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Tags
- 다음 불로그
- <iframe width="760" height="560" src="https://www.youtube.com/embed/bDp_UBovguQ?list=RDCMUCR1DO0CfDNPVdObksAx508A"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allowfullscreen></iframe>
- 미
Archives
- Today
- Total
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 선생님이란... 호칭에 대한 고찰 본문
선생님의 어원과 의미어린이 음악시간 선생님 학생들이 자신들을 가르치는 이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선생님은 "선생"이란 말에 존경을 나타내는"님"자를 붙여(합쳐)진 이름이다. 선생은, 단순히 "자기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선생이란 말은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안테만 붙여지는 호칭이었고, 근대교육과 맞물려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으로 쓰이는 경우에도 상당부분 존경의 의미가 내포된 개념이었다. 원래 선생이란 단어 자체의 뜻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직급이 조금 낮은 사람이 높여 부르는 호칭이었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때는 "선생" 대신 "자子"를 써서 최고의 높힘말, 존경을 표현하였다. 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등..그러다 한나라 때부터는 "경卿"이란 표현을 썼으나 그 대산이나 범위가 넓어짐으로 인해 존경심, 깍듯함이 줄어들었다가, 당나라 때는 "랑廊", 송나라 ~ 원나라 때는 "현賢'을 주로 썼다. 선생이란 말이 오늘날처럼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남송南宋-1127~1279" 이후부터다. 정확한 시기를 말하자면, 그보다 과거에도 쓰인 흔적이 없지 않다. 우리가 아는 대시인 陶淵明도(365~427) 405년 팽택현의 혈령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집주위에 다섯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이라고 하였고, 상관이 순시를 나오자 출영을 거절하고 "나는 五斗米를 위해 향리의 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박차고 나온 사람이다. 허지만 이때는 선생의 의미가 다른 의미로 썼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도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생이란 말이 처음으로 쓰인 것은, 삼국시대부터다. 삼국시대 이래 국가의 교육기관이 설립되면서 여기에 속한 교육을 담당한 교수관들을 선생으로 지칭했다. 통일신라시대까지의 사실을 전하는 각종기록으로 선생으로 불린 인물로는, 强首 선생과 百結 선생이 있다. 강수는 중원 소경-충주 출신으로, 일찍부터 儒學을 익혀 실천했다. 태종무열왕에게 보내온 당나라의 국서를 명쾌히 해석해 왕으로 부터 강수 强首 선생이라 불렸다. 강수 强首는 이후, 신라의 文柄을 잡아 모든 외교문서를 작성했고, 통일에 기여한 공도 컷다. 백결 선생은 자비왕 때 경주 낭산 기슭에 살았다. 몹시 가난해서 옷을 100군데나 기워입었으나 거문고를 즐기며 세상사를 초연히 관조하며 살아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백결 선생으로 불렀다. 어느해 섣달 그믐날, 아내가 남들의 떡방아찧는 소리를 부러워하자, 때신에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대악 碓樂 이다. 이로써 신라시대의 선생이란 뛰어난 학식을 갖춰 국왕의 자문역활을 수행한 인물이나, 고결한 인품을 갖춘 재야의 인물을 뫂여 이르는 칭호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때는, 학덕과 인품을 겸비한 고승을 국사 國師, 왕사 王師로 책봉해 우대한 것처럼, 학덕과 인품을 겸비한 유학자도 왕의 스승인 사부로 임명됐다. 대표적으로 현종 대의 최항崔沆 예종 대의 곽여 郭輿 충숙왕 대의 안규 安珪, 윤신걸 尹莘傑, 충정왕 대의 민사평 閔思平, 등을 들 수 있다. 곽여의 경우는, 中使를 시켜 불러서 禁中의 순복전에 살게하며선생으로 모셨고, 항상 좌.우에 시종하게 하였다. 이를 보아 사부를 선생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거려 중기 이후부터는 선생이란 칭호가 더 많이 불려졌다. 그 대표적인 예로, 흔히 백운거사로 알려진 대문호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선생이다. 그는 개경의 천마산에 은거하기 전에 스스로 "삼혹호 선생 三酷好 先生"이라 칭했다. 세가지를 특히 좋아한다는 뜻인데, 시 詩, 거문고 琴, 술 酒, 세가지다. 그의 술사랑은 유별나 맛좋은 술은 신부와 같아, 마주하고 있으면 피곤한줄도 모른다(美酒如新婦 相對不知疲)고 했을 정도다. 조선시개의 선생은 한 관부에 앞서 재임한 인물들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데체로 성리학적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인물에 대한 존칭이었다. 또, 이들이 각급 교육기관을 통해 성리학을 교육했으므로, 각급 교육기관의 교수관을 제자나, 문인들이 높여부르는 호칭이기도 했다. 이들 중 왕의 경연 經筵이나, 세자의 시강 侍講을 맡은 이는 기유숙덕( 耆儒宿德-덕망 높은 늙은 선비)중에서도 최고의 선생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경명행수 (經明行修-경학에 밝고 행실이 선함)의 명사나 정학중망 (靜學重望-오로지 학문에만 힘쓰는 중망 있는 선비)의 유신에서 발탁됐다.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는 "학교모범(學校模範)"에서 선생을 섬기는 道를 높여야할 것을 강조하면서 "선생은 곧 사장(師長)"이라고 하였다. 선생에 대한 예의와 존경은 매우 엄격했다. 선생이 부르면 곧 응답하고 앉아있으면 즉시 일어났다 음식이 입안에 있을 때는 냉큼 뱉은 뒤 대답하고 먼 곳에 있으면 그 앞에 가까이 나아가며 말씀 중에는 이런저런 말들을 하지 않았다. 모시고 다닐 때는 너무 멀지 않게 뒤따르고 혹, 길에서 지인을 만나드라도 한번 읍(揖)하고 곧 헤어져 선생을 제쳐놓고 대화를 해선 안되며 한마디로 선생의 그림자도 밟았다간 큰일 날 판이었다. 이때문에 선생의 별칭으로, 함장(函丈)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당시는 "영의정(領議政) 셋 나온 가문이 대제학(大提學) 하나 나온 家門과 맞먹고, 대제학 셋은 선생(先生) 하나 나온 가문과 선생 셋은 처사(處士) 하나 나온 가문과 맞먹는다"고 평했을 정도로 고위 공직자 보다도 배움과 가르침에 통달했음을 이르는 선생과 처사라는 칭호가 더큰 명예로 여겨졌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가면서 관계에 진출하지 못한 인물들이 인격과 상관 없이 "산림(산림)"을 자처하면서 유림의 권위를 상징하던 산림의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듯이, 선생도 비슷한 현상을 나타냈다. 그래서 인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대제학임에도 불구하고 선생이란 칭호를 꺼려왔는데, 임종 시 묘지명에 멋대로 "퇴계 선생"이란 칭호를 쓸까봐, 죽기 전 스스로 묘비명을 썼다. 근대적 교육이 실시되고 교사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선생이란 칭호도 점차 각급 교육기관의 교사들에 대한 범칭으로 사용됐다. 그 결과 학덕과 인격을 겸비한 사람에 대한 존칭으로서의 선생의 존칭이 남용되는 추세를 가져왔다. 일제 때는 일반적으로 교사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허지만 이 시기 역시 일제의 통치에 대항해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을 한 인물들이 선생으로 추앙받았다. 교육할동에 투신한 인물은 물론, 민족의 사표로서 학덕을 갖춘 인물들이 선생이라 불리면서 추앙을 받았다. 백범 김구, 단재 신채호 선생 등등... 이처럼 선생이란 용어에 두가지의 의미가 내포된 분위기의 연장 속에서 광복 이후에도 선생은 광범위하게 사용돼왔다. 다시 말해, 선생이란 칭호가 모든 교사에게 붙여지는 높임말이자 지식이나 인격 면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로도 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일반 사회에서도 사교적인 용어로도 쓰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를 가리키는 비하로 까지 변질되더니 급기야는 형태마저"쌤"이니 "쓰앵~님"으로까지 변형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말았으니 원~~~ 2019.05.01. 역삼동에서. Ador.
'🌱 Ador 사색.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인을 위한 나라도 있다? IT와 시니어 산업의 만남 (0) | 2019.05.09 |
---|---|
'멘탈 갑'인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7가지 (0) | 2019.05.05 |
그리움은 바다로 길을 낸다 - 위승희, 외..... (0) | 2019.04.24 |
시냇가의 추억 (0) | 2019.04.24 |
세유백락연후 유천리마 (0) | 2019.04.24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