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8. 군살 도려내고 잿더미서 부활한 GM 본문

📡 4차산업.보안.특허.AI.IT/🚢 조선.차량.항공기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8. 군살 도려내고 잿더미서 부활한 GM

Ador38 2014. 12. 11. 10:45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8. 군살 도려내고 잿더미서 부활한 GM

칼라일 출신 애커슨 회장이 변화 주도…쉐보레 등 소수 브랜드 중심 재편

‘2009년 6월 1일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파산보호 신청.’ GM의 106년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장면이다. GM은 이날 미국 주식시장 개장 직전 뉴욕 법원에 ‘챕터11’에 따른 파산보호 신청을 감행했다. 당시 GM의 자산 규모는 820억 달러였다. 미국 역사상 파산 규모로는 역대 넷째, 제조업체 파산으로는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1931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77년 동안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 자리를 지켜온, 말 그대로 ‘거인의 몰락’이었다. GM 안팎에서 ‘종말’, ‘공중 분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2년 1월 31일 미국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개막된 ‘2012 워싱턴 오토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GM의 픽업트럭 쉐보레 실버라도에 올라탄 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는 1주일 전 의회 국정 연설에서 “GM이 2011년 자동차 판매 기준으로 세계 1위에 다시 올라섰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돌아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려한 부활이었다.



GM은 2008~2012년에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파산보호 신청 2년 만에 다시 세계 1위 자리에 복귀한 것은 ‘거인의 내공’을 증명하는 사례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영권을 장악한 ‘빈 카운터스’에 의해 허머·새턴·폰티악 브랜드가 사라졌다. 수익성 낮은 공장 14곳을 폐쇄하고 2만1000여 명이 해고됐다. 구조조정은 지금도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가파른 성장 가도 이면에는 그보다 더 재빠른 ‘마이너스의 손’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General Motors’에서 ‘Government Motors’로
챕터11은 미국 ‘파산법 제11조’라는 뜻이다. 법원의 감독아래 일시적으로 채무 상환을 연기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회생을 유도하는 절차다. 이전까지 독자적인 경영을 해오던 GM의 운명이 파산법원, 즉 정부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GM의 몰락은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2008년 GM의 영업 손실은 310억 달러였다. 2005~2008년 누적 손실액은 820억 달러에 달했다. 급격한 유가 상승(리터당 0.55달러→1.2달러)에 따른 대형차의 판매 부진도 심각했지만 2008년 불어 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시장 붕괴가 결정타였다. 자동차 회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GM은 아니었다. GM의 자동차 금융회사인 GMAC가 자회사 모기지 금융 업체 레지덴셜캐피털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좋을 때에는 모기지 금융업에서 창출되는 이익이 자동차 판매 이익보다 많았다. 이 역시 수익성에만 집중하는 ‘빈 카운터스’의 작품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붕괴에 따른 미국발 금융 위기에 GM이 뿌리째 흔들렸다. 3개월마다 50억 달러의 현금이 빠져나갔다. 유동성의 위기가 찾아오자 GM은 정부에 손을 벌렸다. 그리고 2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2008년 12월 ‘우리 회사가 전략을 잘못 세워 대형 트럭을 많이 생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더 잘하겠습니다’라는 반성문 같은 전면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같은 해 세계 판매량 1위 자리도 일본 도요타에 내줬다. GM 굴욕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6월 GM이 파산보호 신청을 하자 미국 정부는 30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해 GM의 지분 60%를 인수했다. 캐나다 정부도 95억 달러를 넣으며 12.5%의 지분을 사들였다. 나머지 지분은 채권단(10%)과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퇴직자 건강보험기금(17.5%)이 각각 갖고 있었다. GM의 주식은 2009년 6월 상장폐지됐다. 당시 주가는 1달러에도 못 미쳤다. 업계 안팎에선 “GM이 설립 후 처음으로 국유화됐다”며 “GM은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가 아닌 ‘가버먼트 모터스(Government Motors)’의 준말”이라는 조롱이 들려왔다.


2010년 11월 GM이 뉴욕증권거래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재상장 첫날 오프닝 벨을 누르는 대니얼 애커슨(앞줄 가운데) 전 GM 회장.


GM의 경영난에는 전미자동차노조(UAW)도 한몫했다. 강성 노조인 UAW는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에 매년 실질임금 인상과 의료비 지급 확대를 요구해 왔다. 또한 차량 판매 여부와 관계없이 공장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유지해야 했고 근로자 해고 시에는 5년간 평균임금의 95%를 지급하도록 했다. 퇴직자와 가족의 의료보험과 연금을 종신 지급하는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GM이 1990년대 초반부터 2007년까지 15년 동안 노조원 복지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1070억 달러(120조 원)에 달했다. 이를 빗대 GM을 ‘근로자에 관대한 자동차 회사(Generous Motors)’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전광석화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UAW도 한 발 물러섰다. 회사가 문을 닫아 근로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리는 것보다 기득권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게 사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급여 동결, 상여금 포기, 퇴직자 의료 지원 혜택 축소 등의 근로계약 수정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 수정안이 노조원 투표에서 가결된 때는 2009년 5월 29일, 파산보호 신청 불과 사흘 전이었다. GM을 수렁에서 건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2009년 6월 오바마 정부는 칼을 빼들었다. GM에 대한 빠르고 강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기본 방침은 주요 자산을 ‘굿(Good) GM’과 ‘배드(Bad) GM’으로 나눈 뒤 후자는 매각 또는 폐쇄하고 굿 GM으로 ‘새로운(New) GM’을 출범시킨다는 것이다. 당시 수익을 내고 있던 쉐보레·캐딜락·GMC·뷰익 등 4개 브랜드만 ‘데스노트’에서 빠졌다. ‘될성부른 브랜드만 키우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나머지 브랜드들은 팔거나 없애기로 했다. GM유럽의 오펠(독일)·복스홀(영국)은 캐나다 자동차 부품 업체 마그나에 넘기기로 했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브랜드인 허머는 중국 중장비 업체 쓰촨 텅중에 팔려야 했으며 사브(스웨덴)·새턴·폰티악도 매각 또는 폐지하기로 했다.

물론 이 계획들이 모두 실행에 옮겨진 것은 아니다. 오펠과 복스홀은 해당 국가 정부 지도자들의 압력과 여론의 공세로 매각에서 잔류로 유턴했다. 허머는 중국 정부의 반대로 매각이 불발되면서 2010년 4월 재고 차량 2200대 할인 판매를 끝으로 결국 폐지됐다. 새턴·폰티악도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년 만에 GM을 다시 최정상에 올려 놓은 대니얼 애커슨 전 GM 회장.


노조도 회사 경영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사측과 신규 고용계약을 체결해 근로자 1인당 시간당 평균 임금을 기존 78달러에서 절반 수준인 45달러로 내렸다. 이는 도요타 등 해외 자동차 업체들의 미국 내 공장 임금 수준이었다. 9만 명에 달했던 북미 공장 근로자를 6만9000명까지 줄이고 47개 생산 공장을 31개로, 5900개였던 딜러망 네트워크를 3600개로 축소하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협조했다. 퇴직자들에 대한 복리후생 비용도 대폭 축소했다. 이를 통해 2009년 76억 달러에 달했던 노무비용은 2011년 50억 달러로 줄었고 올해는 41억 달러 수준으로 대폭 낮아질 전망이다.


여전히 움직이는 ‘마이너스의 손’
정부 주도로 기업 회생 절차가 진행되면서 최고경영진도 구조조정 전문가들로 물갈이 됐다. 2003년부터 8년간 GM의 회장을 맡았던 릭 왜고너는 정부에 제출한 기업 회생안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사퇴를 종용받다가 2009년 3월 30일 사임했다. GM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하다 바통을 이어받은 프린츠 핸더슨도 8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1일 이사회의 압력에 물러났다. 이 자리는 이사회 의장이었던 에드워드 휘태커가 차지한 후 9개월이 지난 2010년 9월 1일 대니얼 애커슨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애커슨은 사모 펀드 칼라일그룹에서 일해 온 금융맨 출신이다. 글로벌 인수·합병(M&A) 책임자로 일하던 그는 재무와 조직 관리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미국 재무부 파견단으로 2009년 GM 이사회에 합류했다. 자동차 제조사에 근무한 적이 없는 전형적인 ‘빈 카운터스’다. 하지만 빈 카운터스 모두가 회사를 벼랑으로 몰지는 않았다. 애커슨은 3년간 GM을 이끌며 회사를 다시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대형차 대신 소형차를 확대하며 판매량을 회복시켰다. 주식시장에서 퇴출됐던 GM의 주식은 2010년 11월 18일 공모가 33달러로 재상장됐다. 정부는 이때 31%였던 지분을 점진적으로 축소했고 2013년 12월 10일 잔여 지분 2.2%를 모두 매각했다. GM이 구제금융을 졸업하는 날이었다.

애커슨은 투병 중인 아내를 돌보기 위해 2014년 1월 14일 GM을 떠났다(하지만 최근 칼라일그룹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당초 예정된 2015년보다 이른 시기였다. 후임은 메리 바라 글로벌 제품 개발·구매 및 공급망 담당 수석부사장이 맡았다. GM 역사상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였다. 게다가 메리 바라는 엔지니어 출신이다. ‘카 우먼(Car Woman)’인 셈이다. 바라는 지난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14 북미 국제 오토쇼’에 참석해 GM 픽업트럭 ‘캐니언(Canyon)’을 발표하며 “GM은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신차를 통해 모든 차급에서 최고의 제품으로 어떤 시장에서도 각광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품에 집중하는 카 우먼다운 발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메리 바라는 지난 2월부터 차량에서 잇따라 결함이 발견되면서 리콜 대상 차량 대수가 700만 대에 육박하며 비용도 13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10여 년간 결함을 알고도 감춘 점화장치 불량도 포함돼 있었다. 애커슨은 오바마 정부의 비호 아래 착실하게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면 메리 바라는 그 과정에서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차량 결함을 모두 꺼내어 수습하고 있는 셈이다.

 

애커슨이 그려 놓은 로드맵을 따라 호주 홀덴 생산 공장 폐쇄, 유럽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 철수, 한국GM 생산 물량 축소 및 희망퇴직 실시 등도 진행 중이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접어버리는’ 빈 카운터스의 논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정부 감독 하에 새로 구성된 ‘뉴 GM’에 빈 카운터스의 DNA가 뼛속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GM이 있는 한국에서 GM의 향방을 두 눈 부릅뜨고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최진석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