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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 가난한 글, 그 얄미운 가벼움 본문

😀 Ador 빈서재

* 가난한 글, 그 얄미운 가벼움

Ador38 2007. 7. 10. 23:03



     * 가난한 글, 그 얄미운 가벼움
                       Ⅰ
    몇날, 몇달을
    그리도 홍역을 치루고 생산한 글귀 몇줄
    오가는 장삼이사(張三李四) 중에 
    지새끼 키워내듯 혼신을 다한 피땀인 걸 알랴마는
    몇이나 알음으로 보아주랴 만
    그래도 
    세상을 발아래 굽어보는 재미로
    목줄이 두려워 입 다문 월급쟁이 대신에 떠 안은 나팔로
    할말은 하면서 사는 재미에
    끼니도 없으면서 
    컬컬한 목, 헛기침으로 달래며
    가갸거겨에 목숨을 올려 놓는 가난하여 슬픈 글쟁이 백성아
                       Ⅱ
    닷새마다 서는 오일장터에 파장(破場)이 시작된 늦은 오후
    급한 볼일인양 찾아든 주막집, 가벼운 주머니를 감춘다
    "어서 오세요, 빨리 주문하세요"
    "청주로 두병 주시오"
    "청주는 없고 막걸리뿐인데..."
    "왜 그 좋은 청주라는 이름 놔두고 꼭 막걸리라고 하시우?
    대접 좀 해서 부릅시다"
    "안주는 무얼로..."
    "됐수"
    누가 보아도 
    울화를 삭히기 위해 선채로 들이키고 나갈 행색이지만,
    남는게, 공상(空想)으로 허송하는 시간 뿐인 위인임은
    아무도 모르리.....
                        Ⅲ
    지난 장마에 자릴잡은 곰팡이가
    한겨울에도 향그러운 골방에서도 유일한 낙(樂)은
    닷새마다 서는 오일장터다
    아예
    점심도 건넌 빈 배에 두어사발 들이키면 장터세상이 내게로 온다
    손님을 부르는 목청이 
    꼭, 나를 위해 저리도 수고해주는 것 같아서 좋고
    몇 천원하는, 푸루죽죽한 슬리퍼 한켤레를 사면서
    깎아달라 흥정하는 것도 내 주머니 무게를 지켜주려는 것 같고
    붕어빵 속 앙금을 조금씩만 넣고 닫는 뚜껑도
    나를 위하여 덜컹, 빨리 닫히는 것 같아 좋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서 좋고
    물건 파는 이들의 입도 귀에 걸려 있는게 너무도 좋다
    웃음과 반가움과 정들이
    기약없는 이별이어도 아픔없는 이별이어서 좋다
    좋은 것만 
    기분 좋은 영혼들이 너무도 넘쳐나서 좋고도 좋다
                         Ⅳ
    시인(詩人)도 저 속에 더불어 살아있어 좋다
    하얀, 사람냄새가 좋다
    한 여름의 소낙비에 젖은 머리를 구겨넣은
    만원 통학버스의 냄새와는 다른
    선하고 선한 빠알간 피가 도는 사람 냄새
    의욕과 희망이 넘치는 냄새
    한푼을 놓고 해학을 흥정하는 냄새
    밝은 내일을 가슴에 품은 냄새가 좋다
    이제는 엄마의 치마끈을 붙잡고 다니는 아이는 없다
    엄마를 가끔 부르며 위치정도 확인하려나
    목에 건 과학을 믿고 
    지멋대로 장터를 돌아다닌다
    닭장 안의 닭을 건드리다 쪼이기도하고
    한 배에 나온 강아지의 눈을 건드리다가 기겁을 하기도 한다
    과거와 현대가, 세대(世代)와 세대(世代)가 공존(共存)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Ⅴ 
    내가 만든 세상 같아서 좋고
    나의 백성다워서 좋고
    내 땅, 내 자리에서 공짜로 살아가게 한 것같아 좋다
    남의 입안에 든 걸 뺏는 
    정상모리배 아귀(餓鬼) 후손들이 없어서 좋다
    남을 아프게하는 게 없어 좋다
    필요에 의해서 사고 
    필요에 응(應)해서 팔고
    이 두가지의 규칙만 허물어지지 않으면 된다
    뻔히 알면서도
    밑지고 판다는 너스레가 밉지 않고
    물건 값에서 한사코 동전 몇닢을 안주고 갔어도 
    다음 장날에 만나면 더 반가운.....
    아, 나는 이러한 영혼들을 흠향(歆饗)하며 사는 세상이 좋다
    이들을 사랑 안하고는 못배길 것이다
    이들이 있어 내 영혼이 굶지않고 산다
                          Ⅵ
    배우거나 동냥하여 얻은 영혼을 나는 
    밤을 새며 짜깁기한다
    때로는, 
    단 한줄 써놓고 나서 계절이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 영혼의 양식이 바닥나서다
    오일장터는 내 삶의 무대다
    파장하는 두어시간의 풍경은 참 쓸쓸하다
    모두들, 다음날 다른 곳의 얼굴들을 꿈꾸며 장터를 떠난다
    모두들, 나를 위해 팔고 사는 수고처럼이다가
    떠날 때는 아무런 눈 인사조차 없이 등을 돌린다
    서너시간은
    몇사발의 취기를 천원지폐로 산, 이 왕국의 왕이였었는데
    반란(叛亂)으로 하야(下野)하는 중세(中世)의 왕의 심사가 이러하였을까
    슬퍼하지 말아라 가난한 백성아!
                           Ⅶ
    이하(以下)는.....
    여백(餘白)으로 남겨두자
    다시, 왕이 되는 날까지.....
    0609. 邨夫 Ador.
    
    Ballade Pour Adeline - Richard Clayd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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