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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현미 - 타향살이 (1934) & 주현미 TV에서 업로드한 동영상 25 선 본문

♬ IN 음악

?? ♪♪♪ ? 주현미 - 타향살이 (1934) & 주현미 TV에서 업로드한 동영상 25 선

Ador38 2021. 10. 13. 21:40

조회수 147,588회

최초 공개: 2019.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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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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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1930년대는 우리나라에 음반 회사가 생기고 터를 닦은 시기입니다.
오케레코드, 빅터, 콜롬비아, 포리돌 등의 회사들이 자리를 잡으며 음반을 적극적으로 생산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대중들에게 많은 음악이 공개되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히트곡들도 생겨났는데요. 명실공히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연 
노래가 바로 '타향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32년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주최한 '전선 9대 도시 가요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데뷔한 고복수 선생님은 
계약금 1000원, 월급 80원에 오케레코드와 전속계약을 하게 됩니다. 22세 때인 1934년 '타향살이'를 불러 발매 1개월 만에 
5만 장이 넘는 쾌거를 이룹니다. 이 곡은 최초에는 '타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가, 이후에 '타향사리'(타향살이)라는 
제목으로 바뀌게 됩니다.
고향을 떠난 슬픔, 나라를 잃은 탄식, 일제에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의 한, 이 망향가는 국내뿐만 아니라 간도와 만주, 일본 등의 
한인사회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퍼져나갔습니다. 당시 많은 가수 선생님들이 일제의 감시 속에서 강제적으로 군국가요를 
불러야 했던 것이 현실이지만, 고복수 선생님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만주 등지로 공연을 떠났습니다. 공연 때 제공되는 
일본 차를 타는 것이 싫어 공연장까지 걸어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가요계의 신사로 불리던 선생님은 일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급기야 활동을 접는 선택까지 하시게 됩니다.
많은 후배 가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생님은 무대에서는 엄격하면서도 품성이 따뜻하고 인자한 인물로 회고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타계하신 작사가 반야월 선생님께서는 고복수 선생님을 이렇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참고로 반야월 선생님은 
'꽃마차', '불효자는 웁니다'등의 가수 진방남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셨답니다.
"데뷔 전 가수가 되고 싶어서 당시 최고 가수였던 고복수 선생께 무작정 편지를 썼어요. 가수가 되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달라고 
물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고복수 선생님이 그 바쁜 와중에도 자상하게 답장을 보내주셨어요. 가수가 되는 길은 매우 험하고 
서울에 와서 활동을 해야 하며, 하숙비가 얼마가 드는지까지도 상세하게 적어보내셨던 거지요."
고복수 선생님을 기억하는 원로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자상한 모습의 '신사'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사나이 이름 없는 풀꽃도
우리들의 눈동자도 빛을 잃고 하늘에서
지저귀던 새들도 울음을 그쳤다
펄렁이던 희망의 등잔불도 꺼지고
하염없는 밤 쓰라린 밤 너무나 가혹한 밤만이 밀려왔다
남산 외송대 가는 길에 가스등 희미하고
진고개 계다장 소리 높을 때 박꽃이 하얗게
이우는 초가지붕 아래 들깨 기름으로 피운 등잔불은
우리들의 가슴속인 양 어두웠고
찢어진 들창문으로 새어나는 건 한숨 소리뿐이었다
못 살아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간도 용정에서 하루빈에서 상해관에서
일본 동경의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울고 있었다
고향이 그리워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부평 같은 내 신세가 너무나도 서러워서"
'타향살이'의 원곡은 노래보다도 앞부분에 삽입된 오프닝 대사가 더 긴 노래였습니다.
고복수 선생님의 꾸임 없는 솔직 담백한 목소리와 차분한 음색이 우리 민족의 아픔을 더욱 깊이 표현하는 듯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 국민의 70%는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겠지요.
고복수 선생님이 태어나신지 이미 10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1911년 출생, 1972년에 타계하신 고복수 선생님은 아이러니하게도 2월 10일, 출생일과 돌아가신 날짜가 같습니다.
이 추운 겨울,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마음속에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는 이 '타향살이'를 부르며 근대사 속 우리 민족의 아픔, 
가수로서 모진 시대를 살아야 했던 고복수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니다.

**   주현미 TV에서 업로드한 동영상 25 tjs

주현미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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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지금 재생 중

주현미 - 타향살이 (1934)

주현미 TV

 

202

3:02지금 재생 중

주현미 - 오동동 타령 (1955)

주현미 TV

 

203

3:13지금 재생 중

주현미 - 그리운 얼굴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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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4:05지금 재생 중

주현미 - 신사동 그 사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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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4:26지금 재생 중

주현미 - 번지 없는 주막 (1940)

주현미 TV

 

206

4:58지금 재생 중

주현미 - 고향설 (1942)

주현미 TV

 

207

2:32지금 재생 중

주현미, 임준혁, 임수연 - Winter Wonderland

주현미 TV

 

208

4:24지금 재생 중

주현미 - 나그네 설움 (1940)

주현미 TV

 

209

3:22지금 재생 중

주현미 - 울산 큰 애기 (1965)

주현미 TV

 

210

4:59지금 재생 중

주현미 - 비 내리는 고모령 (1948)

주현미 TV

 

211

5:10지금 재생 중

주현미 - 가거라 삼팔선 (1948)

주현미 TV

 

212

3:22지금 재생 중

주현미 - 짝사랑 (고복수, 1936)

주현미 TV

 

213

3:06지금 재생 중

주현미 - 알뜰한 당신 (1936)

주현미 TV

 

214

4:03지금 재생 중

주현미 - 고향무정 (1966)

주현미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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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지금 재생 중

주현미 - 눈이 내리는데 (1964)

주현미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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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지금 재생 중

주현미 - 애수의 소야곡 (1937)

주현미 TV

 

217

3:29지금 재생 중

주현미 - 유정천리 (1959)

주현미 TV

 

218

4:05지금 재생 중

주현미 - 카츄샤의 노래 (1960)

주현미 TV

 

219

3:49지금 재생 중

주현미 - 목포의 눈물 (1935)

주현미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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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지금 재생 중

주현미 - 굳세어라 금순아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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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3:34지금 재생 중

주현미 - 모녀기타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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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지금 재생 중

주현미 - 울고 넘는 박달재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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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지금 재생 중

주현미 - 눈물 젖은 두만강 (1938)

주현미 TV

 

224

3:36지금 재생 중

주현미 - 홍도야 우지마라 (1939)

주현미 TV

 

225

1:40지금 재생 중

주현미TV 인사말

주현미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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