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창윤 지음, 마음의 숲
312쪽, 1만5000원
“사랑은 내게 언제나 가장 큰 사건, 혹은 유일한 사건이었다.”(스탕달)
“스스로 영원을 깨닫는 곳에 그대의 영혼이 있다. 그러니 그 곳에서 살아라. 바로 그 부분의 영혼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톨스토이)
“하나의 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신 안에 다른 성에 대한 기다림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성은 우리의 타고난 결핍감을 고통스럽게 느끼게 함으로써 이타성 안에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니콜라 그리말디)
여기까지 읽고 사랑에 대한 달콤한, 혹은 비통한 잠언집이라 생각하지 말라. 책은 그보다 사랑에 대한 해부학에 가깝다. 사랑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리는 궤적을 총체적으로 담았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인 저자는 문화연구자답게 사회학·문화이론·심리학 등을 망라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사랑에서부터 중세 기사의 ‘궁정사랑’, 현대의 ‘썸타기’, 디지털 기술이 매개하는 사이버 사랑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변천사도 조명한다. 사랑에 대한 철학가들의 통찰에서 부터 앤서니 기든스, 에바 일루즈, 울리히 벡과 벡 게른샤임 부부 등 현대 사회학자들을 충실히 인용한다. 낭만적 사랑의 신화와 개인의 탄생, 로맨스의 상업화와 계급성, 가족제도 등 사회학적 주제도 함께 다룬다. 신화·문학·미술·영화 속 사랑 이야기를 함께 아울러 깊이를 더했다.
저자는 “현대인은 관계의 허기에 빠져있어 더욱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이다”고 말한다. [사진 마음의 숲]
책은 또 ‘왜 지금 사랑이 중요한가’라는 부제대로 ‘지금 여기’의 사랑에도 집중한다.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내는 과잉연결시대에 살고 있지만 실상은 관계의 허기에 빠져있고 그래서 더욱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둘러싼 제도들이 심적 고통을 강화해 현대의 사랑은 아플 수밖에 없다”(『사랑은 왜 아픈가:사랑의 사회학』)는 에바 일루즈의 논의에 근거해서 헌신적 사랑에서 도망가려는 현대인의 심리도 묘파한다.
가령 썸타기는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패를 먼저 생각하는 ‘근접합의 거리 두기’이고, 조건과 탐색을 통해 사랑을 최적화하고 위험을 줄인 것이 온라인데이터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사랑학 종합교양서라 할 책의 재미는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스 벡 게른샤임의 다음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을 연구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나’ 속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스런 신들을 탐구하는 것과 같다.”
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S BOX] 수도원장과 수녀원장, 중세의 비극적인 사랑
‘신의 시대’인 중세에도 인간의 사랑은 있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이 최대의 연애사건으로 꼽힌다. 아벨라르는 신학자이자 철학자. 엘로이즈는 노트르담 대성당 참사회원 퓔베르의 조카딸이었다.
스무 살 가까이 나이차가 났던 둘은 사제관계로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엘로이즈는 임신을 한다. 그들이 비밀 결혼식을 올리자 퓔베르는 아벨라르의 성기를 훼손하기까지 했다. 이후 둘은 수도원장과 수녀원장으로 떨어져 지내며 12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저자는 이들을 통해 서로 다르게 기억되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엘로이즈는 지난 일을 돌아보며 열정을 드러내지만 아벨라르는 신의 사랑만을 강조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의 기억을 지워버리고자 했다. 이들의 사랑이 비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