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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중국인은 왜 최치원을 기억하는가 / KBS 20120906 방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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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중국인은 왜 최치원을 기억하는가 / KBS 20120906 방송

Ador38 2022. 6. 24. 10:22

조회수 129,8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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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서에 1,100년 동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쌍녀분 전설. 그 속에 그가 있다!
중학교 교과서와 학자의 논문 속에 그리고 기념관과 비석 속에...
 
중국의 오늘 속에 살아 있는 최치원. 중국은 왜 신라학자 최치원을 기념하고 최치원의 그 무엇이 중국을 매료시키고 있을까?
 
- 현재의 기억: 오늘의 중국이 기억하는 최치원 양쯔강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만나는 도시 양조우. 이곳에 신라학자 최치원 기념관이 있다. 12세의 나이로 중국 유학을 떠나 약관의 나이에 중국 율수현의 관리에 올랐던 최치원.
 
양주의 중학교에서는 역사 시험문제에 최치원이 자주 등장하고, 이곳에 사는 화가 축리씨는 최치원만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최치원의 흔적! 무엇이 중국인들을 최치원에게 빠져들게 했을까?
 
- 최치원, ‘위민관’이자 ‘문장가’로서 이름을 얻다.
중국 역사서에는 1,100년 동안 대대로 전해져 오는 한 전설이 있다. 이른바 ‘쌍녀분’ 전설. 두 처녀와 청년 관리 최치원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쌍녀분에 얽힌 전설은 하룻밤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새롭게 해석되는 “쌍녀분”의 전설을 알아본다.
 
- 한, 중, 일 동아시아 한문학을 이끌다 875년 중국의 수도 장안까지 점령한 황소의 난.
이 때 최치원은 ‘위협’과 ‘회유’의 양면을 적절히 구사한 전략적인 글쓰기로 황소에게 항복을 권유하게 된다.
 
이 [격황소서]로 최치원은 불과 25세의 나이에 중국에서 문필대공으로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송나라의 [신당서], 일본 헤이안조시대의 [천재가구]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의 글을 모아놓은 책에서도 최치원의 글이 상당수 발견되어 당시 동아시아에서의 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 ‘개혁가’이자 창조적 ‘문화수용자’ 최치원 중국 유학에서 성공하고 돌아온 최치원.
그러나 당시 신라는 최치원 스스로의 표현대로 ‘악 중 악’이었다.
 
신라의 개혁을 위해 최치원은 사회개혁안인 ‘시무10조’를 바치고, 골품제의 개혁과 과거제 실시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해인사에 은둔하여 저술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최치원이 해인사에서 저술한 [법장화상전]은 중국 화엄종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는 한편, 외국인이 집필한 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송나라 대장경에 실리게 된다.
 
그는 단순한 문화 수용자가 아니라 재창조자였으며,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선구적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중국이 최치원을 기억하는 이유이다. 신역사스페셜 113회 – 한중수교 20년 기획, 중국인은 왜 최치원을 기억하는가 (2012.9.6.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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