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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한 내 인생이여 본문

😀 Ador 빈서재

얼큰한 내 인생이여

Ador38 2013. 11. 14. 15:19
       
* 얼큰한 내 인생이여
사내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취해도 쓰러지지 않는다. 
쓰러저도 기지 않는다. 
기어도 짖지는 않는다
나의 술, 얼큰이여-
얼마나 남았을까, 이 주도(酎道)의 서문(序文)을 읊을 수 있는 날들이.....
우선, 첫 잔(盞)
앞의 빈자리에 따르는 술은 칼칼한 목을 축이기 위한 잔
허기진 모두 꺼내 술로 채워도, 뒷 탈없게 비는 고시레 잔.
둘째 잔은, 
잔뜩 이고 진 상념들을 훌훌 털어내고, 술 맛 고르기 위한 잔,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 있는게 기특하여 자축하기 위한 잔이요.
이 술의 셋째 잔은, 
곧은 외길 고집하여 남들처럼이지 못한 우둔과 처세를 꺼내놓기 위한 잔,
그리고, 살기 위해 아부(阿附)하느라
무참히 스러저간 자존심을 달래기 위한 잔이요.
이 술의 넷째 잔은,
배움을 게을리한 결과로, 흙 파먹는 신세를 꾸짖기 위한 잔,
탕진한 청춘 모두를 조각모음하여, 내 인생 앞에 꿇어 앉히기 위한 잔이요.
이 술의 다섯째 잔은,
아프게 하였던 말, 아프게한 가슴들에게서 거두지 못한 시간을 위한 잔,
같이 아파하지 못하였던 시간 앞에 꿇어앉아 용서(容恕)를 빌기 위한 잔이요.
이 술의 여섯째 잔은,
사랑은 절대로 한적이 없다고 우기기 위한 잔,
사랑 하나도 지켜내지 못한 무능을, 그런적 없다고 다시 부인하기 위한 잔이요.
이 술의 일곱째 잔은,
잠시 숨고르며, 한 병이, 여섯 잔인지 일곱인지를 검증하기 위한 잔,
삶의 편린(片鱗)이 아파 마신 술잔의 수(數)를, 같이 마셔버리지 않기 위한 잔이요.
이 술의 여덟째 잔은,
그 오랜세월, 눈길 한번 안 주어도 지조(志操)로 자릴 지켜준 안주(按酎)를 위한 잔,
하나 하나, 대작(對酌)할 이 없어가는 세월, 술잔과의 대화와 독백을 위한 잔이요.
이 술의 아홉째 잔은,
그래도 인생이, 살아 볼 가치가 있었는지 자문하기 위한 잔,
휘청 휘청 얼큰하게 걸어왔어도, 아직 용케 살아남은 기적?을 위한 잔이요.
이 술의 열번째 잔은,
어찌하리, 잘나면 잘난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더러는 인정하기 위한 잔,
벌써, 이름 위에 붉은 줄 그어진 외상장부에, 결제하는 기분으로 긁어도  
너무 반가워서, 입이 귀에 걸치도록 활짝 웃는 酎母가 그리워 건배하는 잔이오.
이 술의 다음은,
이러한 빈가슴에 누군가의 정(情)이 살아있기를 바라기 위한 잔,
오며 가며 나를 기억하여 무덤 위에 술 한잔 부어 줄, 나그네를 위한 잔이라오.
이 술의 그 다음 잔은,
그래서 비워저 가는 술병, 그 허무를 위한 마지막 잔,
아무리 좌절하고 비탄에 빠졌어도, 도도히 일어나는 들풀을 위한 잔이오.
이 술의 또 그 다음 잔은,
하늘에 불려가 머리 조아릴 때에,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문초를 받아도, 
"필름이 끊겨 모르쇠"로 일관하여도 되도록, 하늘에 올리는 잔이요.
이제는 술잔이여- 
쬐끄만 이슬이 형제마저도 이기지 못하여 가는 주량이 슬프고도 야속하여
새벽달 꼬리 붙잡고 집 찾아가는 길 잃지 말자 하기 위한 잔이로다.
마지막으로 술잔이여-
이제는 부여할 의미도 동이 났구나
이승의 오물속을 헤엄치던 웃음과 한숨과 눈물 모두.....
이 잔으로, 망각(忘却)의 강(江)바닥에 영원히 잠들게 하소서. 
그리고 이런 미물(微物)일랑, 다시는 이 세상에 내놓지 마소서
조상에 고(告)하는, 첨잔(添盞)이 그, 종(終)이로다.  
1004, 邨 夫 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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