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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에서 살아온 101년 ‘할머니의 삶이 시가 되었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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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에서 살아온 101년 ‘할머니의 삶이 시가 되었네’

Ador38 2021. 6. 25. 12:47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2021.06.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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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오지 마을 최고령과 최연소 시인이 된 101세 백성례 할머니와 5세 박채언양이 25일 마을어귀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완주군 제공

 

전북 완주군 동상면 입석마을에는 101세 할머니 시인이 있다. 국내 최고령 시인 백성례 할머니다. 번듯하게 시문학계에 등단한 적은 없다.

 

하지만 국내 8대 오지중 한 곳인 동상면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가슴안에 켜켜히 쌓여 있던 한(恨)을 5편의 시로 풀어냈다. 지난 2월 비매품으로 출간된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는 국내 최초의 ‘주민채록 시집’이었다. 이 시집에 실린 백 할머니의 ‘100세 할머니의 소원’이란 시를 들여다 보자.

 

‘암것도 바랄 게 없고 / 그냥 그냥 웃고 살지 / 아들 딸 걱정할까 / 아플 것도 걱정이여 / 아, / 팔십 먹은 할매들도 / 치맨가 먼저 잘 걸린댜 / 나도 안 아프고 / 영감 따라 후딱 가는 게 / 소원이여’

 

시집에는 동상면 4개리(里) 17개마을 100여명의 남녀노소 주민들 시가 실려 있다.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지만 다섯살배기 박채언양의 ‘우리집 강아지 ’란 시도 들어 있다.

 

이 시집은 박병윤 동상면장이 7개월간 발품을 판 끝에 탄생했다. 면장으로 부임한 그에게 “주민들 얘기를 써 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시인인 박 면장은 무릎을 쳤다. 주말과 휴일에 시간을 내 가가호호를 방문했다.

 

어르신들이 대다수 글을 몰라 이야기를 들으며 받아 적어 시로 옮겼다. 구술 채록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개가 달려들어 물리기도 했고, 체력이 소진돼 링거를 맞으면서 133편의 시는 빛을 봤다.

 

박 면장은 “코로나 시국이어서 외지인들 방문하는 것을 자식들이 꺼리는데다 용역 예산을 세우기도 버거워 면장이 직접 뛰어 다닐 수 밖에 없었다”면서 “채록 시집을 만들고 보니 오지 주민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담겨 어느 시집보다 값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집이 발간된 이후 어르신들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방에서 시무룩하게 앉아 계셨던 종전과 달리 집 앞 텃밭도 가꾸고 동네도 한 바퀴씩 돌아 다닌다.

© 경향신문 동상면 17개 마을 주민들의 채록 시집. 완주군 제공

 

최고령 시인 백 할머니도 25일 평생 소원 하나를 풀었다. 오지에서 살아온 탓에 군청 한번 가 보는게 소원이었는데 이날 완주군청을 방문한 것이다.자신이 쓴‘100세 할머니의 기도’란 시를 액자에 담아 가져갔다. 할머니는 이 액자를 박성일 완주군수에게 선물했다.

 

깜짝 놀란 박 군수는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시면 역사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며 “한 세기의 삶을 살아오신 백 할머니께서 방문해 주신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꼼꼼히 챙겨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백 할머니는 “군청 구경도 해보고 시도 맹글어 봤응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며 “일제와 6.25 전쟁, 수몰지역에서 살아온 내 인생이 늘 응어리로 남아 있었는데 다 털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행한 며느리 원영수씨는 “어머니의 살아오신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시가 되고 책이 되니 온 동네에 웃음꽃이 피었다”면서 “시집이 나오기 전에는 주로 방에만 계셨는데, 지금은 안색도 좋아지고 활동도 많이 하신다”고 전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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