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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 6~70년대 한국 가요의 외딴섬 - 뜨와에 무아의 약속이 지닌 절제의 미학... 본문
2019. 4. 14. 10:12
http://blog.naver.com/echorental/221513177073
저는 1960년대를 한국 가요계의 여명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로는 몇 가지가 있는데요,
우선, LP의 등장을 들 수 있습니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레코드가 78회전의 SP에서 33과 1/3
회전의 LP로 바뀌었죠.
LP 시대가 막이 오른 게 1960년대였는데, LP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LP 이전에는 생방송으로 쇼나 음악 프로그램이 진행됐는데
LP가 나오면서부터는 레코드를 통한 방송이 가능해지면서 가요 보급이
그야말로 봇물 터지듯 확산되기 시작한 거죠.
두번째로는 방송국들이 대거 출현했다는 점입니다.
1961년 초에 KBS TV가 개국한 데 이어 12월에는 MBC
TV가 전파를 발사합니다.
1963년에는 DBS 라디오가, 1964년에는 TBC TV가
개국하게 되고요.
이렇게 됨으로써 국내 가요계는 바아흐로 전파시대로 접어들게 되는데요,
이 여파로 당시까지 미8군에서 활약하던 상당수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방송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수준 높은 미8군 무대에서 활약하던 일군의 가수들 중에서는 학벌과 기량을 갖춘 가수들이 많았죠.
강수향, 최희준, 박형준, 유주용, 김상희, 최양숙 등등 ......
이들은 미국 팝송의 성향이 짙은 노래들로 한국 가요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요.
이들 학사 가수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미8군 출신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가수는
누가 뭐래도 한명숙입니다.
<노란 샤쓰 사나이>로 한명숙은 일약 1960년대 한국 가요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라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죠.
현미도 <밤안개>로 일반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기에 이르고요.
이 밖에 최희준의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박형준의 <첫사랑 언덕>,
위키 리의 <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 등등의 노래들이 60년대를 수 놓았습니다.
세번째로는, '세시봉'이라는 음악 다방을 중심으로 일군의 젊은 가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등 70년대의 한국 가요계를 주름 잡은
'포크' 계열의 통기타 가수들이 자라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죠.
이 내용은 몇년 전 개봉한 영화 「세시봉」에 잘 나타나 있고
이 곳 '노래들' 카테고리에서도 두어 번 다룬 바 있습니다.
그리고 종로의 '청개구리'라는 음악 모임도 빼놓을 수
없고요.
여기에서 김민기와 양희은이 활약합니다.
이 두 사람은 이후 한국 가요계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긴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고요.
이 밖에도 신중현, 히식스, 키보이스 등등의 싱어와 그룹들이
1960년대를 밝혔죠.
그러나 당시의 이런 흐름과는 동떨어진 위치에, 한팀의 '듀엣'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뜨와에 무아'인데요,
이필원과 박인희 - 그 두사람으로 구성된 이 팀은 당시 한국
가요의 분위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다음은 원로 음악 평론가 이백천의 회고입니다.
"충무로 미도파 살롱에서 박인희와 노래하는 이필원을 본 건 1968년 어느날이었다.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Rrothers)의 <Let it be me>를 불렀는데 좋은 화음이었다.
수줍음과 곧장 뻗어나오는 청순한 소리의 결이 맑고
고왔다."
<님이 오는 소리>, <약속>, <그리운 사람끼리> 등 뜨와에 무아가 부른 노래들에는
'감정의 절제'라고 말해도 부족할만한 차분함이 들어 있죠.
그것은 '서늘함'이기도 하고 어떤 '격조'이기도 합니다.
당시 여타의 가요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어떤 '지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게
뜨와에 무아의 노래들인데요,
여기서, "뜨와에 무아=이필원과 박인희"가 부르는 <약속>을 듣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약속
- 이필원 작곡/작사 뜨와에 무아 노래
약속 약속
그 언젠가 만나자던 너와 나의 약속
?
약속 약속
너와 나의 약속
잊지 말고 살자 하던 우리들의 약속
?
약속 약속
너와 나의 약속
하늘처럼 푸르르게 살자 하던 약속
?
약속 약속
너와 나의 약속
모든 슬픔 잊자 하던 우리들의
약속
아주 단순한 구성의 곡인데, 듣다보면 가슴 저 밑바닥에 있는 감정에
미세한 진동이 생기는 걸 느끼게 됩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아주 어렸을 때 이 노래를 처음 듣게 된 이후부터 이 질문은 수십년 동안 제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멜로디 때문일까? 아니면 두사람의 화음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이 노래가 주는 그 느낌의 정체를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하지?"
파스텔톤의 그림처럼 명확하지 않고 흐리고 뿌옇지만 마음 한자락을 사로잡는 감정이 담겨 있긴한데
도통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 그 무엇 -
뜨와에 무아의 노래를 듣다보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쓴 전혜린 -
1965년,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죽음을 맞이한 여류 작가 -
가난하고 척박한 시대와 불화한, 예민한 감성의 지식인 여성 -
중학생 때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으면서 접한 그 '서늘함'의 정서는
뜨와에 무아의 노래에 담긴 것과 대단히 비슷한 거였죠
이필원의 송 라이팅(Song Writing)이 주는 고독한 느낌과 박인희 특유의 깔끔함이 결합된 노래에는
차분하고 조용한 '격조'가 서려 있는데,
그것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면 깊은 곳을 흐르면서도 뜨거운 무엇을 내포하고 있다고 느껴졌고
전혜린의 불꽃같은 생(生)의 이면에 자리 했던 '번잡함에의 거부'와
맞닿은 거로 다가왔습니다.
'그 언젠가 만나자던 약속' -
평범한 단어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이 노래에 담긴 '약속'은
세상 그 어느 약속 보다 강력한 '이행에의 의지'와 그것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습니다.
최종적인 '이행의 완성 여부'와는 상관 없이 그 '약속'을 바라보는 노래 속 화자의 간절함은
조용하고 차분한 톤과는 달리 대단히 크게 다가오는 거죠.
그 점이 '뜨와에 무아'를 당시의 가요계와는 동떨어진 '외딴 섬'이라고 제가 표현하는 근거입니다.
1960년대 - 아니, 그 이후에도
이렇게 서늘할 정도의 차분함과 감정의 절제를 담은 노래는 국내
가요들 중에 많지 않죠.
그런 면에서 뜨와에 무아의 <약속>은 한국 가요사에서 대단히 독특한 영역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가요가 지니는 일말의 과장과 번잡함에 한치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으로도 비춰저셔
저는 이 노래 <약속>이 지닌 단아함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데요,
아지랑이가 오르고 벚꽃이 만발하는 생동의 계절에
역설적으로 차분한 정서를 담은 노래 한 곡을 듣는 것도 제법 새로운
일이지, 싶습니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요소들로 가득한 4월 중순에
뜨와에 무아의 노래 <약속>이 독자님께 순간이나마
차분함을 선사했기를 희망해 봅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의 일교자가 큰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요.
다음에 다른 노래로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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