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가끔은 브람스라는 작곡가의 뼛속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는 고독의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궁금증을 갖게 된다. 물론 그 해답은 바로 브람스의 삶 속에 있다.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으며 자유롭게 살아 온 한 예술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고독한 음악가의 표상인 이유들과 자연스럽게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소년기에 알게 된 삶의 고독
브람스는 1933년 함부르크 태생이다. 독일 최대의 무역항이기도 한 함부르크는 상업이 발달해 외지에서 온 많은 상인들로 붐비는 곳이었지만 북부 유럽에 위치한 이 도시의 분위기는 남부 유럽과는 달리 매우 쓸쓸하고 어두운 편이다. 이런 함부르크의 환경을 브람스의 성격 형성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다 브람스의 아버지는 가난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여서 브람스는 그다지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진 못했다. 그는 부친의 영향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오케스트라에 필요한 악기를 공부하기를 원했던 데 반해 브람스는 피아노에 관심을 보였다. 결국 브람스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피아노를 배우게 됐는데 집에 피아노가 없던 이 소년은 피아노 선생인 코셀의 집에서 연습을 해야 했다.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보인 브람스는 열 살 때 공개 리사이틀을 열어 큰 갈채를 받기도 했다. 브람스의 작곡 능력을 일찌감치 알아챈 코셀은 제자를 자신의 스승인 마르크센에게 보내 음악이론을 배우게 했다.
그렇지만 일찍 철이 든 장남 브람스는 넉넉지 못한 집안에 경제적인 보탬을 주기 위해 아직 공부를 더 해야 될 나이인 13세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고 15세 때는 결국 정규 교육을 포기했다.
그는 스승들에게 레슨을 받으며 틈틈이 작곡도 했는데 밤이면 술집이나 카페에 나가 피아노를 연주했다. 어린 브람스의 이런 생활은 건강을 해치게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안개 낀 함부르크의 어둠침침한 술집 한구석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사춘기를 보냈을 한 작곡가의 불우한 소년 시절은 그에게 너무 일찍 삶의 고독과 고단함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고독한 독신자
브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왜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점이기도 하다. 그를 미래의 위대한 작고가라고 세상에 널리 알려준 선배 작곡가 슈만의 부인 클라라에 대한 일편단심 때문이었을까? 물론 브람스는 한때 클라라를 격정적으로 사랑했으며 그녀는 그가 그리던 이상형의 여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클라라와 그 자녀들을 마치 가족처럼 돌봐주기도 했다. 하지만 브람스가 평생 클라라만을 연모한 것은 아니다.
브람스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성들에게 주로 마음을 빼앗겼는데, 그 가운데는 약혼까지 했던 아가테 폰 지볼트라는 여인이 있었다. 요아힘이 그녀의 목소리를 두고 아마티 아비올린의 소리에 비유했을 정도로 매력적인 음성을 가진 소프라노였고 브람스는 그녀를 위해 가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1858년 브람스와 아가케 폰 지볼트는 약혼까지 했으나 결혼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브람스가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 앞에서 머뭇거렸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아가테,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다시 한번 만나고 싶소! 그렇지만 나는 속박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소! 내게 편지해 주오. 다시 한번 만나야 할 것인가 당신을 내 가슴에 간직한 채로 입맞추며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지를 말이오.”
아가테는 이 편지를 파혼의 편지로 생각했고 여기에 자존심이 상해 결별을 선언하고 말았다. 브람스는 이 사건으로 상당한 상처를 받았는데, 그의 현악 6중주곡 제2번 Op.36은 그녀를 생각하며 작곡한 것으로 이 곡의 주제는 그녀 이름의 알파벳에서 따왔다. 분명 그는 아가테를 열렬히 사랑했다. 그러나 결혼 앞에서 예술가의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를 접는 것이 두려웠다.
그 후로도 브람스는 다른 여인들에게 연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끝내 독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독한 독신의 삶은 브람스 자신의 선택이었음에 틀림없다.
고독한 창조자.. 그리고 방랑자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또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작업을 하기 위해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거처를 정하고 작품을 썼다. 베르디의 산타가타 빌라와 푸치니의 토레 델 라고의 빌라가 유명한데, 이들이 한 곳에서 거처를 정해 오랫동안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한 데 반해 브람스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마치 보헤미안처럼 이곳저곳의 별장을 옮겨 다니며 작곡을 했다.
브람스가 빈으로 이사한 것은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인 1862년으로 얼마 후에는 집 까지 마련했지만 거의 1년의 반은 연주여행을 하거나 별장에서 보냈다. 특히 브람스는 빈을 떠나 휴양지에서 여름을 보낼 때가 많은 작품을 썼기 때문에 ‘여름 작곡가’로 불릴 정도였다.
브람스가 지내던 별장 중 하나는 온천 도시 바덴바덴에 있는 리히덴탈이다. 클라라가 이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 브람스는 1860년대 중반에 이곳에 별장을 마련했는데 이곳에 가서 휴양하면서 작품도 썼다.
1873년에는 슈타인베르거 호수가 있는 투칭에서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썼다. 그리고 호숫가의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푀르차흐 역시 브람스가 걸작을 탄생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1878년부터 1879년까지 여름을 보낸 장소로 브람스는 특히 경치가 좋은 들판과 목초지를 오가며 작품을 구상하고 작곡을 했다고 한다. 바이올린 협주곡 Op.77과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을 이곳에서 완성했다.
브람스가 발견한 또 다른 휴양지로 뮈르츠추슬락이라는 곳이 있다. 브람스는 이곳에서 별장을 세내어 1884년과 1885년 여름을 보냈다. 이곳에 브람스가 머무른 시간은 8개월 정도였지만 여기에서 그는 창작 활동에 있어 가장 큰 결실을 보았다. 그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교향곡 제4번을 탄생시켰으니 말이다.
또 이듬해인 1886년 여름은 멋진 자연 풍광을 가진 스위스의 툰 호반에서 보내며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을 작곡했으며 1887년에도 이곳을 찾아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과 가곡집 ‘집시의 노래’를 썼다.
브람스의 마지막 여름 별장이 된 곳은 오스트리아 황제의 휴양지로 알려진 바트 이슐이었다. 브람스가 처음 이곳을 찾은 것은 1880년으로 2년 후에도 다시 이곳을 찾아다. 그리고 만년이라 할 수 있는 1889년부터 1896년까지 이곳을 찾아 창작에 몰두하곤 했는데 종종 가까이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별장이 별장을 찾아 그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바트 이슐에서 보낸 첫해 거둔 수확이 ‘대학축전 서곡’과 ‘비극적 서곡’이며 세상을 떠나기 전해에 마지막 작품으로 여겨지는 ‘오르간을 위한 11개의 코랄 전주곡’은 1896년 6월 여기에서 작곡됐다. 이 작품의 마지막 곡의 주제가 되는 코랄의 제목은 ‘오! 세상이여 나는 네 곁을 떠나야 하네’인데, 브람스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듯하다.
한편 브람스는 많은 연주여행과 여름 별장행 외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 주로 봄이 되면-제3차 여행 때만 가을에 여행했다-이탈리아 여행을 즐겼다. 복부 유럽인 함부르크 태생인 그에게 뜨거운 태양 아래 밝은 분위기를 가진 남쪽 나라 이탈리아는 정말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45세 때인 1878년에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한 그는 이후 1893년까지 여덟 차례나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고독한 영혼의 노래
브람스는 의외로 사교적이어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는 잘 어울려 지냈으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무뚝뚝한 데다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 그는 고독을 즐겼으며 그 것을 바로 창작의 원천으로 삼은 작곡가였다.
겨울은 주로 빈에 마련한 자신의 아파트에서 보낸 브람스는 아침이면 일 찍 이러나 손수 커피를 끓여 마신 후 작업에 들어갔다. 빈에서 보낸 겨울이건 휴양지에서 보낸 여름이건 간에 브람스에게 창작의 시간은 절대 고독의 시간이어서 누구에게도 방해받는 것을 싫어했다.
고독하지 않은 예술가가 어디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브람스의 고독은 유독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들을 때면 그가 자신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 놓은 고독의 향기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것 일거다.
불멸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4곡의 교향곡은 물론이고, 바이올린 소나타 1번, 클라리넷 소나타 1,2번, 클라리넷5중주곡, 현악 6중주곡 1번, ‘독일레퀴엠’, 열정으로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낭만적인 피아노 협주곡들에서조차 그는 고독의 그림자를 드리워놓고 마는 것이다.
1896년 5월 클라라를 먼저 떠나보낸 브람스는 간암의 발병으로 채 1년을 더 살지 못하고 이듬해 4월 3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빈 중앙묘지에 안장됐는데 평소 존경하던 선배 작곡가인 베토벤 옆에 묻혔다. 자료제공: JOY CLAS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