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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지 못한 질문 - 유시민 본문

♣ 세계사 & 溫故知新 -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대답하지 못한 질문 - 유시민

Ador38 2019. 6. 24. 22:05





대답하지 못한 질문 -  유시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시대가 와도 거기 노무현은 없을 것 같은데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만 한다면야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2002년 뜨거웠던 여름

마포경찰서 뒷골목

퇴락한 6층 건물 옥탑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노무현의 시대가 오기만 한다면야 거기 노무현이 없다한들 어떻겠습니까

솔직한 말이 아니었어

저렴한 훈계와 눈먼 오해를 견뎌야 했던

그 사람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싶었을 뿐 


대통령으로서 성공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개인적으로 욕을 먹을지라도

정치 자체가 성공할 수 있도록

권력의 반을 버려서 선거제도를 바꿀 수만 있다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요

대연정 제안으로 사방 욕을 듣던 날

청와대 천정 높은 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국민이 원하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시지요

정직한 말이 아니었어

진흙투성이 되어 역사의 수레를 끄는 위인이 아니라

작아도 확실한 성취의 기쁨에 웃는 그 사람을 보고 싶다는

소망이었을 뿐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가르고 온 것만 같소

정치의 목적이 뭐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지켜주는 것 아니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자기 가족의 삶조차 지켜주지 못하니

도대체 정치를 위해서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이요

수백 대 카메라가 마치 총구처럼 겨누고 있는 봉하마을 사저에서

정치의 야수성과 정치인생의 비루함에 대해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물을 가른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확신 가득한 말이 아니었어

그 분노와 회한을 함께 느꼈던 나의

서글픈 독백이었을 뿐 


그는 떠났고

사람 사는 세상은 멀고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거기 있는데

마음의 거처를 빼앗긴 나는

새들마저 떠나버린 들녘에 앉아

저물어 가는 서산 너머

무겁게 드리운 먹구름을 본다

내일은 밝은 해가 뜨려나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안고

욕망과 욕망이

분노와 맹신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흙먼지 날리는 세상의 문턱에 서성인다



- 노무현 재단 홈페이지(2013)



 노무현 대통령은 유시민 전 장관을 볼 때마다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강의하고 책 쓰고 그러는 게 훨씬 낫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참모인 안희정에게는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농사나 짓게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번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반복했다


반면 비서실장인 문재인은 정치를 하기 싫다는 의사를 거듭 피력했음에도 자네 같은 사람이 잘 적응만 하면 정치를

하는 것도 괜찮지라면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당연히 이들에 대한 사랑과 우정이 바탕에 깔린 말이다. 


 결국 유시민은 그의 조언대로 정치를 접고 작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안희정은 뒤늦게 농사짓고 사는 편이 차라리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을 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문재인은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되었다.


 유시민은 2009525일 추모 헌시 <서울역 분향소에서>를 낭독했다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어리를 품었던 사람

모두가 이로움을 쫓을 때 홀로 의로움을 따랐던 사람

시대가 짐지운 운명을 거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 밖에 가진 것 없이도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사람

 그가 떠났다


 스무 길 아래 바위덩이 온몸으로 때려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껴안고

한 아내의 남편, 아이들의 할아버지, 나라의 대통령, 그 모두의 존엄을 지켜낸 남자

 그를 가슴에 묻는다


내게는 영원히 대통령일 세상에 단 하나였던 사람


그 사람 노무현스스로 "뼛속까지 친노"임을 자처한 유시민이 2013<대답하지 못한 질문>에 괴로워했다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가 집권하여 막 취임식을 마친 뒤였다

 구구절절 당시의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떠났고/ 사람 사는 세상은 멀고/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거기 있는데/ 마음의 거처를 빼앗긴 나는/ 새들마저 떠나버린 들녘에 앉아/ 저물어 가는 서산 너머/ 무겁게 드리운 먹구름을 본다”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시민권력이 으뜸인 나라를 말한다

정치권력은 만능이 아니고 대통령 자리는 최고정점이 아니라면서 늘 각성하는 시민권력을 강조했다

 그는 퇴임하면서 나는 이제부터 그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려 합니다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했을 때 정말로 그를 버린 것이 두고두고 미안했다

 떠나보낸 뒤에야 너무 욕을 해댄 게 미안해서 줄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특혜와 반칙이 없는' 세상은 시민권력에 의해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아니, 계승되어야할 노무현 정신만 다시 살아온 것이지, 아직 완전히 그러한 세상이 도래한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성찰과 연대가 필요한 시기다

 그 세상이 완성된 뒤에야 '대답하지 못한 질문'에도 속시원히 답할 수 있으리라

 물론 그런 시대가 와도 거기 노무현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누가 맨 나중까지 슬퍼하고 그를 기억할 것인가를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노무현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사람이다. 시간은 어떤 비통도 완화시키기 마련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올 때까지 그는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존재이리라.



권순진 (http://blog.daum.net/act4ksj/1377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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