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명곡모음 앨범 전곡듣기 Feel the Blues Vol.Ⅵ-4
[참 조] ▒ ▒ ▒ Neal Schon - Biography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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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나 밴드를 떠나 저니를 결성할 때 난 로큰롤의 마하비슈누가 되고 싶었다. 그후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한 후에 팀 플레이에 치중하는 쪽으로 흐르게 되었다.”
뜨거운 필을 물밀듯이 쏟아내는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 닐 숀은 1955년 2월 27일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10살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해, 웨스 몽고메리나, 에릭 클랩튼, 지미 헨드릭스, B.B. 킹, 하비 만델, 마이크 블룸필드 등의 곡들을 들으며 대 기타리스트들을 꿈꾸었다.
닐 숀은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여러 로컬밴드에서 경력을 쌓았고, B.B. 킹, 엘빈 비숍 등과도 세션을 벌여 어린 나이에 록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에릭 클랩튼으로부터 Derek & the Dominos에 참가해 달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그룹 산타나에 가입하였다. 여기서 그는 카를로스 산타나와 함께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으나 앨범 [Caravanserai]를 끝으로 그룹을 탈퇴했다. 그리곤 그룹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 출신의 드러머 그렉 에리코(Greg Errico), 베이시스트 래리 그레함(Larry Graham) 등과 함께 세션활동을 걸쳐 산타나 시절의 동료 그렉 롤리와 73년 저니(Journey)를 결성했다. 그는 저니를 이끌면서 건반주자인 얀 해머와 [Untold Passion](81)과 [Here To Stay](83)를 발표, 록적인 강렬함과 재즈퓨전이 함께 하는 기타세계를 들려주었다. 또한 새미 헤이거 등과 함께 임시 프로젝트 HSAS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외에 닐 숀은 89년 자신의 첫 솔로앨범 [Late Nite]을 완성해 앨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정적이며 내면적으로 기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90년대로 와 닐 숀은 Missing You’를 부른 John Waite와 배드 잉글리시(Bad English)에서 활약하다가 하드라인(Hardline)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계속되는 인기를 구가하였지만 1984년 스티브 페리의 솔로활동 등으로 그룹분위기가 와해되며 [Raised on Radio]에서는 오리지널 라인업이 깨지며 97년 공식해산에 이른다. 이후 닐 숀은 1996년 저니를 재결합해 싱글 ‘When You Love A Woman’을 히트시켰으며 2001년에는 스티브 페리가 빠진채로 앨범 [Arrival]을 발표했다.
이처럼 음악적인 활동 이외에도 그는 ‘Schon’기타를 제작해 화제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닐 숀의 연주는 한마디로 말해 ‘찐하고’ 강렬한 프레이즈를 들려준다. 물론 딜레이를 깊이 걸고 거기에 디스토션을 풀 업시킨 화려한 이펙팅의 소산이라지만 단순히 전자공학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폭발할 듯한 뜨거운 필과 즉흥적인 순발력으로 그것들을 커버해 연주가 더욱 박진감이 있다.
그의 기교는 대부분이 런 주법이나 해머링, 풀링, 벤딩 등 70년대식의 핑거 테크닉이 주류를 이루지만 엄청난 힘의 기타를 펼치기 때문에 고감도의 뜨거운 에너지를 분출해준다. 좀더 강한 필의 기타를 쳐보고 싶은 사람에게 있어 게리 무어, 존 사이크스, 그리고 닐 숀은 하나의 이상형인 것이다.
사 용 장 비 ◇Schecter, Schon, Les Paul, Roland Synthesizer(81) - Strat Model(81) ◇100 - Hi Watt Head, Bolder(Swedish) Amp ◇Roland Jazz Chorus, Lexicon 224 그외
[출처: 음악창고, 글/조성진]
[참 조] ▒ ▒ ▒ Neal Schon - Discography ▒ ▒ ▒ |
Piranha Blues [19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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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hiskey, Women & Blues 3:34 2 Gotta Get Back to You 6:32 3 Lonesome Road 3:58 4 Hole in My Pocket 5:21 5 Walkin' Out the Door 5:22 6 I'm in Love 5:07 7 Love Trance 6:53 8 Slow Down 5:06 9 Play the Blues 2:55 10 A Girl Like You 5:07 11 Hey, Hey, Babe 3:54 12 Blues for Miles 4:55 |
[참 조] ▒ ▒ ▒ Ten Years After - Biography ▒ ▒ ▒ |
영국 노팅험에서 결성된 4인조 블루스 록 그룹 텐 이어즈 에프터(Ten Years After, 이하 TYA)는, 팀의 리더이자 간판 스타인 알빈 리(Alvin Lee)의 환상적인 기타 연주로 크게 주목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의 그늘에 가려진 나머지 멤버들은 소위 알빈 리 쇼의 백킹 뮤지션에 불과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던 밴드이다.
65년 제이버즈(Jaybirds)라는 이름으로 알빈 리(기타·보컬), 칙 처칠(Chick Churchill, 키보드), 릭 리(Ric Lee, 드럼), 리오 라이언즈(Leo Lyons, 베이스)로 결성된 이들은 당시 붐처럼 일어났던 언더그라운드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의 전례를 쫓아 너무 평범한 그들의 이름 대신 텐 이어즈 에프터로 밴드 이름을 바꾼다. 블루스와 로큰롤을 결합시킨 음악으로 당시 메인스트림 블루스 주자였던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 치킨 샤크(Chicken Shack), 사보이 브라운(Savoy Brown)과 구별되었던 이들의 첫 앨범은 별 반응을 얻지 못했고, 이들은 다음 레코딩 작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클럽가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지냈다.
68년 라이브 실황앨범인 [Undead]에서 알빈의 빠른 기타 주법에 힘입어 'I'm Going Home'을 히트시킨 이들은 69년 [Stonedhenge]를 UK 차트 10위에 진입시키고 전미 투어를 실시한다. 당시 우드스탁 페스티발에 참가하여 'I'm Going Home'을 9분 짜리로 편곡하여 연주해 블루스적인 이미지에서 탈피, 록 스타로서 광적인 팬층을 형성하게 된 TYA는 이후에 발표하는 앨범들의 차트 등극을 보장받게 된다.
69년 발표한 [Ssssh]에서는 집약적인 사운드와 스타일이 표출된 'Stoned Woman'으로 UK 20위에 올랐고, [Cricklewood Green]의 히트 싱글 'Love Like a Man'으로 차트 14위에 오른 이들은 콜롬비아사와 계약을 맺고 주류 팝쪽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71년 골드 셀링에 빛나는 [A Space in Time]을 발표하고 'I'd Love to Change the World'를 성공시키며 기타가 기조를 이룬 사운드에 일렉트로닉 음악을 사용한 TYA는 72년 [Rock 'N'Roll To The World] 이후 잠깐의 휴식기를 갖는다. 이 시기에 알빈은 가스펠 가수 마일론 르 페브레(Mylon Le Fevre)와 함께 [On the Road to Freedom]을 발표하고 칙도 [You and Me]로 솔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74년 다시 밴드의 이름 하에 [Positive Vibrations]를 발표하지만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였고 결국 이들은 해체를 선언한다.
78년 알빈은 트리오로 TYA를 다시 결성했으나 별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15년 만인 89년 원년 멤버들이 다시 재결합해 [About Time]을 발표하고 유럽 지역에서 순회공연을 가지기도 했지만 고정팬들만이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9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Zoom](92), [I Hear You Rockin'](94), [Pure Blues] 등을 발표하며 다른 어떤 영국 밴드보다도 많은 미국 순회공연을 통해 라이브 밴드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출처: 음악창고, 글 / 조성진]
[참 조] ▒ ▒ ▒ Ten Years After - Discography ▒ ▒ ▒ |
Ten Years After [19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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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 Want to Know 2:12 2 I Can't Keep from Crying, Sometimes 5:34 3 Adventures of a Young Organ 2:37 4 Spoonful 6:20 5 Losing the Dogs 3:09 6 Feel It for Me 2:45 7 Love Until I Die 2:10 8 Don't Want You Woman 2:41 9 Help Me 10:16 |
스티비 레이 본은 지미 헨드릭스의 팔로우적인 존재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도 역시 짐과 마찬가지로 블루스의 전통을 록의 시대에 재현하는 것을 이어온 위대한 기타리스트의 한 명이다.
1954년 텍사스의 달라스 태생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의 형인 Jimmie Vaughan(역시 이름난 블루스 기타리스트 이다)의 영향으로 중학교 때부터 그의 형과 더불어 동네의 블루스 클럽에서 연주 기회를 가질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나이 17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전문적인 음악인의 길로 들어서면서 70년대 중반 텍사스의 오스틴 등지에서 'Cobras' 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하였고, 여러 음악인들과 함께 해체와 재결성을 거듭하여 클럽활동을 하던 중 1982년 오티스 러쉬의 곡에서 이름을 붙인 더블 트러블이라는 그룹을 조직한 그는 몬트레이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된다. 이때 그는 이미 오스틴 지역의 최고 기타 플레이어로 인정 받고 있던 유능한 음악인이 되어있었다.
이 공연에서 당시의 인기 가수이던 David Bowie의 눈에 띄게 되고 이러한 인연으로 David Bowie가 82년 발표한 [Let's Dance] 앨범에 객원 기타리스트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음악시장과 인연을 맺게 되어 그 만남을 계기로 일렉트로 팝 전성시대에 새로운 타입의 블루스맨으로서 데뷔하여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듬해인 1983년 Stevie는 그의 밴드인 Double Trouble과 함께 데뷰 앨범인 [Texas Flood] 를 발표하게 되고 이 앨범은 큰 히트를 하게 되며 블루스 앨범으로는 드물게 그 해 앨범차트 38위에 오르는 업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는 원래 David Bowie의 [Let's Dance] 앨범 프로모션을 위한 순회공연에 객원 기타리스트로 참여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이 앨범의 예상치(?) 못했던 성공으로 자신의 밴드들 위한 단독 전국 순회공연을 나서게 된다. . .
이 후 성공적인 순회공연을 마치고 1984년 5월 두 번째 앨범인 [Couldn't Stand the Weather] 를 발표하게 되고 이 앨범은 차트의 31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두며 그는 이제 메이져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히게 된다. 1985년에 발표된 그의 세 번째 앨범인 [Soul to Soul] 역시 전과는 달리 정식으로 키보디스트를 영입하여 보다 안정적인 사운드 뿐만 아니라 폭 넓은 음색의 구성을 통해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게 된다.
숨돌릴 틈 없이 10여년 가까이 왕성한 음악활동(계속되는 공연으로 1989년도 한해에는 기타의 플렛을 4번이나 새 걸로 바꾸었다는 애기도 전해진다)을 해온 이 천재적인 기타리스트를 하늘이 아까워 해서일까? 그의 음악 생활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연 중 하나로 평가 받은 거장들과의 합동공연을 마치고 시카고로 가던 중 그의 연주 곡인 "Little Wing" 처럼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1990년 8월 26일 Eric Clapton, Buddy Guy등 쟁쟁한 블루스 기타 리스트들과 위스콘신에서 합동 공연을 마치고 시카고로 가던 중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인해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시카고 블루스, 델타 블루스 와 더불어 블루스 음악계의 커다란 축으로 부각되는 텍사스 특유의 깔끔한 스타일의 블루스를 연주하는 기술과 천재성을 겸비한 대표적인 블루스 기타 리스트라 할 수 있다.
백인으로서 흑인의 음악인 블루스를 자신의 기타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레이 본은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지미 헨드릭스처럼 너무 빨리 세상을 뜨고 말았다. 요즘 스티비 레이 본의 후계자로는 케니 웨인 쉐퍼드 같은 인물이 지목되고 있다.
1990년 여름에 막을 내린 그의 짧은 생애 최후의 스테이지는 에릭 클랩튼의 게스트로서 였다고한다. '입을 딱 벌리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클랩튼은 그 스테이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스포츠 팬이 아니더라고 텍사스 하면 연상되어지는 것? 메이저 리그의 박찬호 선수. 블루스 팬이 아니더라도 텍사스 블루스 하면 연상되어지는 기타리스트? Stevie Ray Vaughan(스티브 레이 본). 그를 텍사스 블루스를 대표하는 거장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몇 해 전 지미 헨드릭스의 누이가 한국의 모음악지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인물로 바로 스티비 레이 본을 지적한 바 있다.
이 천재 기타리스트를 애도하는 차원에서 그의 형인 Jimmie Vaughan이 생전에 동생이 해왔던 작업들을 모아서 콜렉션 앨범으로 1991년 10월에 발표한 "The Sky is Crying"은 그의 천재성과 뛰어난 음악성을 기억하려는 팬들에 의해서 3개월 만에 백만장이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우면서 사람들에게 그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알리게 된다.
우리들에게 음악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준 Stevie Ray Vaughan - Jimi Hendrix와는 또 다른 해석을 통해 맑고 힘있는 여운을 주는 "Little Wing"을 들으며 더운 여름 저 하늘 어딘가에서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Jimi 와 함께 우리를 보고 있을 그를 떠올려 본다.
“인생을 통해 좋은 찬스는 자주 오지 않는다. 따라서 그 찬스를 놓치지 않도록 하라!”
스티비 레이 본은 1954년 10월 3일 텍사스주에서 태어났다. 그가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살 위인 형 지미 본 때문이었다. 평소 블루스 음악에 심취해 있던 지미 본의 기타연주를 보며 그는 형의 밴드에 베이시스트로 가입하였다. 하지만 곧 기타로 바꿔 버디 가이, B.B.킹, 프레디 킹, 지미 리드, 장고 라인하르트, 지미 헨드릭스, 케니 버렐 등을 들으며 자신의 연주세계를 다져갔다.
댈러스의 흑인 클럽에서 연주활동을 하다가 고교를 중퇴하고 곧 오스틴으로 가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하였다. 얼마 후 스티비 레이 본은 더블 트러블(Double Trouble)이라는 자신의 밴드를 결성해 82년 7월부터 정력적인 라이브 활동을 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데이빗 보위의 히트곡인 'Let’s Dance'에서 알버트 킹 스타일의 기타솔로를 세션해 주어 크게 유명해졌다. 이 곡을 계기로 그는 데이빗 보위의 투어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그와 더블 트러블은 83년 6월 [Texas Flood]로 데뷔하는 데, 이 앨범은 예상외로 각종 차트에 오르며 상업적인 성공까지 가져다주었다. 84년 5월에 스티비 레이 본과 더블 트러블은 두 번째 앨범으로 골드 디스크 상을 수상하고 빌보드 차트 3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상복도 꽤 있는 뮤지션인데, 지난 83년에서 8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그래미상을 수상하였다.(그가 받은 부분은 베스트 록 인스트루멘틀, 베스트 블루스 레코딩 등) 이처럼 깊은 음악성 이외에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던 그는 아쉽게도 지난 90년 8월 27일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스티비 레이 본의 연주는 올드팬 뿐만 아니라 지금의 기타 세대에게까지 폭넓은 지지를 받는 뮤지션이다. 그의 블루스 연주는 60∼70년대의 전통미와 현대의 세련된 감각이 공존하고 있다. 그 때문에 블루노트 감각에 있어 고전적인 체취가 늘씬 풍기면서도 유려하고 세련된 프레이즈가 막힘이 없이 흘러나온다.
스티비 레이 본은 블루스의 대가답게 자신만의 리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유창한 블루스 솔로를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데, 특히 핑거 폼의 변화가 탁월하다. 블루스 이외에도 웨스 몽고메리 풍의 옥타브 주법에 의한 감칠 맛 나는 연주도 곧잘 들려준다. 'Chitlins Con Carne', 'Riviera Paradise'가 그 예다. 그가 지미 헨드릭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Couldn’t Stand The Weather]와 [The Sky Is Crying] 등에서 각각 'Voodoo Chile', 'Little Wing' 등을 리바이벌하고 있다.
▒ 사 용 장 비 ▒ ◇Fender Stratocaster(59,57,62,64), Gibson ES 335, Fender Telecaster ◇Marshall 4x12 Cabinets, Dumble Head 150, 300W ◇Fuzz Face, Cry Baby(Vox), Ibanez Tube Screamer, Quadraverb
블루스와 록을 접목시키고 거기에 재즈적인 사운드까지 섭렵하여 자신만의 독특하고 열정적인 연주 스타일을 개발한 뮤지션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은 80년대 블루스를 재생시킨 탁월한 재능을 가진 블루스 기타리스트이다.
큰형인 지미 본(Jimmi Vaughan)의 영향으로 11살 때 기타 연주를 시작한 스티브는 고등학교 시절 로컬밴드의 일원으로 일대의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했고, 학교를 자퇴한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코브라즈(Cobras)의 일원으로 연주경력을 쌓게 된다. 75년 트리플 쓰렛(Triple Threat)이라는 자신의 밴드를 결성한 그는 텍사스 주변의 바와 클럽에서 활동했고, 81년 그룹의 이름을 더블 트러블(Double Trouble)로 바꾸면서 리드 싱어로 자리잡게 된다.
몇 년간의 연주활동을 통해 텍사스 일대의 최고 인기 그룹이 된 이들은 82년 "Montreux Festival"에서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의 눈에 띄게 되고, 그해 데이빗의 앨범 [Let's Dance]에 스티브가 리드 기타 트랙을 맡게 된다. 이듬해 에픽(Epic)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발표한 [Texas Flood](83)는 블루스와 록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그래미 몇 몇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라디오 방송국의 애청곡으로 자리잡으면서 블루스 블록버스터로서의 성공을 누리게 된다.
순회공연을 마치고 두 번째 앨범 [Couldn't Stand the weather](84)를 발표하여 'Tin Pan Alley'를 히트시키며 골드를 기록하는 등 전작에 능가하는 성공을 거둔 밴드는 85년 세 번째 앨범인 [Soul To Soul] 또한 골드를 기록함으로써 더 더욱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스티비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독일 공연 중 쓰러져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87년 아내와 이혼하는 불운까지 겪게 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을 접고 그는 다시 음악활동에 전념했고, 87년 영화 [Back to the Beach]에 전설적인 로커 딕 데일(Dick Dale)과 열연하는 등 재기에 성공한다.
88년 MTV에서 어쿠스틱 기타 연주 실력을 선보인 그는 제프 백(Jeff Beck)과 함께 공연을 하던 중에 더블 트러블의 다섯 번째 앨범인 [In Step]을 발표해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싱글 'Crossfire'로 AOR 라디오 부문 정상을 차지했다. 90년 형 지미와 함께 녹음한 [Family Style]로 록 앤 블루스부문(Rock & Blues Categories)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스티비는 60년대 로커인 조 카커(Joe Cocker)와 2개월간 공동 콘서트를 갖기도 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한다.
그러나 스티비는 90년 8월 27일 남부 위스콘신에서 에릭 클렙튼(Eric Clapton), 버디 가이(Buddy Guy), 로버트 크레이(Robert Cray)와 공연을 마치고 시카고로 가던 중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비극적인 죽음 후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91년 형 지미에 의해 앨범으로 발표되지 않았던 이전 스티비의 곡들을 모은 [The Sky is Crying]이 앨범 차트 톱 텐에 오르면서 발매 3개월만에 플래티넘을 기록해 그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비록 그는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음악 속에서 영원히 들을 수 있는 독특한 기타 톤과 테크닉은 스티비 레이 본을 지미 헨드릭스(Jimmi Hendrix) 이래로 최고의 기타 주법을 구사하는 불후의 기타 신으로서 많은 기타리스트들의 추앙을 받게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