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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획] 70여년 전 잃어버린 제주 마을, 50곳 더 있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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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획] 70여년 전 잃어버린 제주 마을, 50곳 더 있었다

Ador38 2020. 4. 2. 10:23
한겨레 [4·3 기획] 70여년 전 잃어버린 제주 마을, 50곳 더 있었다

허호준 입력 2020.04.02. 09:17 수정 2020.04.02. 09:27

[제주 4·3 72주기] 잠들지 않는 동백 2003년 정부 보고서엔 84곳

4·3평화재단 추가 조사 후 134곳 대부분 군경 토벌대 손에 사라져
주민 30명 이상 희생된 마을은 도내 읍·면 165개 리 중 129곳
희생자도 1만4442명으로 늘어 재단 "추가로 드러난 실태... 진상에 한발 더 접근한 데 의의"
10여 가구의 주민들이 살았던 제주시 구좌읍 다랑쉬마을은 1948년 11월18일 토벌대의 방화로 사라졌다. 지난 2001년 제주도가 세운 ‘잃어버린 마을’표석도 도로 확장 공사로 조만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표석 옆의 오래된 팽나무는 몇년 전 말라죽고 기둥만 남았다.
         
제주4·3이 72주년을 맞았다. 어김없이 동백은 피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4·3 수형인들에 대한 군사재판 무효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4·3 특별법은 20대 국회에서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다시 선거의 계절, 누가 4·3의 진상을 밝히고 유족의 통한을 풀어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

72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은 진상규명과 실종자, 배·보상 문제 등을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신제주와 구제주를 잇는 주요 도로인 제주시 연북로의 오라동 경계에는 새로 지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제주4·3 당시 연북로를 사이에 두고 ‘어우눌’과 ‘해산이’라는 자연마을이 있었지만, 토벌대 방화로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잃어버린 마을’이라는 표석만이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제주에선 4·3 당시 마을이 불타 없어지거나 소개된 주민들이 나중에 복귀하지 않아 폐허가 된 마을을 ‘잃어버린 마을’이라고 부른다. 최근 이런 ‘잃어버린 마을’이 모두 134곳(66개 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2003년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나온 84곳보다 50곳이나 늘어난 수치로 제주4·3평화재단이 2012년 5월부터 마을별 피해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재단이 최근 발간한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 1>은 4·3 당시 제주도 내 12개 읍·면 165개 리에 대한 마을별, 희생자 유형별, 집단학살사건 등 피해 실태가 종합적으로 담겼다. 희생자 수도 2003년 1만4028명에서 추가 희생자 및 유족 신고를 받아 2019년에는 1만4442명으로 늘어났다.
         
다랑쉬마을이 있던 곳으로 가는 길. 조릿대만이 당시 집들이 있었던 곳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해마다 4·3 추념식에 참석하는 양아무개(75·제주시 아라동)씨는 “공원에 올 때마다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다가 4·3 때 희생됐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본적지가 달라 위패봉안실에 있는 부모님 위패가 서로 떨어져 있어 함께 모시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4·3 당시 결혼이나 이주, 혼인 미신고 등의 이유로 희생자가 거주했던 마을과 본적지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도 희생자를 본적지 기준으로 분류해 온 탓이다. 이에 따라 재단이 펴낸 추가조사보고서에서는 4·3 당시 도내 마을의 전체적인 피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희생자 거주지에 따라 마을별 피해 실태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100명 이상 희생된 마을(리)은 도내 전체 165곳 가운데 49곳으로 나타났다. 특히 30명 이상 희생자가 발생한 마을로 확대하면 도내 전체 마을의 78%에 이르는 129곳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보고서 작성을 담당한 양정심 재단 조사연구실장은 “10곳 마을 중 8곳 마을 가까이에서 30명 이상이 죽었다는 이야기”라며 “제주도민 모두가 피해자라는 증거”라고 했다.

당시 행정구역 기준으로 제주읍 노형리(538명)의 희생자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북촌리(446명) 가시리(421명) 화북리(361명) 이호리(355명) 도두리(304명) 등 차례였다. 읍·면별 희생자는 제주읍(4119명)이 가장 많았고, 조천면(1940명) 애월면(1555명) 한림면(1037명) 등의 차례로 조사됐다.
         
제주시 연북로 주변 오라동에 설치된 ‘잃어버린 마을 - 어우눌’ 표지석이다. 25가구가 살던 어우눌은 1949년 1월 토벌대에 의해 소개됐다.
         
이와 함께 ‘잃어버린 마을’ 134곳 가운데 무장대의 방화로 사라진 3곳을 제외한 나머지 131곳은 모두 토벌대의 방화나 소개로 폐촌됐다. 주된 피해는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이들 마을 가구 수는 보통 5~130여 가구였다.

양 실장은 “그동안 본적지별로 희생자 실태를 분류하는 바람에 4·3 당시 피해 실태가 잘 드러나지 않은 면이 있었다. 이번 추가 진상조사를 통해 제주도 전체 마을별 피해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4·3 진상에 한발짝 더 접근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연속보도] n번방 성착취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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