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법정에 출석한 한 피고인이 재판장으로부터 들은 막말이다. 다수의 피고인이 있는 사건에서 한 명씩 피고인 인정신문을 하던 중 피고인이 말꼬리를 길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피고인이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눈물의 최후 진술을 마치자 "피고인 정말 찌질하네요"라고 한 재판장도 있었다. 그는 재판을 종결한 뒤 판결 선고기일을 바로 고지했다.
13일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소속 회원 1만9069명이 진행한 올해의 소송사건 담당판사에 대한 법관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은 '문제사례'를 소개했다. 이들 변호사들은 일부 판사들의 고압적 자세와 조정 강권, 불공평한 재판 진행 문제 등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예의 없는 언행으로 망신이나 모욕을 준 사례도 확인됐다. A 재판장은 증인신문 시간을 증인 1명당 10~15분만 주고 더 진행하면 신문을 중단시키고 10~15분 가량 변호인의 행태를 지적했다. 특히 연차가 낮은 변호사들에게 무안을 주면서 30분 가량 혼을 내기도 했다. 다른 변호사는 피고인이 참석한 상태에서 변호인선임신고서에 오타가 있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쫓겨났다.
불공평한 재판 진행도 지적됐다. B 재판장은 재판 중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피고 소송대리인을 깍듯하게 대우하고 "1심에서 피고가 이기셨잖아요. 한 번만 더 하세요"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반면 피고 주장의 모순점에 대한 원고의 구석명신청, 증거신청은 모두 기각하고 변론종결을 강요했다.
반면 충분한 변론 기회를 주고 적절한 소송지휘권을 행사하는 등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로 법정에 나선 재판관들도 있었다. 법을 전혀 모른 채 소송에 나선 양 당사자 모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주고 각 청구취지의 문제점, 양측이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까지 제안한 재판관, 어려운 법률용어가 아닌 일반인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등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법정 분위기를 만든 재판관들도 다수 확인돼 우수 법관으로 선정됐다.
여기에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1심 재판부 일원이던 권성수 부장판사와 2심 재판장을 맡은 엄상필 부장판사 등이 포함됐다. 옵티머스 사기 사건의 1심 재판을 담당한 허선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수 법관으로 선정됐다.
이밖에 김종우·이재찬·황의동 서울고법 판사, 김래니·김신·방혜미·신재환·심재남·이원석·정성완·최성배·허일승·홍창우 서울중앙지법 판사, 권덕진·신상렬 서울동부지법 판사, 장성훈 서울남부지법 판사, 최성배 서울서부지법 판사, 홍은숙 대전가정법원 판사, 박혜정 인천지법 부천지원 판사, 오승준 인천지법 판사, 윤미림·조아라 서울가정법원 판사, 지창구 수원지법 판사가 우수 법관에 선정됐다.
한편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하위법관으로 선정된 5명의 법관에 대해 당사자와 소속 법원장에게 하위법관 선정 사실을 통지하기로 했다. 이어 사안을 엄중히 인식해 추후 하위법관으로 선정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해 줄 것을 촉구할 방침이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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