 50%, 25%, 25%였지만 이후 보쉬가 멜코 지분을 모두 인수해 현대차와 보쉬가 50 대 50의 지분으로 케피코를 경영해 왔다. 이후 케피코는 사명을 현대케피코로 변경했다. 이와 함께 현대차 그룹은 소프트웨어 플랫폼 전문 자회사인 현대카네스의 사명을 현대차전자에서 현대오트론으로 변경하고 자체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현재까지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핵심 전장 부문 기술 독립이 벽에 부딪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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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미국 델파이와 함께 연비를 기존 엔진보다 25% 이상 향상시킬 수 있는 GDCI(가솔린 직분사 압축 점화) 엔진을 개발 중이다. 완성차 대신 부품사와의 협력을 통해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부품 계열사들도 합작과 기술제휴를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현대위아는 2013년 8월 8일 일본의 세계적 터보차저 제조사인 IHI와 손잡고 합작 법인 ‘현대위아 IHI 터보 주식회사(HWIT)’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현대위아는 캐나다의 마그나와 합작 법인 ‘위아마그나 파워트레인’을 세우고 2010년 5월 24일 충남 아산에 생산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마그나 인터내셔널의 계열사인 마그나 파워트레인은 사륜구동 시스템을 벤츠 등에 공급하고 있다.
아산 공장에선 사륜구동 차량의 핵심 구동 부품인 ‘전자식 커플링’을 생산한다. 현대차가 신형 제네시스를 통해 선보인 사륜구동 시스템 ‘H트랙(HTRAC)’은 마그나의 기술 협력을 통해 개발된 것이다. 신형 제네시스에는 ‘액티브 시트벨트(ASB)’도 처음으로 탑재됐다.
전방 충돌이 예상되거나 차로를 이탈하면 시트 벨트가 탑승객을 조이는 장치다. 현대모비스는 2013년 12월 12일 이 제품을 개발,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1년 11월 24일 일본 다카다와 손잡고 만든 부품이다. 다카다는 세계 3대 자동차 안전 시스템 전문 기업이다. 현대모비스가 전자제어장치(ECU)의 설계 및 생산, 다카다가 모터 및 기어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변속기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파워텍은 오랜 기간 독일의 ZF 프리드리히스하펜 AG로부터 변속기를 공급 받으면서 기술 노하우를 습득해 왔다.
애스턴 마틴에 쏠리는 시선
다른 자동차 제조사와의 자본 제휴나 M&A는 리스크를 동반한다. 폭스바겐을 삼키려다가 도리어 피인수 당한 포르쉐가 대표적이다. ‘승자의 저주’처럼 인수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자금 부담으로 그룹 전체가 경영난에 빠질 위험도 있다. 착실하게 수익을 내고 이를 자체 기술 개발에 투자해 이를 통해 자동차 제조 기술을 발전시켜 더 값나가는 차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바람직하다는 데 이견을 달 수는 없을 것이다. 대표적 기업이 세계 1위 자동차 제조사인 도요타다. 현대차는 도요타처럼 보수적인 경영 방식을 견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를 인수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 향상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물망에 떠오르는 브랜드는 영국의 애스턴 마틴이다(한국경제신문 2012년 11월 15일자, 2012년 12월 11일자 보도).
1913년 영국 사업가 라이오넬 마틴이 설립한 애스턴 마틴은 007 제임스 본드 영화 시리즈에 자주 등장해 ‘본드카’로도 유명하다. 최근 개봉된 007 영화 시리즈 ‘스카이폴’에도 1964년형 DB5가 등장했다. 전 세계에서 4대뿐인 이 차의 대당 가격은 46억 원에 달한다.
애스턴 마틴은 2007년 포드에서 쿠웨이트계 투자 운영사 인베스트먼트 다르에 인수됐다. 다르는 포드에 7억6600만 달러를 지급했고 지분 64%를 확보했다. 이후 다르는 애스턴 마틴의 판매 부진으로 경영난을 겪자 다시 매각에 나섰다. 애스턴 마틴의 2011년 연간 판매량은 4200대로 2007년의 7200대보다 40% 이상 줄었다. 매각가는 8억 달러 안팎으로 알려졌다. 인도의 마힌드라 및 마힌드라그룹 등이 뛰어들었지만 결국 2012년 12월 이탈리아 사모 펀드인 인베스트인더스트리얼에 팔렸다. 애스턴 마틴은 주요 완성차 브랜드 중 사모 펀드가 소유한 유일한 회사다. 현대차와 같은 완성차 업체들이 인수할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
애스턴 마틴과 현대차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이질감도 덜하다. 현대차의 패밀리룩인 ‘헥사고날 그릴’과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는 애스턴 마틴과 비슷한 점이 있다. 현대차의 제네시스 로고 역시 애스턴 마틴의 로고와 같은 날개 모양이다. 현대차가 지향하는 ‘모던 프리미엄’의 정상에 서 있는 브랜드인 만큼 애스턴 마틴 인수를 통해 선진 기술과 디자인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소비자들이 현대차 제네시스와 다른 자동차 사이에서 갈등할 때 애스턴 마틴의 후광효과는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이 될 것이다. 인수 금액이 9000억 원 안팎이라면 연간 8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현대차에 크게 부담되는 금액도 아니다.
최진석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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