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외교관의 독도 이야기 3부
아래 글은 웹서핑 중 우연히 들렀던 외교관의 블로그에서 발견 한
독도관련 글입니다. 요즘 일본에서 자민당 애들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고
주접을 떨고 있는 이 시점에 꼭 한 번 읽어봤으면 하는 내용으로 가득한 것
같아서 모셔왔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 여태 만났던 기존의 독도관련 글에서
알지 못했던 일본 애들의 허황된 내용으로 가득 찬 거짓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 긴 글이지만 한국사람 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이 너무 길어서 3부로 나누어 정리 했습니다.
[安龍福 사건 기록의 역사적 의의]
Mormanne : 당시의 ‘安龍福 사건’이라는 사소한 episode를 한국 측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주요 근거로 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인의 영웅담을 영유권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 과연 타당하다고 보는가? 더구나 安龍福이 범법자로서
문초를 받으면서 진술한 내용이니 신빙성도 의문스러울 텐데…
홍승목 : 어느 얼빠진 정부가 범법자의 황당한 진술까지 마구잡이로 국가의
공식 역사기록으로 채택하여 남기는가? 죄인의 진술이라도 정부가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라고 ‘가치판단’을 하였기에 安龍福의 진술이 정부의
역사기록으로 채택된 것 아니겠는가?
“울릉도와 독도는 당연히 한국의 영토”라는 인식에 있어서 安龍福이라는
서민에서부터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일치했음을 나타내는 기록이니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安龍福 개인을 위해 한마디 하자면,
그는 남을 해친 파렴치한 범법자는 아니다.
“강도를 잡느라 차도에 뛰어 들다 보니 결과적으로 교통신호 위반”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그 당시 국가정책으로 교통신호 위반을
중대하게 취급하였을 뿐이다. 당신네 나라로 비기자면, 벨기에 목동이
양떼를 몰고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와서 풀을 먹이자 프랑스 농부가
이를 따지러 국경을 넘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국경을 넘지 말라”는
임금의 명령을 어긴 것이기에 처벌을 받은 것이다.
[울릉도에서 정말 독도가 보이는가?]
Mormanne :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것은 사실인가?
홍승목 :왜 묻는지 알겠다. 「가와까미 겐조」라는 일본의 어용학자가
독도에 관한 논문에서 “울릉도에서 독도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인데… 그 사람은 일본정부의 시책에
따라 “독도는 무조건 한국영토가 아니라야 한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 두고,
독도에 관한 한국의 역사기록을 일본에 유리하게 왜곡 해석하거나,
심지어는 기록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만 자기도취가 심하여, 금방 드러나는 거짓말을 하면서 수학적 증명까지
해 보였으니 다른 부분의 논리는 오죽하겠는가?
울릉도 출신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어린 시절에는 맑은 날이면 산에 올라가
독도를 바라보는 것이 재미였다고 한다. 요즈음은 공해가 심해져 어떤지 모르겠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본 것은 역사기록에도 가끔 나온다.
1694년에 정부의 지시에 따라 울릉도를 순찰한 어느 정부 관리의 기록에
“(울릉도에서) 쾌청한 날 산에 올라가 동쪽을 바라보니 불과 300리(65마일)
거리에 섬이 보인다.”고 하였다(註: 鬱陵島事蹟, 張漢相, 《숙종실록》숙종21년).
울릉도와 독도의 실제 거리는 50마일인데, 눈짐작으로는 상당히 정확한 것이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았다는 기록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일본인도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 본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1919년에 울릉도를 방문한 일본인 학자가
“공기가 깨끗할 때 동남쪽으로 바다 멀리 섬(독도)이 보인다”고 기록하였다.
(註: 鬱陵島植物調査書, 中井猛之進, 朝鮮總督府, 1919) 「가와까미」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증명하려고 한 것은 “눈을 감으면 안 보인다.”는 것인지,
아니면 “뒤로 돌아 서면 안 보인다는 것인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왜 그런 증명이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일본 고지도의 해석]
Mormanne : 일본 古地圖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것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홍승목 :아마 일본 고지도에 한국의 영토로 인정한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 당시의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 물론 일본 정부는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숨겨놓고 있겠지만… 어쨌든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지도도
사실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한국영토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Mormanne : 무슨 뜻인가?
홍승목 :일부 지도제작자들이 울릉도를 일본영토인 줄로 착각하게 되면
독도가 덩달아 일본영토로 표시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위치만 보더라도
독도가 울릉도에서 더 일본 쪽에 있으니까… 그런데 울릉도는 명백히 한국의
영토이니 이 지도들이 일본에게 아무런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Mormanne : 한국의 영토임을 반증한다는 뜻은?
홍승목 :일본 고지도의 공통점은 울릉도와 독도를 한꺼번에 한국영토로
표시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일본영토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두 섬을 ‘공동운명체’로 보는 것이 양국 국민들의 공통된 역사적 시각이다.
물론 한국의 古地圖는 두 섬을 공동운명체로 보면서 일관성 있게 한국의
영토로 기술하고 있다. 일본의 古地圖도 두 섬을 모두 일본영토로 보든
한국영토로 보든, 공동운명체로 인식하는 것은 명백하다. “만약 울릉도가
한국영토라면 독도도 당연히 한국영토”라는 인식을 나타내는 것 아닌가?
지도뿐만 아니라 역사기록에서도 독도에 관해서는 반드시 울릉도에
곁들여 언급되고 있으며 독자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공동운명체이되 대등한 것이 아니라 독도가 울릉도의 종속된 섬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일본이 “울릉도는 한국영토,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역사와도 단절된, 20세기의 새로운 주장이다.
일본이 지도를 통해 독도를 진정으로 자기네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울릉도를 한국영토로 그리면서, ‘동시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그린 지도를 다수 제시하여야 한다. 물론 일본의 영유의식이 이렇게 하여
입증된 경우에도 일본영토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한국과 영유권을
겨룰 자격이 인정되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하면서 주로 ‘울릉도’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울릉도에 약간의 연고가 있었으나 한국영토인 것이 분명하니까,
그 옆에 있는 독도라도 먹어야겠다.”는 심정을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Mormanne : 한국 측은 왜 이러한 입장을 국제사회에 발표하지 않나?
홍승목 :독도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시각을 요약하자면, “독도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입장은 너무나 억지이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진심으로는
시대착오적인 식민주의적 영토편입 조치를 근거로 할 뿐이다.
주로 한국의 역사적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트집을 잡은 후, 그러니까
일본영토라는 것이다. 일본의 주장은 대꾸할 가치도 없고, 독도문제를
분쟁이라고 인정하기도 어렵다”라는 것이다. 한국 국민의 감정은
“명명백백한 것이 어떻게 분쟁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ICJ 뿐만 아니라 중재재판에 가려고 해도 반대가 많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정부나 학자들이 한국의 입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일본의 ‘고유영토 설’과 ‘영토편입 설’ 병행주장]
Mormanne : 일본은 독도가 “1905년 편입조치 이전부터 일본의 고유의
영토이고 1905년에는 시마네 현에 편입시켰을 뿐” 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 ‘고유영토 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홍승목 :거짓말을 하다가 들키자 더 큰 거짓말을 해서 어려움을
모면하려는 유치한 발상이다. 더욱이 그 거짓말끼리 서로 모순되니…
Mormanne : 매우 강한 어조인데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홍승목 : ‘고유영토 설’이란 일본이 2차 대전 패전 후 과거의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효력에 의문이 생기자 종래의 ‘영토편입 설’을
보강하기 위해 갑자기 지어낸 것이다.
이웃사람이 어느 날 “고아를 발견하였기에 내가 데려다 키우기로 했다”고
하다가 나중에 강도유괴 행위가 발각되자 “그 아이는 전부터 내가 키우고
있던 아이”라고 떼를 쓴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어처구니는 없지만,
“꼭 그렇다면 ‘전부터’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인가,
어떻게 입증되는가, 이미 키우고 있었다면서 왜 새로 데려왔다고 했나” 등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이 1905년에는 독도가 ‘무주지’라고 하면서
영토편입을 했다가 이제 와서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언제부터’
일본 영토라는 말인지, 주장 근거는 무엇인지, 1905년에는 왜 ‘무주지’라고
선언했는지, 일본에 돌아가면 문의해 보라. 아마 아무런 입장조차 없을 것이다.
독도에 관한 일본 측의 최초의 기록은 1667년의 ‘온슈시초고끼(隱州視聽合紀)’인데
“울릉도.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일본 측의 사료에
울릉도. 독도가 기록되었으니 자기네 영유권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프랑스도 미리부터 조심하는 게 좋겠다. 일본 책에 ‘프랑스의 파리(Paris)’라는
기록이 많을 텐데 언젠가 일본이 “파리가 일본 책에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일본의 영토라는 증거”라고 우길 때가올지 모르니…
Mormanne : 1905년에 분명히 ‘무주지(terra nullius)’라고 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나?
홍승목 : 1905년 일본내각이 독도에 관해 채택한 결정의 요지는
“영토편입을 하라는 어느 개인의 청원을 접수한 것을 계기로 …
검토한 결과 타국의 영토라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되어 …
국제 법에 영토편입으로 인정될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자기네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밝혔다.
‘영토편입 청원’이라든가 ‘타국의 영토라는 증거’ 云云, 그리고
‘국제법상 인정될 조치’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한국의 영토’인줄
너무나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無主地(terra nullius)’ 라는
표현조차 차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의 영토를 강탈하면서
편법 상 ‘무주지’ 취급을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정부가 정말로 terra nullius로 인식하여 영토편입을
하는 경우에는 이해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나라에 事前
통보한 후 편입하거나, 적어도 관보에 게재하여 나중에 문제가 대두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독도에 대해서는 가장 가까운 나라로서
긴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나라인 줄 알면서도 한국에 대해 편입조치를
숨겼고, 한국이 알게 될까 불안하여 관보게재도 피하였다.
도둑이 물건을 훔쳐가면서 주인이 알지 못하도록 조심하는 것과 같다.
편입조치를 한국에 숨기려다 보니 일본국민 조차 그 사실을 잘 몰라서
편입조치 후에도 독도를 계속 한국의 영토로 표시한 일본 사료가 발견된다.
이제 와서 식민주의가 힘을 잃고 1905년의 영토편입 조치로는 통하기
어렵게 되고 오히려 “1905년까지 영유권이 없었다.”는 불리한 증거가 되니까
‘고유의 영토’ 라고 한다. 자기 영토를 왜 새로이 자기 영토로 편입해야 하는지,
자기 영토를 처리하는데 왜 국제법이 거론되는지 도무지 설명을 하지 못한다.
‘고유’ 라는 것이 언제부터인지도 말 못하고 … 입증할 수가 없으니 말할 수가
없지. 거짓말이 힘을 잃자 새로운 거짓말을 꾸몄는데, 앞의 거짓말과 모순되면
“먼저 한 말은 틀렸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텐데, 뒤에 한 말이 거짓인 줄
드러날 경우에 대비해 “어쩌면 앞에 한 말이 사실일 수도 있고…”라고 한다.
지난 40여 년 간 독도문제에 관해 국제적으로 일본이 자기의 일방적 주장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한국은 입 다물고 조용하게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워낙 주장이 약하니까 국제적으로 수긍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고지도(古地圖)에 대한 의문]
Mormanne : 한국의 고지도에 대해 중대한 의문이 있다.
상당수 한국의 고지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보다 본토에 가깝게,
그것도 울릉도와 거의 비슷한 크기의 섬으로 그려져 있다.
무슨 이유인가? 일본은 이를 두고 “우산도는 울릉도를 가리킨 것이고
독도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홍승목 :해석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대강 18세기 후반부터 독도가 지도상 제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에
한국의 영유권 주장을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Mormanne : 전혀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홍승목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아직 수긍이 가는 설명을 보지 못했다.
개인적인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검증된 것은 아니다.
Mormanne : 다른 곳에서 인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들려주겠는가?
홍승목 :앞서 설명했듯이 당초 우산국이 신라에 의해 정복되자
울릉도의 섬 이름으로는 ‘우산도’와 ‘울릉도(무릉도)’가 동시에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현지에서는 당연히 본래의 섬 이름인 ‘울릉도(무릉도)’라는 이름이
압도하였을 것이고, ‘우산도’라는 이름은 주인 없이 떠돌다가 차츰 독도라는
이름 없는 섬의 이름으로 쓰이게 되었을 것이다.
지방정부의 보고서는 당연히 현지의 관행에 따라 ‘독도’라는 의미로 ‘우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을 것이지만 중앙정부의 관리들은 달랐을 것이다.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우산국’이라는 이름의 영향 때문에 ‘우산’은 과거 우산국의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방정부의 보고서에서는 울릉도(무릉도)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고,
또 “우산도는 두 섬 중에서 작은 섬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역사기록자 뿐만 아니라 지도제작자들도 혼란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였다.
“우산도는 분명 우산국의 본 섬(主島)일텐데 울릉도 보다 더 작은 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필시 본토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본 섬(主島)이 두 섬 중 크기가 작은 쪽이라는데 위치마저 본토 보다 멀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듯하다.
우산도를 “울릉도보다는 작지만 그에 가까운 크기로” 그리고 있는 것도 ‘우산도가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하겠다.
지도상의 다른 섬의 형태로 미루어 보면 당시의 초보적인 지리적 인식으로
동해의 두 섬에 대해서만 유난히 정확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상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 가설에 불과하지만 지도상의 다른 의문점도
이 가설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
즉, 우산도가 제 위치를 찾아 울릉도의 동쪽으로 옮겨가면서,
한 동안 우산도의 크기에 대해 일대 혼란에 빠진다.
이는 이렇게 설명된다.
첫째 부류로서, 우산도가 지금까지의 과장된 크기, 즉 울릉도에 미치지는 못하나
절반 정도의 크기를 유지하면서 단순히 울릉도와 위치만 바꾼 것이 있다.
둘째 부류로서, 울릉도의 크기를 유지하면서 우산도를 울릉도보다 훨씬
크게 그린 것이 있다. 지도 제작자가 “우산도는 우산국의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채 위치를 바꾼 결과이다.
셋째 부류로서, 우산도를 울릉도와의 상대적 비율에 가깝게 매우 작은 섬으로
그린 지도이다. ‘울릉도 보다 외측에 위치한 작은 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산도가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비로소 ‘매우 작은(tiny) 섬’이라는
현지의 보고를 편견 없이 반영한 것이다.
하여튼 ‘우산도’라는 이름을 두고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때로는
‘울릉도’로 때로는 ‘독도’로 이해하다 보니 이름의 주인, 위치,
크기 등에 상당기간 혼란이 계속되었다. 사실 하나의 섬이 數百 年
간 하나의 이름으로 꾸준히 통용되었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대인의
편의주의 적 발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도상으로 보더라도 ‘두 개의 섬‘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뚜렷하였다는 것이다.
Mormanne : 일본에서도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에 대해 한동안 혼란을
겪다가 결국 두 섬의 이름이 바뀌었으니 이보다 여러 세기 전에 한국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홍승목 :섬의 위치나 크기에 관한 지식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정확치 못한 것은 울릉도와 독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섬에 공통되는 것이다. 아마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 공통되는 문제일 것이다.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고
하여 영유권 입증이 불충분하다고 하면 한국의 대부분의 섬이 20세기
초까지는 무주지였다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국이 이 섬들을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선점했고 한국영토가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해괴한 논리가 아니겠는가? 역사기록은 그 시대의 과학기술
수준을 감안해 해석해야 한다. 여러 세기 전의 지도에 두 섬이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의 영유권을 부인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영토에 속하는 섬으로서 고지도에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으로 수십 개에
불과하다.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영토가 아닌가?
울릉도와 독도는 주변에 다른 섬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섬보다는
그 존재가 비교적 쉽게 인식되었고 지도에 나타난 것일 뿐이다.
고지도상으로 위치는 바뀌었지만 하여튼 한국의 기록에 울릉도와 독도가
나타나기 시작한지 수 세기가 지나서야 일본의 기록에 두 섬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온슈시초고끼(隱州視聽合紀)’의 기록에서 보듯이
‘한국의 영토’라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서… 한국의 고지도를 일본의 후대의
지도, 그것도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후 그려진 지도와 평면적으로 비교하여
“일본의 지도가 더 정확하므로 일본이 독도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았다”고
보는 위험은 피해야 한다.
현대에 한국에서 만든 유럽지도와 15세기에 유럽인이 만든 유럽지도를
비교하면서 유럽의 어느 섬이 한국의 지도에는 정확하게 나타나는데
유럽지도에는 나타나지도 않으니 이는 그 섬이 ‘한국영토’인 증거라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竹島(다께시마)’와 ‘松島(마쯔시마)’의 명칭 상호교환]
Mormanne : 변방 섬의 이름이나 크기, 위치가 정확하지 못한 것은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다께시마(竹島)’와 ‘마쯔시마(松島)’가 가리키는 섬이 중도에
서로 바뀌었다는 이론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홍승목 : “러시아의 지도제작자가 착오로 이름을 서로 바꾸어 붙인 것이
계기가 되어 두 섬의 이름에 혼란이 왔고 궁극적으로는 이름을 서로
바꾸게 되었다.”는 주장인데,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물론 독도가 자기네
영토가 아니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고…
Mormanne : 방금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고 설명하지 않았나?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는데…
홍승목 :바뀌는 배경이 전혀 다르다. 혹시 자녀가 있나?
Mormanne : 있는데…
홍승목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착각하여 당신 아이와 옆집 아이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면 당신 아이의 이름을 버리고 옆집 아이의 이름을 쓰겠는가?
Mormanne :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일본이 “유럽의 지도제작자의 실수를 계기로 하여 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두 섬이 모두 자기네 섬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뜻이 아닌가?
홍승목 :백 번 양보하여, 두 섬이 모두 자기네 섬이었다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약간은 있었다고 하자. 그러나 울릉도가 한국의 섬인 것을 명백히
인식하면서 독도와 그 이름을 서로 바꿔치기 한 것은 확실히 독도도 한국의
영토인줄 알았거나, 적어도 자기네 영토는 아니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
아닌가? 자기네 섬의 이름과 외국 섬의 이름이 서로 바뀐 것을 보면 항의하거나
기껏 무시해 버리는 것이 상식일텐데… 일본은 왜 이렇게 “우리 조상들이
몰상식하여서…” 하면서 스스로를 폄하하는지 모르겠다.
Mormanne : 아무래도 일본이 영유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서양식 국제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영유의식이 없이 한.일 양국
어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해 온 것으로 보는 것은 어떤가?
홍승목 :개인이든 민족이든 심지어 야생 짐승도 경쟁자와 만날 때 본능적으로
서로의 영역을 분명하게 하려고 한다. 이렇게 하여서 장차 일어날지도 모를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유독 독도에 대해서만 양국이
명시적인 합의도 없이 영유의식을 기피했다는 가정에는 찬성할 수 없다.
安龍福 사건만 해도 영유권 침해를 느끼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의식의
자연적인 발로라고 본다.
Mormanne : 장시간 자세한 설명에 감사드린다.
이제 한국 측의 시각을 상당히 이해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 측에서 자신의 견해를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로
발표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연구를 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다시 찾아와도 좋은가?
홍승목 :솔직히 귀하의 전문성에 대단히 감명 받았다.
제 3국의 학자한테서는 기대하지 않던 대단한 수준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대화였다. 오늘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면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사전에 연락만 해주면 기꺼이 맞겠다.
(대담 끝; 기록 - 1996년 6월말)
본문 주소는 http://blog.naver.com/sungmoghong/35082452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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