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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因緣이 고이는 방

인연은 끊는다고 끊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본문

😀 Ador 빈서재

인연은 끊는다고 끊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Ador38 2016. 2. 18. 23:30
인연은 끊는다고 끊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1
어제는, 폭설에 가까운 일기예보를 들으며 잠이 들었지요
오늘은, 하얗게 덮인 한라의 허리를 걸으며 생각하였습니다
평범하게 살아오며, 내 의지로 하여보지 못한 많은 일 중에
인연(因緣)이라는 불가(佛家)의 섭리를 찾아 
한 번은, 먼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당신의 편지를 생각하였습니다
2
그러니까, 당신의 부음(訃音)을 전해 듣기 꼭, 한 해 전이군요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은 날
가볍게 설레는 마음이, 무작정 집을 나서게 하였지요
세상의 모든 추한 것과 어그러진 것들을 하얗게 덮어버린
새들조차도 내려앉아 보지 않은 눈 오는 산길을
3
그때, 조금 멀리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무언가를 보았지요
아니 그것은, 폭설에 목까지 쌓인 웅덩이에서 
살아나려고 몸부림치다 처절한 절망에 덮여가는 큰 눈망울을 한
아직, 뿔 자리가 몽실한 새끼 노루였습니다
4
흠뻑 젖어
덜덜거리는 입에, 담배조차 피워 물지도 못하였지만
어쩌면, 세상과 이별을 할지도 모르던 해맑은 눈망울을 끌어내어
어미 곁으로 보냈다는 훈훈함이
일찍 저무는 산 속에서 꾀죄죄한 몰골로 꽁꽁 얼며
시간여를 기다리다 오른, 노선버스 안의 눈총들에 당당할 수 있었던
5
정월 대보름 
바로 그날이 내일입니다 노루와의 인연 있던 날도
당신이, 나와의 인연을 놓아둔 체 떠나버린 날도.....
당신은 그렇게 하얀 눈 보다. 더 하얀 곳으로 떠났지요
그러고 보니, 노루로 하여금
나를 그리로 불러낸 게 당신이라는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의 인연에서 풀어주고 떠나 보내주는 굿 풀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6
하얀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미처 다 알지는 못하여도 서툰 사랑만으로
사랑 하나면, 인생을 다 살 것 같은 청춘 남녀가 세속에 묶이지 않는
과거도, 행방도 알지 못하는 하얀 곳으로 동행하자던 약속이
지금, 소리죽여 울고 있습니다
7
내일부터는, 늙은 추억 하나 지우렵니다
지금, 향(香)을 사르지는 못 하겠습니다 
그냥, 지금부터 오늘 하루는 당신만의 시간으로 비워 있겠습니다
행여, 하늘 문 열고 내려올까 꼭, 기다린다 하지는 않겠습니다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730209011602. Ador.
음악; 헨델 - 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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