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태풍 진로 정확도, 처음으로 美·日 제쳤어요” 본문

🌈 기후.환경재해

“태풍 진로 정확도, 처음으로 美·日 제쳤어요”

Ador38 2022. 6. 16. 06:10

박상현 기자 

2022.06.16. 03:18
 
 

 

“태풍 예보관은 태풍을 전쟁처럼 다룹니다. 평시엔 감시·경계 근무 하다가 한반도 영향권 안으로 들어오면 전시(戰時) 상황에 돌입, 태풍이 사라질 때까지 24시간 위치와 강도를 추적합니다. 국민이 최대한 다치지 않는 걸 목표로요.”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 ‘루핏’ ‘오마이스’ ‘찬투’ 등 태풍이 세 번 상륙했거나 직접 영향을 미쳤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정확한 예보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가별 태풍 예측 수준을 나타내는 ‘72시간 태풍 진로 예보 오차’에서 우리나라는 재작년 185km를 기록, 미국(240km)·일본(225km)을 처음으로 제친 사실이 최근 발표됐다. 2010년만 해도 우리나라의 태풍 거리 오차는 349km에 달했지만, 10년 만에 우리보다 인공위성 기술이 더 뛰어난 선진국을 제친 것이다.

이런 성과는 우리나라에 4명뿐인 기상청 태풍 예보관이 만들어냈다. 김성수(49), 김영남(47), 김동진(46), 최의수(44) 예보관이다.

최근 제주 서귀포시 국가태풍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예보관들은 매년 여름마다 찾아오는 태풍과 1년 내내 전쟁 벌일 준비를 한다”며 “이상 기후로 태풍 경로 예측은 더 어려워졌지만 올해도 인명 피해가 없도록 정확도를 높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태풍 예보관들이 근무하는 국가태풍센터는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한 둔덕에 서있다. 일종의 전방 초소(哨所)다. 태풍 영향권에 가장 먼저 드는 제주 남단에서 보초 서듯 태풍을 기다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의 근무 방식은 전방 군대와 흡사하다.

평소엔 4교대로 근무하며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태풍의 발생·발달을 ‘감시’하다가, 한반도의 간접 영향권인 ‘북위 25도, 동경 135도 이내’로 태풍이 들어오면 ‘경계’로 전환해 예보관 2명씩 3교대 근무에 들어간다.

‘북위 28도, 동경 132도’까지 들어오면 ‘비상 1급’ 체제에 들어가 사실상 전쟁이 시작된다. 24시간 태풍의 위치·강도를 추적하고, 한반도가 태풍 영향권에서 벗어날 때까지 재해기상대응팀, 국가기상위성센터, 기상레이더센터, 수치모델링센터 등과 태풍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김영남 예보관은 “태풍이 근접해오면 태풍 정보는 3시간, 태풍 위치는 1시간마다 기상 속보로 내보내면서 그야말로 ‘전쟁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했다.

태풍은 단일 기상 현상 중 피해 규모가 가장 큰 재해다. 특히 인명 피해와 직결되는 만큼 예보관들도 아찔한 순간과 마주할 때가 많다. 김동진 예보관은 “태풍 한가운데 잠시 평화로운 상태를 일컫는 ‘태풍의 눈’이란 표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2017년 태풍 ‘나리’가 제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을 때 ‘태풍의 눈’이 서귀포시 표선면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강풍이 불다가 순간 고요해지니 어민들이 부서진 배를 고치러 방파제로 나왔어요. 성산 기상대 직원이 빠르게 발견해 대피시켰는데, 30분 후 엄청난 기세의 비바람이 다시 제주를 집어삼키며 일대 흔적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 예보관들이 가장 보람을 느낄 때도 “인명 피해가 없고, 재산 피해가 적게 나타났을 때”다. 최의수 예보관은 “작년에도 다른 나라보다 우리 예보가 더 잘 맞았다는 사실보다 인명 피해가 하나도 없었다는 결과를 들었을 때 더 뿌듯했다”며 웃었다.

태풍 예보관들은 겨울엔 ‘동계 훈련’을 하며 이듬해 태풍에 대비한다. 중국은 극궤도 위성 4기를 띄워 태풍의 구조·강도를 분석하는 데 활용 중이지만, 우리는 ‘천리안 위성’ 1기가 전부다.

부족한 정부 지원은 겨우내 태풍 예보관을 각종 태풍 관련 국제 워크숍에 참가시켜 수치 모델을 다듬고 정교화하는 식으로 메우고 있다. 여러 기상 앱(APP)이 출시되면서 부정확한 정보가 돌아다니는 건 예보관들에게 걱정거리다. 김성수 예보관은 “해외 기상 앱의 정보와 기상청 예보를 비교하며 혼란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나라 태풍은 우리 기상청이 분석한 정보가 가장 정확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태풍의 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처우는 좋지 않은 편이다. 센터가 대중교통도 다니지 않는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주변에 이렇다 할 식당도 없고, 직원들의 점심도 조리사 1명이 다 만든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엔 직원들이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벽지(僻地) 근무 수당’도 월 3만원이 전부. 하루 1000원꼴이다. 이렇다 보니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예보관들은 “국가태풍센터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태풍 업무는 전문성을 기른 예보관 한 명의 이탈이 국가 전체로 볼 때 큰 손실입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태풍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실력으로 더 ‘무장’하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