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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영화 ‘암살’의 역사 왜곡

Ador38 2015. 8. 12. 23:18

[홍찬식 칼럼]영화 ‘암살’의 역사 왜곡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5-08-12 03:00:00 수정 2015-08-12 10:01:21

 

 
김원봉 치켜세우고 독립운동과 친일 이분법 구도
“변절의 나라” 등 편향적 인식에 악용될 우려
공동체 의식 확인은커녕 서로 으르렁대는 광복 70년
올해도 못 바꾸고 넘어가나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영화 ‘암살’에는 김구 김원봉 같은 현대사의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극중에서 일본의 밀정 노릇을 하는 염석진도 염동진이라는 실제 인물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는 어차피 상상이자 허구일 수밖에 없지만 ‘암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1930년대 항일투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광복 70년이라는 시점에 상영돼 1000만 관객 동원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단순한 ‘픽션’으로 보아 넘길 수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김구 김원봉 염동진 세 사람은 실제 역사에서 모두 독립운동을 했던 공통점이 있다. 김구는 독립운동 세력에서 우파를 대표하는 인사였고 김원봉은 좌파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김원봉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1948년 남북협상 때 북한으로 간 뒤 그대로 눌러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에서 노동상 등 요직을 맡았다. 광복군 출신의 장준하는 저서 ‘돌베개’에서 김원봉에 대해 ‘판에 박힌 공산주의자’라고 증언했다.

염동진은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영화 속 시대 배경인 1930년대 초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항일무력투쟁에 나선다. 일제의 기록에는 ‘중국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비밀공작에 종사한 까닭으로 수배됨’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광복 이후 국내 공산주의자를 상대로 테러를 가하는 핵심 인물이 된다. 그가 총사령으로 있던 ‘백의사’라는 단체는 1946년 3·1절 때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했다.

염동진에 대한 반감은 1937년 일본군에 붙잡힌 후 일본 첩보원이 됐다는 일부 증언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구체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체포된 뒤 고문을 당해 시력을 잃은 탓에 일본이 그를 써먹지 못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1940년대 초 그가 평양의 지하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에서 활동한 것도 ‘밀정설(說)’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그의 활동 공백만으로 장기간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그를 민족 배신자로 모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영화 ‘암살’이 좌파 김원봉을 도드라지게 하고 우파 염동진을 악역으로 묘사한 것을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나 좌파 인물에게는 관대한 반면 남한이나 우파의 잘못에 대해서는 유난히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역사학계의 분위기다.

 

염동진이 좌파를 괴롭힌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것이 더 혹독한 평가를 불렀을지 모른다. 진보 진영이 장악하고 있는 역사 인식의 창이 처음부터 그렇게 짜여 있는 탓이 크다.

이 영화는 해외의 독립운동 세력이 국내 친일파를 처단하고 광복 후 남한의 경찰로 변신한 염석진까지 응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스토리는 단순 명쾌하지만 이런 구도 또한 왜곡을 부를 수 있다. 김원봉 같은 인물이 독립운동을 통해 이룬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독립운동 세력만이 역사적 당위인 것으로 근현대사를 바라보면 당시 국내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이나 이후 세워진 대한민국의 성취는 초라하거나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 된다.

더구나 이런 인식은 한국 사회를 분열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당장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이 영화에 자극받았는지 “아직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있다”며 올해를 ‘독립운동가 기억 원년’으로 삼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독립운동과 친일을 대비시키면서 남한을 은연중 깎아내리는 역사인식이 숨어 있다.

 

같은 당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아예 드러내놓고 “지난 70년은 친일 변절 독재가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은 그들만의 조국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수긍할 수 없는 편향된 주장이다. 그러나 비단 정치계뿐 아니라 교육현장 등 곳곳에 이런 시한폭탄이 잠재해 있는 게 현실이다.

광복절은 대한민국의 닻을 올린 날이기도 하다. 8월 15일이 국가기념일로 처음 지정된 것은 건국 1년 뒤인 1949년으로 당시엔 제1회 독립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졌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 날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편이 갈려 더 으르렁대고 있다.

 

유권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 중에는 이처럼 혼란스러운 국가 정체성을 확실히 바로잡으라는 뜻도 들어 있었다. 70주년인 올해 광복절이 아무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지나가려 하고 있다. 영화 ‘암살’을 잠시 즐기는 오락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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