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아픈 장마비로 떠나고
인연 하나로 몸살을 앓는 가을이, 아예 작정한 장맛비로 내린다
이만큼의 세월 앞에서
지난 시간을 들먹이는 게, 우습고 부질없음에 눈이 감긴다
세월의 무게를 느낄만 하니
몸 안에 함부로 들어온 고약한 친구와의 싸움, 아직, 다 끝내지 못하였는데
뜨거운 심장의 고동 소리가, 마지막 간이역에서 몰래 내려
간절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는 꿈을 꾼다
롯데시티호텔 건너편 25시 편의점 원탁에 앉아
인정머리 하나 없는 재벌 간판을 보다가
따뜻한 캔커피 하나 손에 쥐고 앉아 행인중에 누군가를 찾는다
신호등 있는 오거리 교차로
한라병원에서, 호텔면세점에서 나와 시커먼 비닐 주머니나, 종이 가방에
기쁨 아니면, 슬픔 하나씩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
문득, 가슴이 보채는 한 사람을 꺼내어 걸어가게 한다
아직은, 피하는 시선이 안쓰럽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전혀, 궁금도 안 하여오지만...
내가, 하루에 다 알지 못하는 곳을 돌아다니게 놔두면, 한밤중이나 새벽
한 귀퉁이 찢긴 거미줄처럼 아니면, 흠뻑 젖은 하루를
베개 위에 놓고 간 흔적에서 누군가를 본다
그리움도 욕망이다 아무리 닫아도 폴폴 새어 나오는
그런데, 꿈속 한켠엔 우체국이, 늘 서있다
꿈이 흐릿한 날은, 우체국 건너에서 사람을 지켜보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그리움을 안거나 들고, 밝은 미소들이 들어가고 나오고
날마다,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서듯 나도, 누군가의 가슴을 열고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는 것 같아 좋고
누군가도 들어와, 하루를 일러바쳐 주길 기다리는 내가, 우체국 같아서 좋다
아니, 노래를 들어 줄, 청중들이어서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