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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외교관의 독도 이야기 2부 본문

🤴 한국 한국인,역사문화유적,교육.

* 어느 외교관의 독도 이야기 2부

Ador38 2012. 8. 11. 07:14

어느 외교관의 독도 이야기 2부

아래 글은 웹서핑 중 우연히 들렀던 외교관의 블로그에서 발견 한

독도관련 글입니다. 요즘 일본에서 자민당 애들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고

주접을 떨고 있는 이 시점에 꼭 한 번 읽어봤으면 하는 내용으로 가득한 것

같아서 모셔왔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 여태 만났던 기존의 독도관련 글에서

알지 못했던 일본 애들의 허황된 내용으로 가득 찬 거짓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 긴 글이지만 한국사람 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이 너무 길어서 3부로 나누어 정리 했습니다.

[대일(對日) 평화조약에서의 한국영토]

Mormanne : 태평양전쟁 후 1951년에 체결된 대일평화조약에서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한국의 영토에 포함되는 것으로 명시하면서

독도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홍승목 : 조약의 당사국이 아닌 한국더러 설명하라는 것은 이상하다.

조약의 해석문제라면, 한국영토의 외곽에 있는 주요 섬이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한국영토의 외측 한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뜻으로 하는

질문이라면 간단히 반박할 수 있다.

이들 중 어느 섬도 한국영토의 가장 외곽에 위치하는 것은 없다.

제주도를 예로 들면 더 남쪽에 마라도가 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 영토의 외측 한계가 아니라

한국 영토의 외측 한계를 결정했을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우습다.

패전국은 일본이 아닌가? 대일평화조약에서는 한국영토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부분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일본의 독도편입 주장의 부당성]

Mormanne : 한국은 일본의 ‘1905년 영토편입조치가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독도가 1905년 이전에 이미 한국의 영토라는 근거는 충분한가?

홍승목 :한 가지 물어보자. 일본의 주장대로 독도가 1905년까지는

無主地(terra nullius)였을 가능성이 정말 있다고 보는가?

Mormanne :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홍승목 :참으로 식민주의적인 발상이다. 20세기에 와서 태평양의

외떨어진 곳에서 새로 발견된 땅(terra incognito)’이라면 몰라도

.일 두 隣近國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이미 數 世紀 前부터 한.

양국 국민이 그 섬의 존재를 잘 알면서 그 부근에서 어업을 해 왔다면

두 나라 중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는 것이 상식 아닐까?

1905년에 정말 無主地(terra nullius)였다면 영국이든 러시아,

아니면 쿠바이디오피아든 아무 나라나 먼저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할 수 있었다는 논리인데타당한가? 만약에 이러한 나라가

20세기에 독도를 無主地(terra nullius)’라고 선언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으면 과연 일본이 이를 인정하였을까?

Mormanne : 인정하기 어려웠겠다.

홍승목 :두 나라 입장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 일본의 입장은 “1905년에 독도는 임자없는 땅(terra nullius)’이었으므로

어느 나라든 先占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한국의 입장은 “1905년에 이미

인근국가인 한일 양국 가운데 한 나라가 영유권을 확보하였을 것이므로,

양국 중에서 과연 어느 나라의 영토였는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입장은 서구의 식민주의 개념에 따른 것이고,

한국은 식민주의를 거부하는 입장이다.

독도의 지리적 위치와 규모를 감안할 때, 독도에 관한 기록이 한국이나

일본의 영토에 속하는 다른 유사한 섬에 대한 기록의 수준에 이르면 일단

독도는 terra nullius 는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의 경우 영토에 속한 섬은 별도의 이름을 가진 것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른다.

그런데 독도는 조그마한 무인도로서 그 자체의 경제적 가치는 거의 없는데도

영유권을 입증할 역사적 기록은 다른 유사한 섬에 비해 비교적 풍부하다.

것만으로도 terra nullius 의 논리는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

1905년을 기준하여 일본이 한국보다 더 강하게 영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있는지를 한.일 양국의 자료를 종합 검토하여 판정하면 되는 것이다.

Mormanne : 1905년 일본의 영토편입 조치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홍승목 :아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인데 전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한다.”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식민주의에 입각한 영토편입 조치에 대해

법적 효과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독도를 無主地라고 선언하여 그 때까지는 자기네 영토가 아니었던점을

명백히 한 것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므로 없었던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Mormanne :일본에게 유리한 것은 인정할 수 없고 한국에게 유리한 것만

인정해야 한다.”는 뜻인가?

홍승목 :이상한 질문이다. 간단한 비유를 들겠다.

협박이나 사기로 남의 집을 뺏은 경우에 법적으로 소유권 취득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 당초부터 범죄행위도 없었던 것으로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범죄행위의 동기도 있을 것이고요컨데, “불법행위에 대해 법적 효과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지만, 불법행위 자체나 그 동기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Mormanne : 결국 한국의 입장은 독도는 1905년에 이미 일본이나 한국 중에서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아야 하는데, 일본은 terra nullius 라고 하여 자기네

영토가 아니라고 인정했으니까, ‘반사적으로한국영토라야 한다는 것인가?

1905년에 이미 한국영토였음을 한국이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독도가 1905년에 한국영토였다는 증거]

홍승목 :물론 한국영토였다는 증거는 충분히 있다.

다만, 한국이 수락하는 입증책임의 정도는 식민주의의 피해를 받은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자기영토에 대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지,

선진국들이 식민주의를 합리화하기에 유리한 엄격한입증책임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 둔다.

우선 1905년에 한국 정부가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는지의

법적 인식(animus)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명쾌한 증거가 있다.

1905년에 일본이 비밀스럽게 영토편입 조치를 한 후에도 한국정부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같은 해에 한국 정부의 외교권을 탈취한 후 다음 해인

1906년에 일본관리 일행을 울릉도에 파견하여 군수에게 독도는 이제

일본영토가 되었기에 독도를 둘러보러 왔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울릉군수는 깜짝 놀라 중앙정부에게 本 鬱陵郡 所屬獨島에 대해

일본인 관리일행이 통보해 온 내용을 보고하고 내용을 조사토록 건의하였다.

이제부터는 일본 영토라는 일본 관리의 통보와 본 울릉군 소속인 독도라는

한국 관리의 보고가 당시의 양국 정부의 영유의식을 너무나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걸작이다.

보고서의 원본이 없으므로 믿을 수 없다라고 한다.

울릉군수의 보고서는 같은 해의 신문이나 다른 문서에서 인용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엄격하게 원본 여부만을 가지고 따지면 日本歷史인들 남아날까?

더구나 1910-1945년 간 한국을 식민지배하면서 역사 기록의 管理權

몽땅 손아귀에 쥐고 있던 일본이 한국에 대해 역사 기록의 원본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니 가관 아닌가?

1906년에 한국의 어느 역사가는 독도는 전에 울릉도 소속이었는데 일본이

이를 빼앗아 갔다고 기록을 남겼고, 이보다 몇 년 앞서 1900년에는 정부가

취한 조치로서 독도를 울릉군수의 관할로 한다.”는 내용이 공포된 기록이 있다.

더 이상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Mormanne : 1900년의 정부조치에 대해 일본정부는 뭐라고 하나?

홍승목 :거론된 섬은 독도가 아니라 다른 어느 섬이라는 것이다.

기록에서 獨島라고 하지 않고 石島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기록에 독도란 이름은 앞서 언급한 1906년 울릉군수의 보고서에

처음 나타나는데 이에 앞서 1900년에 독도라는 명칭이 어떻게 등장하나?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rock island 라는 의미인 독섬’(, 돌섬)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당시의 관례에 따라 한자로 표기할 때 의미를 따르면

석도가 되고 발음을 따르면 독도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표기법은 일본에서는 아직도 통용된다.

더우기 현실적으로 독도말고는 석도에 해당하는 섬이 없다.

일본이 석도독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도대체 어느 섬을 가리키는지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 아닌가?

일본은 한국의 역사 기록에 독도에 관한 기록이 나오면

하여튼 독도는 아니다라고 미리 단정한 후 울릉도 주변에

환상의 섬을 많이 만든다.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천체로서 그 크기는 태양과 같다

역사 기록이 있으면 달(moon)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일본의 입장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무조건 달은 아니다라고

단정한 후, “그 천체에 해당하는 다른 별이 있거나, 아니면 허위기록이다.

어느 쪽이든 나한테는 마찬가지이니 나한테는 입증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긴 역사로 본 독도의 영유권]

Mormanne : 1905년 이전의 역사기록으로서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입증할 만한 것은 어떤 것이 있나? 방금 “1906년 이전의 역사기록에

독도라는 이름은 쓰이지 않았다고 했는데물론 한국은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등이 독도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 않은가?

홍승목 :역사기록상 우산도삼봉도등은 울릉도를 가리킨다.”

일본의 주장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울릉도만을 가리킨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울릉도 주변에 관한 기록이면서도 울릉도가 아닌 별개의 섬을 가리키는 것이

명백할 때는 일단 독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상정하여 기록을 검토해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울릉도 부근에서 역사기록에 상응하는 다른 섬을 찾을 수 없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은 우산도삼봉도울릉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기록을

근거로 하여 이들은 모두 울릉도라고 단정한 후,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인 것이

분명하면 이를 허위기록으로 몰아붙인다. “자기네 역사책에 환상적(fantastic)

허구가 많아서 남의 역사까지 의심 하는구나하고 이해를 해 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허위 역사도 필요할 때 만드는 것 아닌가?

건국신화 이야기가 나오는 곳도 아닌데, 그것도 15세기 또는 그 이후의 역사기록에서

먼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섬이야기가 나오면 거기에 섬이 있으니까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시 한국 사람들이 獨島 부근에만 가면 갑자기 눈이 멀어져

섬을 못 보다가 茫茫大海에서는 느닷없이 환상의 섬을 본 것으로 추측해야 하나?

그 섬이 진정 독도일 수 없으면 일본의 오끼시마(隱枝島)’를 가리키고,

따라서 오끼시마가 한국의 영토라는 증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독도를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섬이니까

于山島는 우산국이라는 역사적인 나라이름에서 나온 것이고, ‘三峰島는 독도의

외형이 3개의 봉우리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추측된다.

가지도는 가지(물개, seal)가 사는 섬이라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독도에 물개가 많이 산 사실은 일본의 19세기 기록에도 나타난다.

독도가 아닌 다른 섬에서 물개가 많이 발견되었다는 기록을 보지 못했다.

해류 때문에 독도가 아니고서는 물개가 몰려갈 만한 섬이 없다.

따라서 독도가 이러한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울릉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때가 있다.

독도의 이름에 대해 혼란이 있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우산.무릉 1도설]

Mormanne : 그렇지만 한국이 자주 원용하는 世宗實錄의 기록상

于山島武陵島는 모두 울릉도를 가리킨다는 일본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보지 않나? 실제로 세종실록의 기록에서도 一說에는 于山島

武陵島가 하나의 섬이라고 한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고

홍승목 :설사 ‘2島說‘1島說이 공존하였다고 해도 울릉도와 독도의

관계를 볼 때 이는 자연스런 것으로 본다.

도는 울릉도에 비해 크기가 1/400에 불과하고 절대적 크기도 0.2

미만인 무인도이다. 또 역사기록상 그 존재는 독자적이지 못하고 항상

울릉도에 종속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울릉도에서의 거리는 약 50해리,

일반적으로 보아 이웃 섬의 한 부분으로만 보기에는 상당한 거리다.

이러한 섬을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이라고 보아야 하나, 아니면 울릉도에

부속된 것으로 보아야 하나? 거리로 보아 별개라는 사람이 많겠지만,

규모가 워낙 작고 또 주변에 다른 섬이 없으니 울릉도의 한 부분으로 보아

관념적으로는 하나의 섬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해가 되는 것 아닌가?

‘2島說‘1島說이 공존하였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게다가 于山島라는 이름이 때로는 울릉도, 때로는 독도를 가리켜

명칭상의 혼란이 가미되었으니 ‘1島說까지 거론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世宗實錄 地理志一說기록을 인용하여 섬은 하나라고 보는 것은

일본 측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一說于山.武陵 1라고 할 때의

‘1There is only one island in the area, and that island must be

the holder of both names 의 뜻이 아니라 Both names might designate

one and the same island of the two 라는 의미일 뿐이다.

본문에서 섬이 두 개 있고, 맑은 날 마주 보인다.”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달지 않았다. 단순히 우산도무릉도나 다 같이 본 섬(主島)

가리키는 이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나타내었을 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우산도라는 이름에 대해 인식의 괴리가 있었을 뿐,

두 개의 섬이라는 인식에 차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Mormanne :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우산이라는 이름에 대해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무슨 뜻인지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홍승목 :지방정부에서는 작은 섬, 즉 후의 독도를 가리켜 우산이라고

하였는데, 중앙정부에서는 한 동안 이를 잘못 이해하여 옛 우산국의 본 섬으로

이해하였다. 그 증거는 간단하다. 지방정부의 보고를 기초로 할 수밖에 없는

본문의 내용은 언제나 울릉도(무릉도)’에 대한 기록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인식을 반영하는 제목부분에서는 數 世紀 이후까지

우산.울릉(무릉)’ 이라고 하여 우산도에 비중을 둔다.

따라서 독자들은 제목과 본문내용 간에 놓인 이상한 괴리를 느낀다.

제목을 쓰는 중앙정부의 기록자와 본문 내용의 결정적 자료가 되는 지방정부의

보고를 쓴 사람 간에 우산국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있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아마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우산국 멸망 후 울릉도의 이름으로는 종래의 섬의 이름인 울릉.무릉,

우산국이라는 나라 이름에서 나온 우산도라는 이름이 함께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현지에서는 원래의 이름인 울릉무릉이 압도적으로 널리 쓰였을 것이고,

우산도는 차츰 이름없는 섬인 독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전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에서는 우산도는 옛 우산국의 본 섬(主島)라는

고정관념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우산이라는 이름이 선입감을 가지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기록에도 우산도는 본 섬(主島)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오해는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별도의 의미가 있는 우산이라는 이름이 독도의 이름으로 쓰이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상당 기간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겠지만,

민간인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정부도 이를 그대로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별개의 섬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뚜렷하다.

맑은 날이면 마주 바라볼 수 있다고 했는데 혼자서마주 보는 수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울릉도에서 볼 때 평소에는 안 보이다가 맑은 날에만

바라볼 수 있다고 한 것은 독도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17 세기의 한국의 역사기록에는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인) 우산도를

일본사람들은 마쯔시마(松島)라고 부른다고 하였는데 더 이상 무슨 의문이

있나? ‘마쯔시마(松島)’는 독도의 17세기 일본식 이름 아닌가?

지금은 다께시마(竹島)’라고 불리지만

Mormanne : 한국 측의 기록에 于山島를 일본인은 마쯔시마(松島)라고

부른다.”고 한 것은 일본영유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 아닌가?

홍승목 :于山島를 일본사람들은 마쯔시마(松島)라고 부른다고 부연

설명한 것은 그동안 주로 중앙정부에서 우산도를 잘못 이해하여

울릉도와 동일한 섬이라거나 또는별개의 섬이지만 우산국의 본 섬(主島)’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서 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한국의 영유권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 영유라는 인식을 반영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살 여지는 없다.

일본인이 독도를 마쯔시마(松島)’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 무렵

울릉도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지방정부간에 약간의 마찰이 일어나 일본인이

울릉도를 다께시마’, 독도를 마쯔시마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울릉도를 둘러싼 마찰은 한국의 역사적 영유를 일본정부가 재확인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본문 주소는 http://blog.naver.com/sungmoghong/35082452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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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확인하는 일본의 잔학상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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